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자도 채 되지 않는 『반야심경』은 한국 불자들에게 가장 친숙한 경전이다. 불자뿐만 아니라 웬만한 사람들도 다 안다. 절에서는 예불 때마다 독송되고 수행의 하나로 이루어지는 사경도 『반야심경』을 가장 많이 한다. 하지만 그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반야심경』의 본뜻을 알아보려고 들면 미궁 속에 빠져버리기 십상이다. 왜냐하면 현실생활과 분리해서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히로 사치야 지음, 이미령 옮김.

그러나 히로 사치야와 함께『반야심경』산책길에 나서면 안심해도 좋을 것이다. 그와 함께 경 한 줄을 읽고서 세상을 찬찬히 살펴보면 횡단보도에서 스치는 사람, 지하철에서 읽은 책의 한 구절, 나를 뜨끔하게 비난하던 사람들의 손짓 등등에서 『반야심경』은 우럭우럭 가슴에 안겨온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반야심경』의 핵심사상인 ‘공空’의 철학은 선입관을 갖고서 세상을 고정화된 시각으로 보지 말고 집착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런 내용을 이 책은 『반야심경』의 한 구절 한 구절을 이해하기 쉽도록 적절한 예화를 들어 일상의 문제와 접목시켜 설명해 놓고 있어서 『반야심경』의 가르침을 우리 삶의 든든한 울타리로 삼도록 하고 있다.
도법 스님이 책의 발문에서 지적하고 있듯이 제 21강 ‘벌거벗은 임금님’은 ‘공불이색’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는데, 『반야심경』의 핵심사상인 ‘공(空)’의 철학을 평범한 일상으로 끌어내는 탁월함을 보이고 있다.
제 44강 ‘선입관을 버려라’는 『반야심경』의 ‘무무명(無無明)’을 설명해놓은 부분인데 중국 북송시대의 정치가이자 학자인 사마온공(司馬溫公)의 어린 시절의 일화로 우리가 어떤 문제에 봉착했을 때 우리의 선입관이 문제의 해결을 방해하고 있다는 것을 잘 지적하고 있다.
아이가 물 항아리 속에 빠졌을 때 우리는 그 아이를 밖에서 구출해내야만 한다고 생각하지만, 값비싼 물항아리일지라도 깨뜨리고 아이를 구해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물 항아리를 깨면 된다는 해결책 정도는 어린 아이들도 생각해낼 수 있지만 우리에게는 선입관이 있어서 그 생각이 퍼뜩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본래 지니고 있는 지혜를 선입관이 가리고 있다는 말이다.
제 40강 ‘고목한엄(枯木寒嚴)’에선 ‘무색성향미촉법’을 선가에서 전해지는 ‘고목한엄’에 얽힌 청정한 스님 이야기를 통해 설명하고 있는데, 우리가 빠지기 쉬운 오류를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올바름’에 집착하여 인간관계가 경직되고 인생의 즐거움을 잃어버리는 우를 범하는 우리들에게 일침을 가하면서 삶을 따듯하고 넉넉하게 사는 법을 가르쳐주고 있다.
제57강 ‘바나나와 보시’에선 좋은 일을 할 때 ‘나는 좋은 일을 하고 있다’며 무의식중에 마음에 얽매임을 가져버리는 우리들에게 진정한 보시의 의미를 『반야심경』의 ‘심무가애’속에서 잘 설명해놓고 있다.
이처럼 히로 사치야의 『반야심경』 이해는 해석이나 설명방식 모두 새로운 정도가 아니라 파격적이다. 삶과 유리된 번쇄한 해설을 과감히 탈피하고 ‘어떻게 행복한 삶을 누릴 것인가’라는 일관된 시각으로 경전을 해석한 것은 매우 탁월하다. 그는 『반야심경』의 핵심적인 가르침, 행복의 비결을 다섯 가지로 요약한다. 첫째, 욕심을 줄인다. 둘째, 적당해야 한다. 셋째, 집착하지 않는다. 넷째, 차별하지 않는다. 다섯째,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다.
행복은 없는 무엇을 만들어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발견하는 것이다. 사물과 인생을 바라보는 시각을 조금만 바꾸면 행복이 바로 곁에 있다. 그 관점의 혁명이 바로 불교이고, 『반야심경』의 가르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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