▲ 선혜사 대웅보전 내부.
“어르신, 많이 잡수세요.” “이런 호의를 베풀어주니 정말 고마우이.” 따뜻한 인정이 오가는 이곳은 서울 성산동에 자리한 선혜사(주지 견휴 스님). 이곳 공양간에서는 매주 수요일 오전 10시 30분부터 오후 1시까지 지역주민들에게 점심식사(무료급식)가 제공된다.
선혜사가 지역주민을 대상으로 무료급식을 시작한 것은 지난해 6월 13일부터다. 지상 5층 도심사찰로 발돋움한 후 신도들의 신심을 다잡는 일에 매진하던 주지 견휴 스님의 “육바라밀을 실천하며, 보다 많은 사람들이 사찰을 찾아와 불연(佛緣)을 맺을 수 있도록 해보자”는 말 한마디에 공의가 모여졌고, ‘무료급식 시행’ ‘봉사자 모집’ ‘합창단 결성’ ‘불교대학 개원’ 등의 신행 활동이 봇물 터지듯 자생적으로 생겨난 것.
견휴 스님이 정관(선혜사 회주) 큰 스님을 모시고 수덕사 견성암을 떠나 선혜사로 온 것은 20여년전, ‘선혜암’으로 불릴 때다. 그 후 정관 스님과 함께 기도 정진과 포교 원력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묵묵히 실천하며, 대웅보전(5층) 법당(4층) 요사채(3층) 공양실(2층) 종무소?지대방(1층)을 갖춘 도심사찰 ‘선혜사’로 중창하고, 사부대중과 함께 도심포교의 출사표를 던졌다.
▲ 선혜봉사회 회원들이 지역 주민들에게 불교와 인연 맺기를 서원하며 선혜사 공양간에서 무료급식 자원봉사 활동을 하고 있다.
항상 활발발한 선혜사이지만, 무료급식이 실시되는 수요일만큼은 어느 한 곳 여유로운 공간이 없다. 1층 종무소 앞에서 점심식사를 하려는 ‘방문객’을 안내하는 봉사자와 긴 줄을 선 채 기다리거나 이미 식탁에 앉은 ‘방문객’들로 발디딜틈도 없다. 당연히 부엌 안도 방문객들의 기다리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줄이려는 듯 손놀림이 바빠졌다.
식판에 음식물을 담으랴, 모자란 음식을 다시 갖다 채우랴 정신없는 상황에서도 5~6명의 부엌 안 사람들은 선혜사를 찾은 어르신들을 위해 음식을 직접 가져다주기도 했다. “아이고, 내가 갖다 먹어야 하는데.” 음식을 받아든 어르신들은 어쩔 줄 몰라 하
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아니에요. 앞으로도 앉아 계시면 저희들이 갖다 드릴게요.” 서로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부엌 안 사람들은 자원봉사자들이다. 매주 한 번씩 이 곳을 찾아 음식을 만들고 배식을 하고 있다. 이들의 급식봉사는 이제 1년차이지만,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베테랑’ 눈썰미와 손길을 보였다. 모두 선혜사
▲ 선혜사 전경.
불교대학을 다니며 합창단원으로 활동하고, 매주 일요법회와 격주 토요법회에도 참석하는 신심 돈독한 보살들이다. 그래서 ‘선혜사 신도’라는 ‘자부심’도 대단하고, 주지 견휴 스님에 대한 신뢰도 두텁다.
이번 무료급식에는 130여 명이 찾아왔다. 대부분 사찰과는 인연이 없는 이들이다. 또 선혜사 인근이라기에는 거리가 떨어진 상암?연남?북가좌동 등에서 온 이들도 있다. 점심시간에 맞춰 선혜사 인근을 지난다는 ‘야쿠르트 아줌마’도 무료급식을 찾을 정도니, 선혜사 무료급식은 이미 종교의 장벽을 무너뜨리며, 불연(佛緣)의 기지게를 마음껏 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점심 메뉴는 형형색색 나물에 밥을 비빈 먹음직스런 비빔밥이다. 물론 6명 남짓 앉을 수 있는 커다란 반상에는 장국이며 튀김도 있고, 과일도 놓였다. 점심 때에 맞춰 부담 없이 선혜사를 찾은 이들은 비빔밥 한 그릇을 어느새 ‘뚝딱’ 해치웠다. 그러는 사이 무료급식을 돕던 봉사자의 이마에 송글송글 땀이 맺혔다. 그러나 그 봉사자는 “내가 무언가는 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쁘다”며 “절에서 공부만 하다 직접 실천해보니 진작 하지 않은 것이 후회가 될 정도”라며 ‘신명’을 냈다.
봉사자들의 하루는 오전 9시부터 시작된다. 오자마자 찬거리를 다듬어 반찬을 만들고 밥을 짓는다. 10시 30분부터 시작되는 배식 이후에도 자원봉사자들의 일은 계속 된다. 식판과 반찬통, 수저 등을 설거지해야 한다. 또 식당 청소뿐 아니라 건물 현관부터 배급소까지 이어지는 바닥도 물걸레로 깨끗이 치워낸다. 봉사자 중에는 화장실 청소를 흔쾌히 도맡아 해오는 이도 있다. ‘자신의 사찰’인 선혜사를 청결하게 유지해 이곳을 찾은 ‘손님’들이 불편함을 느끼지 않게 하기 위한 배려다.
일과를 다 마친 후에야 자원봉사자들은 점심식사를 한다. 봉사 후 먹는 점심은 정말 ‘꿀맛’이다. 힘들었을 텐데도 무엇이 좋은지 웃음꽃이 핀다. 이들 중에는 “절을 함께 다니는 친구의 권유로 시작하게 됐다. 시간이 남으니까 하는 일이지 그렇지 않다면 못했을 것”이라며 겸손해 하는 이도 있고, “마음이 통하는 사람들이 만나 대화를 주고받고 거기에 다른 사람을 위해 일할 수도 있다는 것이 너무 즐겁다”는 이도 있다. 오붓한 점심시간도 끝나고 각자의 짐을 챙기던 자원봉사자들은 “자원봉사는 나의 힘”이라며 한 주 후 다시 만날 선혜사 공양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선혜사 | 서울시 마포구 성산동 134-31번지 | (02)373-1510

편집실/

선혜사 신도들의 굳건한 신심 한 가운데에는 주지 견휴 스님(사진)이 있다. “매주 130여 명에게 점심을 대접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닌데…”라는 스님은 “신도들이 선뜻 내놓는 ‘보시’가 적잖은 힘 더해주고 있다”며 “그들의 공덕으로 선혜사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들어 만인의 기도 도량이자 교화 도량으로 그 면모를 갖추길 서원한다”고 말했다.
20여년전 회주 정관 큰스님과 함께 수덕사 견성암을 떠나 선혜암(지금의 ‘선혜사’)에 뿌리를 내린 견휴 스님은 초발심을 잃지 않고 신도들과 동거동락했다. 선근을 키우는 일에 적극 나섰다. 공양간 일, 연등 만드는 일 등은 물론 108참회 정진, 반야심경 사경, 삼천배 기도 등도 신도들과 함께 했다. 그러는 사이 선혜사의 선근은 세토(世土)에 깊게 내릴 수 있었다.
“이곳(선혜사)이 설악산 정상이라면 머물고, 아니면 즉시 걸망을 지고 떠나라” “바보가 되어라”는 회주 정관 큰스님의 가르침을 항상 마음에 담고 있다는 견휴 스님은 “아상을 떨치고 도심 한 가운데에서 사부대중을 신심을 키우고 엮어서 포교 원력을 세우겠다”는 각오를 보였다.

“절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며 오로지 가족 축원으로 하루해가 모자랐던 어느 날이었죠. 주지 스님(견휴 스님)께서 ‘베푸는 사찰’이 되자는 한 말씀에 ‘기복(祈福)’에 빠져있는 내 자신을 발견했어요. 그리고 ‘실천[봉사 등]’이라는 단어가 내 머리 속에 떠올랐어요.”
40년 남짓 선혜사를 지켜온 여래심 보살. 그녀는 어느 날 주지 스님의 일성에 실천하는 불자를 서원한 이래 자원봉사, 합창단, 불교대학 등 사찰 신행 활동에 남다른 애정을 펴고 있다. 비록 노구(老軀)이지만, 기꺼이 함께 자리하는 젊은 보살들에게 모자람 없는 신심을 보이고 있다.
“이 세상에 좋은 일만 있고 즐거운 일만 있으면 얼마나 좋겠냐”고 반문한 여래심 보살은 “우리는 욕심과 자만을 극복하기 위해서 늘 부처님의 가르침 속에서 실천해야 한다”며 “앞서 이끌어주는 주지 스님과 함께 오늘도 내일도 정진하는 마음을 놓지 않겠다”고 말했다. 여래심 보살은 선혜사의 기둥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젊은 신도들에게는 “항상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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