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봉1)<사진>은 학조2)와 같은 시대 사람이다. 학조 또한 당시의 문벌 있는 집안 출신으로 승려가 된 자여서 동봉에게 굽히지 않고 매양 그와 겨루었다.
하루는 산속으로 같이 가면서 동봉이 앞서고 학조는 뒤따랐다. 때마침 비가 막 개어서 길 옆엔 멧돼지가 칡뿌리를 캐먹은 자리가 움푹 패어 있고 거기 물이 그득히 고여 있었다. 동봉이 학조를 돌아보고 말하기를,
“내가 이 웅덩이에 들어가 뒹굴고 나올 터인데 나를 따라 할 수 있느냐?”
하니 학조가 그러겠다고 하였다. 즉시 두 사람이 같이 웅덩이 속으로 들어가서 뒹굴고 나왔다. 동봉은 몸이건 옷이건 물 한 방울 젖지 않았는데 학조는 얼굴에 온통 흙탕물을 뒤집어썼고 의복은 몽땅 젖어 있었다. 동봉이 웃으면서 학조에게 이르기를,
“네가 어찌 내 흉내를 낼 수 있겠느냐?”
고 하였다. (『월정만필』3))

東峰與學祖同時. 祖亦時族而爲僧者. 不下東峰. 每與之抗. 一日同行山中. 東峰在前祖次之. 時雨初霽. 路傍有野豕所掘葛根. 成坎處頗深. 積?滿其坑坎. 峰顧謂祖曰. 余欲入此潢?中. ?轉而出. 若能從我乎. 祖諾之. 卽與同入?中?身而出. 峰一身及着衣無一沾濕處. 祖則濁?滿面流下. 衣服盡濕. 東峰笑謂祖曰. 爾焉能?我乎. (月汀漫筆)

박상란/한국불교선리연구원 상임연구원

각주)-----------------
1)동봉(東峰): 김시습(金時習, 1435~1493)을 말함. 조선 초기의 학자. 생육신의 한 사람. 호는 매월당(梅月堂)·동봉(東峰) 등. 한때 승려가 되어 법명을 설잠(雪岑)이라 하고 방랑길에 올랐다가 환속하기도 함. 유불을 아울러 포섭한 사상과 탁월한 문장으로 한세상을 풍미함.
2)학조(學祖): 조선 초기 승려(?~?). 호는 등곡(燈谷)·황악산인(黃岳山人). 세조 때 고승들과 불경을 번역·간행하였으며, 1464년 속리산 복천사(福泉寺)에서 신미(信湄)·학열(學悅) 등과 함께 왕을 모시고 대법회를 엶. 해인사장경판전(海印寺藏經板殿)을 중창함.
3)조선 중기의 문신 윤근수(尹根壽,1537∼1616)의 잡록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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