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정산 전경

명산(名山)에서 명차(名茶)가 나기 마련이다. 경정산(敬亭山)은 안휘성의 3대 명차 중의 하나인 ‘경정녹설(敬亭綠雪)’의 생산으로 유명하기도 하지만, 사실은 그 보다 시산(詩山)으로 더욱 유명한 산이다. 시선(詩仙)으로 유명한 중국 최고의 시인 이백은 ‘홀로 경정산에 앉아(獨坐敬亭山)’란 시에서 경정산에 대한 자신의 심정을 다음과 같이 읊조렸다.

“뭇 새들 높이 날아 사라진 곳, 외로운 구름 홀로 한가로이 떠가네. 서로 마주 보고 있어도 질리지 않는 것은 오직 경정산(敬亭山) 뿐이로구나.”1)

이 시는 이백의 수많은 시 중에서도 걸작 중의 걸작으로 꼽히고 있다. 시에서도 잘 묘사되었듯이 이백은 경정산에 반하여 무려 일곱 차례나 유람하였다고 전한다.
그 외에도 당대의 유명한 시인 백거이(白居易), 두목(杜牧), 한유(韓愈), 유우석(劉禹錫), 왕유(王維), 맹호연(孟浩然), 이상은(李商隱), 안진경(顔眞卿), 위응물(韋應物), 육귀몽(陸龜夢)이 있고, 송대의 소동파(蘇東坡), 매요신(梅堯臣), 구양수(歐陽修), 범중엄(范仲淹), 안수(晏殊), 황정견(黃庭堅), 문천상(文天祥)이 있다. 또한 원대의 공규(貢奎), 공사태(貢師泰)가 있고, 명대의 이동양(李東洋), 탕현조(湯顯祖), 원중도(袁中道), 문징명(文徵明)이 있으며, 청대의 시윤장(施閏章), 석도(石濤), 매청(梅淸), 매경(梅庚) 등 수많은 중국의 역대 시인 묵객들이 앞을 다퉈 경정산을 찾아와 유람하며 경정산과 녹설차를 찬양하여 쓴 시들이 무려 천여 수에 달한다고 한다.

▲ 상품으로 개발된 '경정녹설'.
뿐만 아니라 이곳엔 이백의 ‘독좌경정산’ 시비(詩碑)를 비롯해 이곳을 찾아 시를 남긴 역대 시인들을 기념하기 위한 시비가 곳곳에 남아있다. 그래서 이곳은 시(詩)의 명산으로 세상에 널리 알려진 곳이기 때문에 ‘시산(詩山)’ 혹은 ‘강남시산(江南詩山)’으로 불린다.
경정산은 중국 안휘성의 1000년 고성(古城)인 선성(宣城)에 위치하고 있다. 선성은 안휘성의 동남 문호(門戶)이며 동쪽으로는 강소와 절강을 접해 있고, 서쪽으로는 구화산(九華山)으로 연결되었으며, 남쪽으로 황산(黃山)에 기대고, 북쪽은 장강(長江)으로 통하고 있다.
▲ 녹설의 찻잎.
천년의 시산(詩山) 경정산에서 생산되는 경정녹설2)은 항주의 용정차와 마찬가지로 납작한 편조(扁條)형이며 홍청(烘靑) 녹차에 속한다. 중국에서는 진품(珍品) 녹차 중의 하나이며, 중국 역사 명차 중의 하나로 꼽고 있다. 육우의『다경』에 의하면 경정산이 속해있는 선성(宣城)에선 이미 동진(東晋:AD317~322년)때부터 차가 생산되어 황제에게 바치는 공차(貢茶)로 지정되었었다.3)
경정녹설은 송라차(松蘿茶)의 일종으로 명대에 창시되어 명청(明淸)시기에는 공차(貢茶)로 지정되어 세상에 유명해졌으나, 후에 역사적 혼란기를 맞이하여 수십 년 간 생산이 중단되었다가 1972년에 복원 연구가 시작되어 1978년에야 비로소 중국 정부의 심평과정을 통과하여 생산이 회복되었다.
경정산은 황산의 지맥에 속하며 풍경이 매우 수려하다. 산들이 높이 솟아 있어 산골짜기 또한 매우 깊다. 운무가 덮여있어 골짜기엔 물이 졸졸 흐르고, 푸른 숲과 청죽(靑竹)이 하늘 높이 치솟아 해를 가리고, 상쾌하고 맑은 향기가 온 산에 가득하다.
『선성현지(宣城?志)』의 청나라 광서(光緖) 연간의 기록에 보면, “송라차(松蘿茶)는 도처에 모두 있는데, 맛이 쓰면서도 담백하다. 그러나 종류가 매우 풍부지만, 오직 경정녹설만이 최고품이다.”4) 라고 극찬하고 있다.
차 이름이 ‘경정녹설’로 명명된 유래에는 3가지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첫째 전설은 ‘녹설’이란 차를 따는 아가씨가 있었는데, 머리가 영리하고 손재주가 비범하였다. 그녀는 차를 딸 때 손으로 따지를 않고, 입으로 찻잎을 물고 땄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절벽에 올라 차를 따다가 그만 실족하여 절벽 아래로 떨어져 죽게 되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그녀를 기리기 위해 그녀의 이름을 따서 경정산차를 ‘녹설’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두 번째 전설은 찻물이 끓은 후, 찻잔위로 뜨거운 수증기가 마치 운무처럼 유유히 일어 구름처럼 떠있는 모습이 찻잔 속에 눈꽃이 날리고 있는 듯하다. 이것이 마치 하늘의 선녀가 꽃을 뿌리고 있는 뜻한 모습을 연상케 하는데, 그 선녀가 바로 앞에서 말한 ‘녹설’ 아가씨라는 것이다.
세 번째 전설은 뜨거운 물로 차를 우리게 되자 찻잔 속의 찻잎이 한 잎 한 잎 수직으로 가라앉을 때 찻잎의 하얀 솜털(白毫)이 뒤집어 지는 모습이 마치 푸른 숲 속에 대설이 날리는 듯하여 ‘녹설’이라 하였다고 한다.
전설이 매우 신화적인 요소도 있고, 소박한 요소가 함께 어우러져있지만, 어쨌든 명칭유래에 대한 세 가지 전설 모두가 ‘경정녹설’에 대한 특징을 중국인들 특유의 낭만적 감각으로 잘 표현한 것이 아닌가 싶다. 후자(後者) 두 가지 전설은 필자 본인도 차를 마실 때면 늘 깊이 공감하는 모습이다. 

박영환/동국대 강사


각주)-----------------
1)“衆鳥高飛盡, 孤雲獨去閑, 相看兩不厭, 只有敬亭山”
2)경정녹설(敬亭綠雪)은 안휘성 선성시(宣城市) 선주구(宣州區) 경정산(敬亭山)에서 생산된다.
3)『다경(茶經)』칠지사(七之事)
4)『선성현지(宣城?志)』광서본권6기(光緖本卷六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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