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 년 전, 호남의 어느 본사 주지 스님은 이렇게 회상했다.

“6,70년대에 절집 형편은 말할 수가 없었어요. 학생들이 수학여행을 오면 밥장사를 해서 먹고 살았죠. 그때는 숙박시설이 별로 없어서 학생들이 절에 와서 잤는데, 학생들에게 우리 방을 비워주고 우린 부엌 바닥에 멍석을 깔고 잠을 잤어요.”

대구에 사는 한 스님은 말한다.

“우리 절집이 70년대 중반까지는 겨우 밥만 먹고 살다가 70년대 후반부터 절의 형편이 나아지기 시작해 90년대에 확 피었어요. 그때는 전국의 절들이 불사를 많이 했지요.”

그 스님은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절집이 70년대 후반부터 나아지기 시작하여 이십 수년간 이어졌다고 기억한다.

“그 좋던 호시절도 잠깐이었어요. 2000년대부터 다시 어려워졌어요. 대구는 불심이 깊고 불자가 많은 대표적인 곳인데도 초하룻날 신도 20~30명 넘는 절이 그렇게 많지 않아요. 공양주 월급 줄 형편이 안 돼서 스님 혼자 사는 절이 많아요. 대구가 이런데 경상도와 서울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은 말해서 뭐하겠어요.”

그 스님은 2천 년대에 들어서 서서히 줄어들다가 지금은 매우 어려운 상황에 이르렀다고 하면서 초파일을 예로 들었다. 스님들을 만나면 해마다 수입이 줄었다고 말하는데, 그건 엄살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 스님은 우린 막차를 탔다고 겨울 들판처럼 쓸쓸히 웃었다.

잊혀질 만하면 벌어지는 폭력 사태에 때때로 터지는 스님들의 비리. 이젠 너무나 익숙해서 문제제기하는 것조차 새삼스럽다. 개구리를 뜨거운 물에 넣으면 곧장 튀어나오지만 찬물에 넣고 서서히 온도를 높이면 요동 한 번 치지 않고 조용히 죽는다고 한다. 그 말이 맞다면 한국불교는 개구리와 닮았다.

종단의 고위직 스님 여럿이 연루되었다고 언론과 인터넷을 장식한 이번 도박 폭로는 사실여부를 떠나 막차마저 재촉한다. 1천 6백년 한국불교의 종말! 이젠 수학여행 와서 자고 가는 학생들조차 없으니 이 일을 어쩌나.

한북스님/편집인, 대구보성선원 주지

저작권자 © 불교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