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인들은 청빈하고 가난하게 살아야 하는가. 성직자나 수행자들은 신도들에게 ‘무소유’적인 가르침을 설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부자들도 대부분 종교를 가지고 있으며, 신도들에게 재물을 소유하지 말라는 가르침 또한 없다.

사람들은 불교의 경제관을 ‘무소유’로 잘못알고 있다. 출가 수행자들의 삶은 무소유 생활이다. 오직 소유할 수 있는 것은 옷 한 벌과 발우 하나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처님은 재가자들에게는 정당한 방법으로 열심히 노력하여 보다 많은 재화를 획득하라고 가르쳤다. 중생들의 안정된 경제활동은 건전한 도덕생활을 유지하고 넓게는 사회질서를 유지시켜 주기 때문이다. 재물은 자신의 삶은 물론 타인에게까지 안락을 줄 수 있고, 수행자들에게 공양을 할 수 있는 데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또 재물을 취득하되 정당한 방법 곧 이법(理法)에 따라 늘리라고 하셨으며, 들어온 수입은 4등분하여 그 하나는 의식주 생활비에 충당하고, 또 하나는 다음 경제활동을 위해 재투자하고, 다른 하나는 저축과 고용인의 급여로 충당하고, 나머지는 이웃을 위해 베풀어 주라고 가르쳤다. 빈곤한자는 게으르기 때문이며, 이들은 만용을 일으키고, 도둑질을 행하여 사회질서를 무너뜨린다고 경고했다.
불교의 경제윤리가 이처럼 법에 있다면, 기독교의 경제생활은 하나님 나라를 지향하는데 있다. ‘이 세상의 모든 물질은 다 하나님의 것이며, 우리는 그것을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하도록 위탁받은 것이다’라는 뜻이다. 성경에서는 경제생활에 대해 성실하고 근면하게 일해서 자기 자신과 노부모님을 포함한 자기가족의 생계를 책임 있게 공급하며, 자녀교육과 불의의 사고를 예비한 저축과, 구제 및 헌금, 각종 세금만 충당할 수 있는 만큼 근로생활을 하라고 했다. 또한 ‘부는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이다’며, 부자는 선한 부자와 악한 부자가 있다고 했다. 일할 수 있는 능력과 기회가 있는데도 타인의 도움을 받고 살거나 무책임하게 노는 것은 비윤리적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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