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은 동서고금을 통해 때와 곳을 알리는 상징이다. 시계가 보편화되기 전까지만 해도 종을 쳐 시간과 사건의 시종(始終)을 알렸다. 한자어 종(鐘)은 쇠로 만들고, 때리면 ‘동동’소리가 나기 때문에, 뜻을 나타내는 ‘金(금)’자와 소리를 나타내는‘童(동)’자를 합쳐서 만든 형성자(形聲字)이다.
독특한 범종의 형태와 주금술, 그리고 영겁의 소리와도 비견되는 아름다운 종소리로 세계 명종(名鐘)의 하나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우리나라 범종은 그래서 ‘한국종’이라는 학명(學名)을 얻게 되었다. 용뉴에서부터 종신의 각 부분에 이르기까지 금속공예가 총집합된 결정체라 할 수 있는 범종은 신라, 고려, 조선 등 각 시대별 특징과 양식, 사상성을 가지고 변천해 왔다.

願此鐘聲遍法界 원차종성편법계
鐵圍出暗悉皆明 철위출암실개명
三途離苦破刀山 삼도이고파도산
一切衆生成正覺 일체중생성정각
원컨대 이 종소리 법계에 두루 퍼져
철위산의 그 어둠에서 벗어나 모두 다 밝아지소서.
삼악도의 고통을 여의고 도산지옥을 허물어
모든 중생이 올바른 깨달음을 이루어지이다. ‘새벽예불 종송’

첫새벽, 그리고 저녁 어스름, 법고 목어 운판에 이어 장중하게 28번 종이 울린다. 웅장하게 시작된 범종소리는 은은한 여운을 길게 남기며 시방세계에 두루 퍼진다. 욕계의 4천, 색계의 18천, 무색계의 4천의 모든 중생들의 어두운 마음을 밝히고 탐욕과 분노 어리석음에 불타는 마음을 다독이듯 가라앉히고 제행무상을 일깨운다. 장중하면서도 이슬처럼 영롱하고 맑은 그 소리는 가슴을 뒤흔들어 설레게도 하고 벅찬 갑동에 가슴 뭉클하게도 하며 무한한 환희심을 느끼게도 하고 긴 여운을 따라 태초의 적막에 이르게도 한다.
『삼국유사』 권3에 보면 “신라 진흥왕 26년(565) 법당을 세우고 범종(梵鍾)을 달자 그 종소리는 자비로운 구름처럼 온 나라를 덮었다. 종소리가 들리자 모두 엎드려 머리를 땅에 대고 절을 하였다. 은은히 범음(梵音)이 울렸다”고 한다.
범종소리는 모든 중생의 각성을 촉구하는 부처님의 음성이었던 셈이다. 그래서 그 소리는 지옥의 고통을 쉬게 하고 모든 번뇌를 소멸시키며 꿈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정신을 일깨우는 지혜의 소리다. 범종소리는 귀로 듣는 소리가 아니다. 마음으로 들어야 한다. 일승(一乘)의 진리를 설파하는 원음(圓音)의 사자후이기 때문이다.
신라인의 불심과 미학, 음향학, 과학기술이 총체적으로 어우러져 혼연히 이뤄낸 한국종의 대표작 성덕대왕신종의 몸체에는 “큰 소리는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곳에 진동하고 있지만 이를 아무리 듣고자 하여도 도저히 그 소리를 들을 수 없으나 신종(神鍾)을 높이 달아 진리의 소리를 깨닫게 하였다.”는 명문이 있다. 종소리를 통해 사방에 끊임없이 울려 퍼지는 부처님의 원음에 항상 귀 기울여 구도심을 잃지 말아 깨달음의 길에 오를 것을 강조한 것이다. 이러한 연유로 사찰에서는 새벽에 28번, 저녁에 33번 범종을 울려 우주공간 모든 곳에 부처님의 음성이 전해져 일체의 중생들이 바른 깨달음의 길로 나아가도록 하고 있다.
현존하는 신라범종으로는 가장 오래되고 아름다운 상원사종(725년)과‘에밀레종’이라 불리는‘성덕대왕신종(771년), 625때 불타버린 선림원종, 일본에 있는 5점 등 모두 11점이 남아있다. 고려종으로는 용주사범종 등 총 97점(일본에 23점)이 있으며 조선시대 범종은 선암사대각암범종 등 96점이 남아 있다.

▲ 상원사 범종(좌상), 봉덕사 성덕대왕신종(우상), 용주사 범종(좌하), 내소사 동종(우하).
상원사 범종(국보 36호)
우리나라의 현존하는 동종 가운데 가장 오래되고 아름다운 범종. 음향이 맑고 깨끗하며, 한국종의 전형적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는 우수한 종으로 평가된다. 용뉴 좌우에 종명(鐘銘)이 음각되어 있어 주성(鑄成) 연대가 725년(신라 성덕왕 24)임을 알 수 있다. 이 종이 주성된 후 어느 절에 소속되어 있었는지 알 수 없으나, 영가지(永嘉誌)에 의하면 경상북도 안동누문(安東樓門)에 걸려 있던 것을 1469년(조선 예종 1)에 왕명에 의하여 현재의 상원사로 옮겨온 것으로 되어 있다. 높이 167cm, 지름 91cm.

봉덕사 성덕대왕신종(국보 29호)
성덕대왕신종은 신라시대에 만들어진 한국 최대의 종. ‘에밀레종’‘봉덕사종’이라 불리기도 한다. 경덕왕이 아버지인 성덕왕의 공덕을 널리 알리기 위해 만들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손자 혜공왕이 771년에 완성했다. 1460년 봉덕사에서 영묘사로, 다시 1915년 국립경주박물관으로 옮겨졌다. 1992년 제야의 종을 친 뒤 타종을 중단하였다가, 1996년 학술조사를 위해 시험으로 타종되었다. 2001년부터 2003년까지 3차례 타종되었으나, 보존을 위해 금하고 있다. 높이 375cm, 지름 227cm, 무게 18.9톤.

용주사 범종(국보 120호)
신라 종 양식이 남아 있는 고려 초기 범종. 종 몸체에 854년(고려 문성왕 16) 조성된 것이라는 후대에 새긴 글이 있으나, 종의 형태와 문양이 그 시대와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고려 전기의 종으로 짐작하고 있다. 용통에 약간 금이 가고 유두가 부서진 것 말고는 보존 상태가 좋으며, 고려시대 범종으로는 드물게 보이는 큰 종이자 조각한 수법이 뛰어나 고려 종의 걸작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높이 144㎝, 지름 87㎝.

내소사 동종(보물 277호)
1222년(고려 고종 9)에 내변산 청림사의 종이었으나, 절이 폐사된 뒤에 땅속에 묻혀있던 것을 발굴하여 1856년에 내소사로 옮겨왔다. 동(銅)으로 제작되었으며, 무게는 420㎏이다.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으며, 종신에 삼존상이 섬세하게 양각돼 있어 고려 후기의 대표적인 동종으로 평가된다. 아랫부분과 윗부분에는 덩굴무니 띠를 둘렀고, 어깨부분에는 꽃무늬로 장식했다. 또 몸통부분에는 삼존상이 새겨져 있고 종을 치는 부분에는 연꽃으로 장식돼 있는데, 정교하고 사실적이어서 고려후기 걸작으로 꼽힌다. 높이 103㎝, 지름 67㎝.

박윤경/MBC 구성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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