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독(三毒)과 교만심, 마음의 들뜸이 사라진 아라한은 그 어떤 두려움 없이 언제나 평온한 얼굴로 진리를 설하는 지혜의 구현자가 되며, 중생의 아픔을 어루만지는 자비행의 구현자가 된다.
초기불교에서는 네 단계의 성인이 말해지고 있음을 전호에서 잠시 언급했다. 네 단계란 예류, 일래, 불환, 그리고 아라한을 말한다. 이 각각의 성인이 되기 위해서는 각 계위에 이르는데 필요한 번뇌를 끊어야만 한다. 이번 호에서는 단계별로 끊어야만 하는 번뇌에 어떠한 것이 있는지 구체적으로 알아본다.
성인의 첫 번째 단계를 예류(預流, Sot?panna)라고 한다. 예류부터 명실상부 성인의 반열에 드는 것으로 반드시 깨달음이 약속된다. 그래서 어찌 보면 다른 성인의 계위보다도 그 의미가 사뭇 다르다 할 수 있다.
먼저 예류란 말에서 방점은 흐름을 뜻하는 류(流)에 있다. 초기 불교에서 흐름은 나쁜 의미와 좋은 의미가 있는데, 좋은 의미보다는 나쁜 의미로 쓰이는 빈도가 높다. 나쁜 의미로는 번뇌의 흐름, 악마의 흐름, 존재의 흐름 등이 있고, 좋은 의미에는 진리(부처님의 가르침)의 흐름 등이 있다. 예류가 의미하는 흐름은 후자로서, 구체적으로 장로게(테라가-타-)에서는 팔정도를, 상윳따 니까-야에서는 팔정도와 연기를 흐름의 내용으로 제시하고 있다.
일단 예류자가 되면, 더 이상 지옥 아귀 축생과 같은 악도에는 절대 떨어지지 않으며, 최대 7번 생사를 반복하는 사이에 최고 단계인 아라한과를 성취하게 된다. 이러한 예류의 단계에 이르기 위해서는 세 가지 번뇌를 끊어야만 하는데, 이를 삼결(三結)이라고 한다.
구체적으로 ‘의심, 유신견(有身見), 계금취견(戒禁取見)’이다. 의심이란 붇다의 가르침에 대한 불신을, 유신견은 고정불변의 ‘자아’라는 실체가 있다고 생각하는 견해를, 계금취견은 불교에서 인정하지 않는 잘못된 습관이나 신념에 근거하는 견해를 말한다.
또 다른 설명 방식으로는 사예류지(四預流支)라는 것으로, 첫째 부처님에 대해서 무너지지 않는(不壞)의 믿음, 둘째 진리(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해 무너지지 않는 믿음, 셋째 상가에 대해 무너지지 않는 믿음, 넷째 성자에 의해 찬탄된 계(戒)의 구족, 이렇게 네 가지의 구족을 말한다.
예류에 대한 두 가지 설명 가운데, 후자의 설명이 보다 초기에 성립한 것이라고 한다. 내용상으로도 후자는 삼귀의와 계라고 하는 불교도가 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요소인 반면 전자는 믿음과 계와 함께 잘못된 자아관념의 포기라고 하는 철학적, 인식론적 입장이 들어가 있다. 어느 쪽이 되었든 예류자가 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부처님과 부처님께서 설하신 가르침에 대한 청정하고 굳건한 믿음이 강조된다. 이 믿음이 바로 불사(不死)로 들어가는 문이 된다.
이렇듯 부처님에 대한 청정한 믿음을 시작으로 하는 삼귀의와 계율의 준수만으로 누구나 예류자가 될 수 있으며, 성인의 반열에 들 수 있다고 하는 것이 예류가 갖고 있는 독특한 의미라 할 수 있다.
다음으로는 일래(一來, Sakad?g?min)이다. 일래의 빠-리어는 ‘한번만 돌아오는 자’란 의미로, 이 세상에 한 번만 다시 돌아오면 아라한과를 얻게 되는 수행자를 말한다. 일래자가 되기 위해서는 앞서 말한 예류에서 끊어야 하는 세 가지 번뇌의 끊음과 탐진치(貪瞋癡)를 엷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탐은 전호에서 보았듯이 주로 욕망의 대상, 즉 이성에 대한 탐욕과 같이 거칠고 격렬한 탐욕을 말한다. 성냄이란 자신의 감정을 컨트롤 하지 못하여 일어나는 분노, 증오, 혐오를 말하며, 어리석음은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대상을 우리의 감정과 선입관 등으로 왜곡해서 인식한다. 그래서 대상의 본래적 모습을 파악하지 못하는데, 이를 다른 말로 무명이라고도 한다.
그 다음은 불환(不還, An?g?min)이다. 불환은 ‘욕계(欲界, 욕망의 세계)에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자’란 의미이다. 불환과를 성취한 수행자는 이 세상에서 죽은 후, 천계(天界, 欲界天이상의 하늘나라)에 태어나 그곳에서 아라한과를 성취한다. 불환과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번뇌 외에 탐욕과 성냄을 더하여 다섯 가지 번뇌를 끊어야 한다. 이를 오하분결(五下分結)이라고 한다. 일래와 불환의 탐욕은 욕망의 세계를 원인으로 하기에 욕탐(欲貪)이라고 구분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아라한(阿羅漢, Arahat)이다. 아라한은 ‘태어남은 파괴되었고, 범행(청정한 행위)은 완성되었으며, 해야 할 일은 모두 마쳐 더 이상 고통의 세계로 이끌리지 않는’수행자이다. 곧 완전한 해탈/열반의 성취자이며, 수행의 완성자를 뜻한다. 이러한 아라한이 되기 위해서는 앞서 말한 오하분결에다가 색탐(色貪), 무색탐(無色貪), 만(慢), 도거(掉擧), 무명(無明)의 다섯 가지 번뇌(오상분결, 五上分結)를 합하여 모두 10가지의 번뇌(十結)를 끊어야 한다.
불환과에서 끊어지는 탐욕은 욕탐(欲貪)임으로, 불환과를 얻은 수행자는 색계 이상의 세계에 태어나게 된다. 그런데, 아라한은 욕탐은 물론이요 색탐과 무색탐을 모두 끊어 삼계(三界)를 초월한 수행자가 된다. 색탐은 색계에, 무색탐은 무색계에 태어나고자 하는 욕망을 의미한다. 무색탐까지 버린 아라한은 죽은 후에 삼계 그 어느 곳에도 그 자취가 남아 있지 않아 죽음의 신에게 포착되지 않는 절대적이고 완전한 자유를 성취하게 된다.
그리고 만은 교만으로 내가 최고라고 하는 교만과 내가 저 사람과 비슷하다고 하는 교만, 그리고 내가 저 사람보다 못하다는 교만을 말한다. 즉 남과 비교하는 것 일체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열등감도 만의 일종으로 분류된다. 도거란 마음이 들뜨는 것으로, 요즘말로 하면 감정이 업(up)되는 상태를 말한다. 만과 도거가 없어졌다는 것은 마음이 언제 어느 상황에서나 늘 평온의 상태를 유지하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무명을 제거함으로써 대상을 있는 그대로 여실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되며, 진리의 구현자가 된다.
이렇듯 아라한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깨끗하고 굳건한 믿음이 기초가 된다. 그 위에 세 가지 욕망과 성냄, 어리석음, 교만심과 마음의 들뜸이 제거되어 아라한이 되는 것이다. 삼독(三毒)과 교만심, 마음의 들뜸이 사라졌기에 아라한은 그 어떤 두려움 없이 언제나 평온한 얼굴로 진리를 설하는 지혜의 구현자가 되며, 중생의 아픔을 어루만지는 자비행의 구현자가 된다.

이필원/청주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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