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은 깨끗한 것도 받아들이고 더러운 똥과 오줌도 받아들인다. 그러나 땅은 ‘이것은 깨끗하다. 이것은 더럽다’고 분별하여 좋아하거나 싫어하지 않는다. 이처럼 수행하는 사람은 그 마음을 땅과 같이 해야 하리라. 나쁜 것을 받거나 좋은 것을 받더라도 조금도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마음을 내지 말고 오직 사랑하고 가엾이 여기는 마음으로 중생을 대해야 한다.”『증일아함경』

‘중생들의 세계’인 땅은 하늘과는 또 다른 정기를 간직한 공간으로, 만물의 존재양상을 다스리는 힘이 존재하는 곳으로 여겨지는 곳이다. 동·서양 가릴 것 없이 땅은 ‘어머니’ ‘고향’ 등을 상징하며 온갖 생물·무생물을 품어주고 키워내는 곳이다. 모든 것을 분별없이 품에 안을 수 있는 ‘어머니’에 견주어지기에 ‘풍요’를 상징하며 만물을 생산해 내기에 근본으로 여겨진다. 만물을 이루고 있는 4대 요소로 지(地)·수(水)·화(火)·풍(風) 가운데 땅(地)은 ‘인체의 골격과 같이 물체가 오래 지속하게 하는 작용을 하도록 기본을 이루는 것’이라 여겨지고 있다.
원효스님은 『무량수경종요(無量修經宗要)』에서 ‘중생심(衆生心)의 성품은 허공과 같이 걸림 없이 자유로운 것이니 어떠한 모습으로 규정지을 수 없는 것이다. 하물며 불국토니 예토니 하는 구분이 있을 수 있겠는가. 다만 중생 스스로가 미혹하여 갖가지 혼탁한 흐름에 빠지는 것일 뿐이며 이러한 일들은 모두 거대한 꿈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꿈을 깨고 보면 이곳과 저 곳의 구별이 없어지고, 예토니 불국토니 하는 것도 본래 일심(一心)으로 나뉠 수 없음을 알게 될 것이다’하고 말하였다. 우리들의 현실세계인 예토도 마음먹기에 따라 불국토화할 수 있다는 뜻이다. 불교에서의 땅은 중생들이 사는 현실세계이면서 부처님이 화현하는 ‘도량(道場)’을 총체적으로 상징하고 있다.
“사복이 말을 마치고 풀뿌리를 뽑으니 그 아래에 명랑하고 청허한 세계가 전개되었다. 칠보 난간에 누각이 장엄하여 인간세상이 아니었다. 사복이 어머니의 시신을 업고 들어가니 땅은 금방 닫혀졌다.” 삼국유사의 이 기록은 땅 밑이 죽은 이의 세계(저승)이면서 동시에 또 다른 불법의 세계, 곧 화엄의 세계임을 말하고 있다.

서방정토
정토(淨土)는 번뇌를 여의고 깨달음의 경지에 든 부처님이나 보살이 사는 청정한 국토를 상징한다. 즉 번뇌의 더러움을 여윈 깨끗한 세계이다. 경전에서는 미(迷)한 인간이 사는 세계가 아닌 곳으로 ‘불찰(佛刹)’이라고도 한다. 서쪽 방향을 가리키는 ‘서방’이라는 이름과 함께 쓰이는 까닭은 인도인들의 방위관과 시간관에서 유래한다. 인도인들은 동쪽을 보면서 앞은 과거, 뒤는 미래라고 믿어 극락이 서방에 있고 내세에 왕생할 세계로 믿었다. 정토의 위치를 『화엄경』에서는 ‘연화장세계 가운데 불찰 미진수 찰종(刹種)이 있으니 찰종은 모두 이십중(二十重) 세계로 되었다. 찰종의 제십삼층(第十三層)에 우리가 살고 있는 사바세계가 있으니 십삼불찰 미진수 세계로 둘러 싸였으며 사바세계의 서쪽으로 십만억세계를 지나가서 정토세계가 있다’고 설명한다. 또 정토의 모양을 『아미타경』에서는 ‘대지(大地)는 금·은·산호·호박 등 칠보(七寶)로 되어 아름답게 광명이 비치고 있고, 이 칠보의 땅은 갓이 없이 넓으며 항상 온화하여 적응하기 좋은 곳’이라고 묘사하고 있다.
사찰이름에 ‘정토사’가 유난히 많은 것도 ‘서방정토’에 이르고자 하는 중생들의 마음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정토삼부경
『무량수경(無量壽經)』과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 『아미타경(阿彌陀經)』 이 세 가지 경을 합해서 ‘정토삼부경(淨土三部經)’이라고 한다. 이렇게 부르는 습관은 일본에서 생긴 것이지만 모두 다 서방극락정토, 아미타불의 나라에 왕생하기를 바라는 정토신앙에 관련한 경전이다. 정토삼부경의 요지는 ‘칭명(稱名) 염불을 통한 정토왕생’에 있다는 것이 일반적 통념이다.

지옥
‘지옥(地獄)’은 산스크리트 ‘Naraka (奈落迦·奈落)’의 의역인데 ‘행복이 없는 곳’ 또는 ‘사람이 죽어서 가는 어두운 곳’을 가리킨다. 죄업에 따라 생사를 반복하는 지옥, 아귀, 축생, 수라, 인간, 천상의 육도(六道) 중의 하나로 죄의 과보를 받는 고통스러운 곳. 지옥에 대한 이야기는 중생들로 하여금 지옥의 고통이 얼마나 무섭고 또 무거운가를 일깨워 나쁜 짓을 그치고 착한 일을 널리 행하도록 하는데 그 참뜻이 있다.
경전에 나타난 지옥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내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는 ‘지장보살도’ ‘육도그림’, ‘시왕도(十王圖)’ ‘감로왕도(甘露王圖)’가 있다. 절에서 명부전(冥府展)과 시왕전(十王展) 등이 신앙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 역시 죽어서 지옥에 떨어지지 말고 극락에 가고자 하는 염원의 상징이다.

지장보살
지장(地藏)보살은 도리천에서 석가여래의 부촉을 받고 매일 아침 선정(禪定)에 들어 중생의 근기를 관찰하며, 모든 생명을 기르는 대지처럼 세상을 큰 가슴에 보듬어 안고 중생의 웃음과 눈물을 함께 머금고 있는 분이다. 지장은 땅(地)을 주처로 하여 그 대지 안에 항상 머물고 있다는 의미다. 지장보살은 일체중생의 선근(善根)을 키우고 자라게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지옥중생의 마지막 하나라도 제도하지 못한다면 결코 성불하지 않겠다는 비장한 서원을 세운 까닭에 육도 어느 곳이든지 몸을 바꾸어 나투며 끊임없이 중생을 구제한다.

피안
건너편, 저쪽 언덕이라는 뜻으로 ‘이상의 세계’를 상징한다. 피안(彼岸)은 미혹의 차안(此岸)에 대하여 깨달음의 세계를 말한다. 즉 생사(生死)의 바다를 건넌 깨달음의 언덕, 열반의 경지를 의미하고 있다. ‘깨달음의 언덕’에 이르고자 하는 중생들의 간절한 마음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염송하는 반야심경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를 통해서도 엿볼 수 있다. ‘가자 가자 저 언덕으로 가자, 우리 함께 저 언덕으로 가자, 저 언덕에 도달하여 깨달음을 성취하자.’ 함께 깨달음을 성취하자는 멋있고 힘이 넘치는 주문이 아닐 수 없다. 강원도 철원에 ‘도피안사(到彼岸寺)’가 있다. 865년 도선(道詵, 신라) 스님이 창건하여 ‘모든 중생을 피안의 해탈세계로 건너가게 하겠다’는 원력을 담아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박소은/MBC구성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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