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오고 가는 일이 다 인연이 있어 왔다 갔다 하는 것입니다. 내가 여러분을 만나게 되는 것도 숙세(宿世:前生의 세상)에 인연이 있어 금생에 여러분 앞에 나서게 되는 것입니다.
이 말은 세상의 모든 일이나 만물이 아무 때나 무질서하게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생겨날 인(因)과 연(緣)의 상대가 서로 결합하여 나고 변화하는 질서를 말하는 뜻입니다. 또 잘살고 못사는 현실이 다 숙세로부터 연속되는 인과(因果)의 원인이 있는 것입니다.
불교는 이 인과를 알고 인과의 주인공인 자기 마음을 알아 그 마음을 잘 쓰는데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자기의 근본과 현실의 원인을 깨달아 잘 살 수 있는 좋은 인연을 마련하는데 있는 것입니다.
불법(佛法)을 알려고 하는 것은 부처의 본심을 알려고 하는 것이고, 부처의 본심이 곧 자기의 본심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처와 중생의 본심이 들이 아닌 하나인 것입니다.
만물에는 상대의 근본이 둘이 아닌 하나의 불성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비유하면 파도치는 물의 모양은 여러 가지로 일어나지만 파도 속에 젖는 물의 성질이 똑같이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만물은 모양은 다르지만 그 모양 속에는 하나의 불성 자리가 있는 것입니다.
이 불성 자리가 우주의 근본으로서 마음이니 불성이니 여러 가지 대명사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일체 인어 동작이나 만유(萬有)에는 이 불성 자리가 있는 것입니다.
이 불성은 아주 멀리 크게 다 있을 뿐 아니라, 가깝게도 있기 때문에 또 대소 유무(有無)를 초월한 근본 자리이면서 일체 사물에 현현하게 나타나는 묘유(妙有)한 것이기 때문에 어렵기도 하고 쉽기도 한 것입니다. 사람이 먹고 자고 일하는 일체 마음 그대로 불성이 있는 것입니다.
세계 삼대 거사(三大居士)의 한 사람인 중국의 방거사(龐居士)는 "불법이 어렵고 어렵다. 마치 아주까리씨를 거꾸로 백 천 개를 올리는 것처럼 불법이 어렵다"고 했습니다. 그 때 방거사의 부인은 불법이 아주 쉽고도 쉽다고 하면서 "마치 일백초두(一百草頭)에 조사의 뜻이 있다"고 했습니다.
즉 일체만유에 다 불법이 있는데 어려울 것이 무어냐고 했습니다. 또 방거사의 딸은 "불법이 쉽지도 않고 어렵지도 않으며 어렵고 쉬운, 어렵지도 않고 쉽지도 않은 그대로가 일체의 불법이다"고 했습니다.
한 생각이 나기 이전에 불성 자리는 유무의 상대가 없는 자리이면서 곧 한 생각을 일으켜 일체 상대의 세계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有)도 아니고 무(無)도 아닌 불성을 깨닫는 것이 불교입니다.
이 불성이 용(用)으로 일어나는 것이 곧 불법입니다. 즉 체(體) 용(用)을 바로 아는 것이 불교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도 성불하여 성불한 그 자리에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고 다시 중생의 몸으로 화신(化身)하여 보살행을 한 것입니다.
우리 중생은 대소 유무의 모든 상대에 걸려 있는 병자(病者)로 비유하면 보살행은 일체 상대의 사물에 집착하지 않는 행입니다. 불법은 한 물건도 취하지 않는 것이고, 동시에 한 물건도 버리지 않는 것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49년간 설법하고 한 마디의 설법도 한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본래 청정한 불성자리, 즉 한 생각을 일으키기 이전의 본 마음자리에 입을 열어 말을 한들 무슨 필요가 있는 일이며 도리어 불성 자리를 더럽히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또 말없는 것도 불법이 아닙니다.
마음, 즉 불성자리는 본래 정한 바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일어나던 생각을 금방 취소할 수도 있고 유무의 상대가 이 자리에서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해안 스님

봉수 해안(鳳秀 海眼) 스님
1901년생, 호는 해안, 14세에 내소사 만호 스님을 은사로 출가, 백양사에서 만암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수지했다. 1920년 불교중앙학림을 수료했으며 중국의 북경대학에서 2년간 불교학을 연구했다. 귀국 후 내소사 인근에 계명학원을 설립하여 청소년 교육 및 문맹퇴치운동에 헌신하는 한편 백양사 동래사 순회포교사가 되어 본격적으로 교화활동을 폈다. 1945년 금산사 주지취임이후 서래선림을 개설하여 참선지도에 전념했으며 1950년 다시 변산 서래산림으로 옮겨 토굴에서 두문불출하며 정진했다. 1974년 4월 1일 내소사 서래선원에서 창립 5주년 기념 7일 정진법회를 마친 다음 세수 74세 법랍 57세로 입적했다.

저작권자 © 불교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