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식량농업기구의 보고서 ‘세계 곡물의 수급현황과 전망’을 보면, 올해 소맥, 쌀 등 곡물의 생산량은 19억9천2백만톤이다. 소비량은 18억9천만톤으로 생산량이 소비량을 넘는다. FAO는 “아직까지는 괜찮다. 기록적인 풍작을 기록한 과거보다는 못하지만, 여러 지표에서 우려될만한 징조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지구에 발붙이고 사는 8억명의 사람들이 굶주림의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날마다 먹지 못해 삶과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고 있다. 실제 1년에 1천2백만명의 사람들은 굶주림이 원인이 되어 목숨을 잃는다.
에티오피아의 심각한 상황은 잘 알려져 있다. 유엔아동기금(유니세프)의 통계에 따르면, 에티오피아에서 부모가 없는 부랑아는 최소 10만명을 넘는다. 수도 아디스아바바엔 괭한 눈의 아이들이 손을 내밀며 달려든다. 구걸을 하지 못하면 죽음에 이른다.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기준인 1일 곡물 5백g(열량기준 9백㎉)도 채우지 못하는 주민이 1백90만~2백50만명이다. 에티오피아인들의 평균수명은 47살이며, 유아사망률도 6·25전쟁 당시의 한국 수준인 1천명당 1백25명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에티오피아와 같이 식량부족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나라는 지구상에 40개국이나 된다. 콩고, 방글라데시, 인도네시아, 수단, 모잠비크, 소말리아, 르완다, 여기에는 북한도 포함된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북한의 식량난은 세계 언론의 주요한 관심거리였다. 우리 언론도 예외가 아니었다. 급기야 미국 정부의 국가개발처 조사단이 북한을 방문했다. 미국이 민간기구의 모금만으로 북한에 식량을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 차원에서도 나서겠다는 의도를 나타낸 것이다. 북한도 이를 받아들였다. 그만큼 심각했던 것이다. 미국의 조사단에게 북한의 관리들도 “올해도 식량 부족분이 2백10만톤 정도”라고 말했다.
이러는 가운데 올해 초 최근 5년간 북한의 인구가 감소 추세에 있으며, 그것의 원인은 식량부족이라는 보고가 있었다.
올해 북한의 곡물생산량은 3백48만t으로 지난해에 비해 70만t 가량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지만, 최소 필요량인 4백83만t에는 1백35만t이 부족할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 정부는 올해 식량과 함께 벼와 옥수수 종자, 비료를 지원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경제위기에도 불구하고 민간단체의 대북지원도 활발하다. WFP(세계식량계획)도 북한에 50만t의 곡물을 지원할 계획이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현재 전세계 인구 59억명 가운데 10%가 훨씬 넘는 8억명이 만성적인 기아상태에 놓여 있다. 더욱이 1천2백만명은 먹을 것이 없어 목숨을 잃고 있다. 이같은 상황이 나아지리란 희망의 근거를 찾을 수 없다는 데서 문제의 심각성은 지속된다.
FAO는 또다른 보고서인 <2010년의 세계농업>을 통해 2010년께 세계 곡물의 수급은 균형을 달성할 것으로 예상했다. 개발도상국은 1억6천2백만t의 곡물 공급부족으로, 2010년에도 여전히 6억4천만명의 사람들이 식량에 대한 접근이 제한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식량생산의 불균형과 저소득 식량부족국가들의 기아 문제가 여전히 심각하다는 것이다.
이같은 전망을 뒷받침하는 것이 인구의 증가다. 세계인구는 30여년 전의 30억명에서 75년 40억7천만명, 85년 48억5천만명, 98년 59억으로 증가했다. 2025년에는 지금보다 50% 정도 늘어난 85억명이 되고, 연평균 8천5백만명이 늘어날 것으로 유엔은 예측하고 있다. 2000년대 들어 빈발하고 있는 엘니뇨, 라니냐 등 이상기후도 세계농산물시장의 교란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낙관적인 전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지난 30여년 동안 세계 식량생산은 기술발전에 힘입어 두 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이런 기술발전은 앞으로도 거의 같은 속도로 계속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제부터 생명공학의 발전이 식량생산에 큰 구실을 할 것이다.” 세계 식량수출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카길’ 소속의 경제학자 팀 보딘의 전망이다.
이와는 반대로 식량잉여의 시대가 끝났다는 비관적인 전망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월드워치연구소 레스터 브라운 회장은 향후 지구촌의 최대 난제를 식량난으로 꼽고 이렇게 경고한다. “세계는 식량잉여의 시대가 끝나고, 곧 식량부족시대로 접어들게 된다. 인류는 생물학적 멸망의 가능성에 직면할 것이다.”
중국의 곡물수출이 어려워지면 식량부족 국가들로부터 대량의 이주민이 유출될 것이며, 불모지가 경작지로 바뀌어 환경문제는 더욱 악화될 것이다. 그 결과 굶주림이 만연하는 것이다.
브라운회장은 또 △기상이변과 생태환경의 파괴로 식량증산이 정체상태 지속 △인구증가 등 곡물수요의 증가로 식량부족사태의 국지적 발생 △식량무기화로 식량 자급도가 낮은 국가들의 식량수급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식량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생명공학의 발전에 기대를 걸어보지만, ‘유전자 오염’이라는 두려움을 동반하고 있다. 제초제나 해충·질병 등에 강하도록 이식한 유전자가 꽃가루를 통해 다른 생물에 퍼지는 것을 막을 수 없으며, 이렇게 되면 어떤 제초제나 살충제로도 막을 수 없는 ‘수퍼 잡초’와 ‘수퍼 해충’ ‘수퍼 바이러스’가 등장해 파국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류는 식량부족의 해결을 위해 생태계의 가공할 교란에 직면할지도 모른다.
거시지표로 보면 굶주릴 이유가 없다. 곡물 생산량은 세계의 모든 사람이 충분히 먹을 수 있는 분량이다. 아직까지, 현재의 상태는 그렇다. 앞서 인용한 FAO의 보고서대로 ‘아직까지는 괜찮다.’ 그러나 현재 에티오피아 소말리아 등의 국민들은 분명 굶주림의 고통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굶주림의 1차적 원인은 이들 나라의 내부에 있다. 세계식량계획(WFB) 에티오피아지부의 스테픈 앤더슨 개발조정관은 “무엇보다 지난 시절 이 나라 지도자들의 잘못이 크다”고 지적한다. 지난 30여년 동안 내전과 무모한 사회주의 실험 그리고 경제개발을 뒷전에 둔 권력다툼으로 국토는 황폐해지고 국민들은 최악의 빈곤으로 내몰렸다.
선진국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19세기와 20세기에 식민지를 강요당한 굶주림의 나라들을 향해 지금은 ‘돈의 논리’를 전파하고 있다. “더 많은 농작물을 심기 보다, 가난한 사람들이 더 많은 식량을 살 수 있도록 소득을 창출해야 한다”며 결국 ‘돈의 문제’로 귀결시키는 논리를 계속 유지하는 한 ‘괜찮다’는 통계와 굶주리고 있는 엄연한 현실 사이의 간격은 좁혀지지 않는다.
불교에서는 재물의 나눔, 재시(財施)를 중요한 실천윤리로 삼을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인간뿐 아니라 모든 생물의 첫째 생존조건이 먹음에서 비롯하기 때문이다. 부처님은 <대반열반경>에서 재가신자들이 계를 범하고 악행을 할 때 생겨나는 다섯 가지 재앙 가운데 첫 번째로 음식이 부족해진다고 설했다. 반대의 겨우에 생겨나는 행복 중 가장 첫째는 음식이 풍부해진다고 했다. 먹는 것의 중요성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대승불교의 <반야경> 등에서 보시바라밀을 중시하면서 특히 재물 보시의 의의를 높게 평가하고 있는 것은 현실세계에 대한 불교 본연의 자세를 강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재시가 자비의 실천 방도로써 중시될 때 경제적 빈곤이라는 현대의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정승석 동국대 교수)는 풀이는 2천5백년 전 인도라는 시공을 뛰어넘어 여전히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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