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나는 교리 신호1)에게 한퇴지2)의 글을 배웠는데 〈고한 스님을 전송하며〉라는 시의 서문에서 ‘승려가 환술에 능하고 재주가 많다’라는 대목에 이르러 물었다.
“어떻게 하는 것이 환술과 재주에 능한 것입니까?”
교리가 말했다.
“근래에 과천에 사는 원두한이3)가 참외를 가득 채운 짐을 들고 한강에서 배에 올랐다네. 그 때 같은 배를 타고 가던 한 승려가 ‘무더운 날씨에 속이 탈 듯이 더우니 참외를 이 배에 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으면 하오.’ 하고 말했지. 원두한이는 ‘밭 갈고 물대며 애써 익혀서 시장에 팔지 않고 도리어 남에게 주란 말이오?’ 하고 대답했네. 승려는 ‘내가 밭을 갈지요. 익히는 것도 매우 쉬워 내가 자연히 갖게 되는데 어찌 당신에게 기대하겠소?’ 하고는 드디어 지팡이로 배 안에서 밭을 갈았네. 밭을 다 갈고는 씨를 부렸고 씨를 뿌리고 나자 가지가 자라났네. 가지가 자라더니 넝쿨이 뻗고 꽃이 피고 열매가 열려 커졌으며 다 크자 익었다네. 그러더니 잠깐 사이에 배에 가득히 익어 늘어진 것이 참외 빛깔이며 감미로운 향이 코를 찔렀다네. 곧 넝쿨을 거두고 참외를 따서 배 안의 사람들에게 모두 나누어주니 함께 배를 탄 사람들이 모두 갈증을 풀 수 있었다네. 잠시 후 배가 북쪽 기슭에 닿으니 승려는 지팡이를 들고 배에서 내려 가버렸다네. 원두한이가 육지에 오른 후 그 짐바리를 보니 반이나 비어 있어 그 승려를 쫓아갔으나 간 곳을 알 수 없었지. 이러한 것을 일컬어 승려가 환술에 능하고 재주가 많다고 하는 것이라네.” (어우야담 2권, 종교편, 선도)

昔余學韓文于申校理灌氏. 至送高閑上人序. 浮屠善幻多技能. 問何爲善幻善技能. 校理曰近來果川園丁. ?叢甘瓜一?. 上漢江船. 同船有一僧曰. 逢天之暑我心如焚. 願施甘瓜與同舟分. 園丁曰耕耘漑灌努力成熟. 不賣于市反爲若德乎. 僧曰耕耘在我成熟孔易. 我自有之何待於爾. 遂取?枝耕于船中. 耕訖而種. 種訖而生生訖而蔓蔓訖而花. 花而實實而長. 長而熟. 須曳之間. 滿船籬籬蒲?之色甘香?鼻. 捲蔓而摘之. 盡分同船. 同船之人無不解渴. 已而. 船到北崖. 僧携?下船而去. 園丁登陸視其?. 平空矣. 追其僧不知所之. 此之謂浮屠善幻多技能. (於于野談 卷之二 宗敎篇 仙道)

박상란/한국불교선리연구원 상임연구원

각주)-----------------
1)신호(申浩): 1539~1597. 조선 중기의 무신. 자는 언원(彦源). 본관은 평산(平山). 고부(古阜) 출생. 임진왜란 때 이순신을 도와 해전에서 공을 세워 통정대부에 오름. 시호는 무장(武壯).
2)한퇴지(韓退之): 한유(韓愈,768~824). 중국 당(唐)나라 문학자 사상가. 자는 퇴지(退之). 창려(昌黎) 출생. 시호는 문공(文公).
3)원두한이: 밭에 오이, 수박, 참외, 호박 등을 기르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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