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장수품이 설해진 인연

중생들은 오래 살기를 바란다. 하지만 중생들이 사는 사바세계는 인연으로 생겨서 인연으로 멸하므로 제법이 무상(無常)하다. 따라서 수명 또한 무상하다. 이 품은 이러한 무상한 제법에서 영원함을 얻은 여래의 장수를 설하여, 중생들로 하여금 여래의 장수를 구하도록 하였다. 여기서 여래의 장수란 여래의 수명이 영원함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열반에 들어있는 여래의 상(常) 락(樂) 아(我) 정(淨)의 영원함을 말한다. 따라서 이 품을 통하여 중생들이 구해야 할 여래의 장수는 자리이타의 보살도를 닦아서 여래의 일체종지를 구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열반경》 이전의 교설에서 장수는 무상한 사바세계에서 영원한 안락을 추구하는 일종의 욕망과 집착으로 보았다. 《반야경》에서는 일종의 삶에 대한 집착으로 보아 버려야 될 대상으로 보았고, 특히 ‘금강경’에서는 아상(我相) 인상(人相) 중생상(衆生相) 수자상(壽者相)의 사상 가운데 하나로써 반드시 타파해야할 대상으로 여기고 있다. 또한 중생들이 극단적으로 오래사는 사주(四州)중의 장수촌은 여래가 출현하지 않는 팔난처의 하나로 경계하고 있다. 여기서 설하는 여래 수명의 장수 의미는 아무래도 《법화경》 ‘여래수량품’의 여래수명의 무량함에 상통하는 교설이라고 할 수 있다.

《법화경》에서 여래는 구원겁 전에 성불하여 생멸이 없는 영원한 수명으로 과거부터 현재 미래에 걸쳐 중생을 제도하는 부처로 설한다. 그리고 세상에 출현하는 부처는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나투는 응화(應化)의 부처로, 중생에게 무상한 사바세계의 진실을 바로 알도록 하기 위해서 생멸의 모습을 보인 것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금강경》에서는 이렇게 색신의 부처에 집착해서는 참된 불도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고 설하였다. 지금 《열반경》에서 장수를 얻은 여래는 생멸이 없는 영원한 생명의 법신불로 중생들이 이러한 장수를 얻으려면 보리의 인(因)을 닦아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어야 한다는 것이다.

2. 여래 장수(長壽)의 업인(業因)과 상주(常住)의 과(果)를 밝힘

‘장수품’은 계율에 대한 질문을 권하는 내용과 가섭보살이 여래의 장수에 대해 질문하고 부처님이 대답하는 내용이다. 이와 같은 문답은 ‘제17대중소문품’까지 34문답이 이루어지는데 그 첫 번째가 ‘장수품’ 문답이다. 이 품의 문답은 장수의 인(因)과 과(果)에 대해 밝히는 내용이다.

세존은 그 지혜가 한량 없고 선정도 헤아릴 수 없으며, 연설하고 가르치심도 한량 없어서 성문이나 중생들은 이 법장을 오래도록 지니지 못하므로 보살에게 법을 부촉하여 법보가 오래도록 머물러 많은 중생을 안락케 한다.

1) 장수의 원인을 밝힌다.
여래가 얻은 장수는 보리의 인(因)을 잘 닦아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과를 얻기 때문이다. 보살이 여래의 장수를 얻으려면 일체중생들을 아들처럼 옹호해야 하고, 대자 대비 대희 대사한 마음을 내어 살생하지 않는 계행을 가르쳐주고, 오계 십선을 닦아야 한다. 또한 지옥 아귀 축생 수라와 같은 악취에 고통받는 중생을 제도하며 제도하여 열반을 얻게하며, 두려움의 중생을 위로해주면 보살은 이러한 업인(業因)으로 수명이 길고 지혜가 자재하여 천상에 나게 된다.

2) 장수의 업인을 밝히는 데에는 4번의 논의가 있다.
첫째 논의는 보살이 중생들을 아들처럼 옹호한다는 것은 모든 중생에게 평등심을 내어 제도한다는 것이다. 이들이 설사 불법 중에 계행을 파하거나 역적죄를 짓거나 불법을 훼방하는 이가 있더라도 중생을 아들처럼 생각하여 인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여래가 계시거나 열반한 뒤에 중생들이 불법을 훼방하거나, 계행을 갖춘 승려가 정법을 파괴하는 것을 보면 자비한 마음으로 구견갈마(鷗遣羯磨) 가책갈마(呵責羯磨) 치갈마(置羯磨) 거죄갈마(擧罪羯磨) 불가견갈마(不可見羯磨) 멸갈마(滅羯磨)로 다스려서 복을 받게 해야한다. 셋째, 중생들을 평등하게 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칼을 들어 부처님을 해하고 다른 사람은 전단향을 부처님 몸에 발라 드릴 경우, 두 사람 중 계행 범한 이를 다스리게 된다면 이는 평등심에서 어긋나는 것이 아닐까하는 의문에 대해서 이를 다스리는 것은 사랑하는 마음으로 성취시키고자 하는 마음이므로 평등심에서 잘못이 아니라는 것이다.

다만 중생들이 계율과 선정과 지혜로 점점 나아가게 할 것이요, 게으르고 계행을 범하고 바른 법을 파괴하면 마땅히 엄하게 다스려야 한다고 했다. 넷째, 보살이 평등한 마음을 닦아서 모든 중생을 아들처럼 생각하고 제도한다면 여래의 장수를 얻어 세상에 상주한다고 하였는데, 부처님의 수명이 짧아 세상 사람들과 다름없으니 이는 여래가 중생을 원망하고 미워한 결과가 아닐까 여긴다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여래수명은 한량없어서 모든 작은 강들이 큰 강으로 흘러들어 가듯이 모든 인간이나 천상이나 공중에 있는 생명의 강들이 모두 여래 수명의 바다에 흘러들어 간다고 한다.

3) 삼보의 영원함을 밝힌다.
삼보의 법은 영원하여 세간에 상주한다. 삼보의 법은 항상된 법이므로 중생들이 귀의할 곳이 되고 항상 닦아야 하며, 이와 같이 항상하므로 세상에 항상 주(住)한다는 것이다. 이 바른 법을 믿고 잘 받들어 수호하고 널리 설하면 이러한 선업의 인연으로 장수하게 되고 숙세의 세상 일을 알게 된다고 하였다.

4) 장수의 과(果)로 불보(佛寶)의 영원함을 밝힌다.
오신통을 얻은 신선도 한 겁이나 조금 모자라는 수명으로 자재하게 신통을 부린다. 이에 비해 여래는 제법에 자재함을 얻어서 한 겁 내지 한량없는 겁 동안 살면서 항상 세상에 머물고 있으며, 여래는 변하지 않는 법이고 여래의 몸은 변화한 몸이요 잡식(雜食)하는 몸이 아니지만,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일부러 독나무[毒樹]와 같이 보이는 것이다. 여래는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열반에 듦을 보인 것일 뿐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모든 보살은 제일의 이치에서 부지런히 닦고 남을 위하여 이를 널리 연설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기운/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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