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대 강사로 활동 중인 진철문씨(선학회 이사, 불교학회 회원)가 대마도 관음사 불상의 진위 여부를 가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7월25일 ‘국내 유입 대마도 관음사 불상의 진위 여부를 가려야 한다’ 제하의 보도 자료를 통해 진철문씨는 “대마도 보살상이 서산 부석사에서 조성 봉안됐던 보살상인지 가리는 일이 우선돼야 한다”며 “대마도 보살상은 마땅히 제자리를 찾아 봉안돼야 하지만 전문가들이 공개적으로 검증하지 않은 보살상을 검증되지 않은 복장 기록대로 서산 부석사 것이니 돌려주지 않겠다고 주장한다면 아니 되는 것으로 사려된다”고 주장했다.

진철문씨는 먼저 서산 부석사의 창건연대와 보살상 조성연대가 일치하는지부터 확인할 것을 주문했다. 대마도 관음상 복장유물인 결연문(천력3년, 서기1330년, 고려 충숙왕17년 추정)에 나타난 고려국 서주지 부석사는 현재의 서산 부석사로 알려져 있다. 서산 부석사는 창건설이 두 가지다. 의상대사 창건설을 따르면 677년 창건이니 1330년 보살상 결연문의 연도에 무리가 없다. 하지만 충남도지(1970년)에 따르면 고려 말의 충신 유금헌(柳琴軒)이 조선이 개국하자 망국(1392년, 공양왕 4년 고려멸망)의 한을 품고 별당을 지어 사용하다가 사후 승려 적감(赤感)이 절로 바꾼 것이 바로 서산 부석사다. 이 경우 결연문에 기록된 년대와 비교해 시대를 62년 이상 소급하는 것이기 때문에 결연문은 심각한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어 진철문씨는 복장유물에 대한 의심도 제기한다. “관음보살상이 화마를 입은 적이 있는데 복장유물이 현재처럼 온전히 보존될 수 있었는지 의심 된다”고 지적한 진철문씨는 보살상 조각 기법상의 문제도 지적했다. 고려시대 보살상은 두상이 몸체보다 앞으로 많이 돌출 표현돼 머리카락 한줄기가 눈과 귀 사이로 내려와 귀를 가로질러 머리 뒤쪽으로 가고 다시 귀 뒤쪽 머리 위에서 흘러내린 또 다른 한줄기가 서로 자연스럽게 만나는 양식이다. 진철문씨는 바로 이 부분에 주목했다.

“대마도 관음보살상은 귀로 지나는 머리카락이 귀 바로 뒷면에 박혀서 끊겨져 있다”고 지적한 진철문씨는 “조상 의궤에 따른 머리카락을 잘 틀어 올리는 발시호(髮罳好)의 표현이 잘 되지 않았으며 전반적으로 머리카락의 처리도 미숙하고 부조화하게 처리되었다”고 강조했다.

또한 두상에 이어 손의 표현도 불교 의궤에 따랐다기보다 인간의 손을 보고 그대로 처리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우리 보살상의 경우 불상 조상 의궤에 따른 손의 표현이 되어 있으나 대마도 보살상의 경우 32상의 손가락이 가늘면서 긴 것, 장지상(長指相)과 80종호의 손가락, 발가락이 길어서 다른 사람들보다 고운 것, 즉 지장섬원(指長纖圓)이 표현되지 않았고, 주물기법도 고려시대의 전반적인 기법인지 아닌지 전문가들의 판단이 더 요구된다”는 것이다.

진철문씨는 “제기한 세 가지 문제점 해결을 위해 공개적으로 보살상이 고려시대에 조성된 것인지 이론적이고 과학적인 조사를 촉구한다”고 주장했다.

아래는 진철문씨가 제공한 관음보살상 비교도.

▲ 진철문씨가 제기한 관음 보살상 비교도.

 -강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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