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생각하고 말하고 글을 쓰면서 살아간다. 우리의 일상을 들여다보면 대체로 생각한 것을 말로 표현하
고 그것을 다시 글로 쓰는 일도 하면서 하루하루를 견디고 있음을 알게 된다. 오늘 아침에도 일어나자마자 갖가지 생각을 하면서 신문을 들여다보거나 건성으로 텔레비전을 켜놓고 밥을 먹은 후에 출근길을 서둘렀을 가능성이 높고, 직장에 나가서도 일과 사람들 사이에 끼어 온갖 생각과 느낌을 말과 글로 감당해가면서 남은 하루를 견디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글을 쓰는 것일까? 생각하고 말하는 것이야 진화의 과정 속에서 얻게 된 제2의 천성에서 비롯하기 때문에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지만, 글을 쓰는 일은 그런 본능에 대한 충실만으로는 온전히 설명되지 않는 어떤 다른 이유가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말이 대체로 준비가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나오거나 준비를 했더라도 막상 시작하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감정에 휩쓸려 본래 생각과는 다른 방향으로 흘려버리는 일을 경험하면서 사람들은 글이라는 다른 소통의 매체를 생각하게 되었는지 모른다. 어찌되었건 우리들은 조선 시대 이후로 한글이라는 고유한 글을 갖게 되었고, 그보다 더 오랜 역사 속에서 한자(漢字)라는 동아시아 문화권의 글자를 공유할 수 있게 되었다.

인간 삶의 주요 기반을 이루는 그 말과 글이 언제부턴가 행복한 삶을 방해하는 무기가 되어 우리를 공격해오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다른 사람을 비난하거나 속이는 도구로 활용하기도 하고, 계층 간의 위화감을 조성하는 매개체가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너무 많은 생각과 말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최소한의 기회마저 빼앗아버리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글의 경우에도 인터넷 공간의 댓글이라는 형태로 손쉽게 주고받을 수 있게 되면서 깊은 상처를 주고받거나 한 사람을 악의적으로 매도하는 이른바 마녀사냥의 수단이 되고 있기도 하다.

그러면서 우리는 그 말과 글로부터 벗어날 수 있기를 꿈꾸기도 하고, 수행 과정에서 묵언수행이라는 이름으로 그것을 실천해 보기도 한다. 그러나 어울려 살 수밖에 없는 존재인 인간이 말과 글을 온전히 떠나서 살아가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아도 지나치지 않다.

가끔씩 깊은 산 속에서 오랜 시간 동안 혼자서 살아가는 사람을 볼 수는 있지만, 그가 온전한 인간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이처럼 우리가 말과 글을 떠나서 온전히 살아갈 수 없다면, 그 말과 글을 제대로 사용하려는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할 듯하다.

석가모니 붓다는 잘 살아가기 위한 중요한 요건 중 하나가 말과 글을 제대로 사용하는 것임을 여러 경전을 통해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다. 때로는 사람이 지을 수 있는 세 가지 악업이 몸과 입, 뜻으로 짓는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하고, 때로는 따뜻한 말과 위로의 소중함을 자비의 윤리로 강조하기도 한다.

사리자야, 보살(菩薩)은 거짓말을 멀리하고 이간질하는 말을 멀리하며, 추악한 말과 꾸미는 말을 멀리한다. 이것을 ‘말에 관한 보살행[言妙行]’이라고 한다.(《대보적경》〈시라바라밀품〉)

우리가 일상 속에서 쉽게 하는 거짓말이나 꾸미는 말을 멀리하는 것은 물론 이간질과 추악한 말을 멀리하는 것이 보살행이라는 붓다의 가르침은 모든 사람들이 새겨야 하는 가르침이지만, 특히 글을 매개로 삼아 사회와 인간을 소통시키고자 하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불교 언론과 언론계 종사자들에게 꼭 필요한 가르침이다.

불교 언론이 세상을 바르게 비추는 거울이어야 하고, 그 거울을 통해 붓다의 가르침이 얼룩짐 없이 비추기 위해서는 먼저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이 맑아야만 한다.

물론 일상 속에서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일은 쉽지도 않고 때로 바람직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바로 그 기준을 잡아가고자 하는 중도(中道)의 자세, 즉 자신의 일상이 끊임없이 다르마(dharma)를 지향하고자 하는 노력이 필수적일 수밖에 없다. 처음에는 쉽지 않겠지만, 그런 노력들이 모아져 개인과 공동체의 내면과 규범으로 자리를 잡게 되면 그것이 곧 보살의 삶으로 향하는 길이 된다.

보살의 삶은 우선 마음의 지향에서 시작된다. 그것이 몸으로 이어지고 뜻으로 새겨지면서 말과 글을 통해 밖으로 드러난다. 불교는 그 과정을 있는 그대로 응시하면서 바람직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철학이자 종교이면서 동시에 윤리이다. 불교 언론과 언론인들은 그러한 불교, 즉 붓다의 가르침을 배경으로 삼아 주로 글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는 방편이자 연기적 주체이다. 가상공간의 만남을 넘어선 현실공간에서 종이라는 따뜻한 매체를 통해 세상과 사람은 물론 자신과도 만나고자 하는 크고 넓은 원을 세운 ‘불교저널’이 보살의 언어를 확산시키는 청정함과 걸림없음[無碍]을 늘 간직해갈 수 있기를 기원한다.

-박병기/한국교원대 교수, 동양윤리교육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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