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형진 지음 | 굿모닝미디어 | 1만원
일반적으로 과학이 제기하는 문제는 철저히 객관적이다. 하지만 상대론적 입장이나 세계관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하나의 사건에 대해서도 관측하는 사람의 수만큼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세계를 바라보는 사람 수만큼이나 서로 다른 세계가 존재할 경우에 우리는 무엇을 진리라고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한번쯤 고민하게 된다.

물리학자인 양형진 교수(고려대 물리학과)는 바로 이런 의문으로부터 출발해 세상을 다각도로 바라보고 있다. 예를 들면 사과나무에서 떨어지는 사과와 차고 기우는 달(月)은 ‘만유인력’이라는 동일한 운동 법칙의 지배를 받는다. 이것이 단지 물리학적인 측면에서 바라본 것이라면, 한 알의 사과[사물]와 달이 보여주는 하나의 현상에는 보편적 우주의 원리가 다 들어있다는 이치를 알게 되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다.

그런데 저자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사과와 달을 각각 서로 상관없어 보이는 피상적인 존재자로만 보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들도 상호 연관과 의존의 관계에 있기 때문에 결코 이 세계를 따로 떼어서 생각할 수 없는 포괄적 이해에 도달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이 책 곳곳에는 어떤 이치나 원리 현상이 ‘왜 부분과 전체와의 관계라는 맥락 속에서 정의돼야 하는지’를 일관되게 파헤치고 있다.

예를 들어 시속 100km의 속력으로 기차를 타고 가는 사람이 떠먹는 밥알의 속도는 얼마인가를 생각하는 문제에서는 갈릴레이의 고전 상대론의 입장과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론을 적용해 왜 서로 다른 다양한 진술이 가능한지를 밝혀낸다.

무지개에 대해서도 교과서에서는 빛의 굴절과 반사의 법칙에 근거한 설명에서 그치지만 이 책에서 바라본 무지개라는 현상[객관]은 이를 보는 우리의 눈[주관]과 또 다른 무엇[인연, 생물학적·문화적 맥락]이 합해져야 비로소 온전히 설명되고 완성된다고 말한다.

어항 속의 물고기나 휘날리는 깃발을 비유로 들어 설명할 때에는 ‘있음’과 ‘없음’도 우리를 떠나서 설정되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상대론적 양자역학의 입장과 대비해 재미있고 명쾌하게 풀어내기도 한다. 그런 맥락에서 서로 다른 생각이나 편견, 고착된 시각에서 벗어나 다양한 스펙트럼의 가치를 볼 줄 알아야 창조를 이끄는 변화가 가능해진다는 게 저자의 주장.

‘너 없이 나 없고 나 없이 너 없는’, 분리와 단절을 넘어설 수 있는 세계가 된다면 모든 것이 이해되고 화합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야 생명을 살피는 안목도 키워지고 또 세계는 한 마디로 서로 기대어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기존의 과학 교양서들이 어떤 과학적 현상이나 사실들을 전달하는 수준에서 그쳤다면 이 책은 “과학을 알려면 인문학을 깨치라.”고 말한 저자의 의도가 구구절절이 녹아 있는 일종의 과학인문서이다. 즉 과학을 통해 더불어 살아가야 할 생명의 세계와 소통의 문을 열어 놓고 함께 해야 할 열린 공간으로서의 우주 세계에 대해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책을 읽다가 슬쩍 묻어나는 따뜻한 인류애와 철학의 향기를 자주 맡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일찍이 미당 서정주 시인은 ‘국화 옆에서’란 제목의 시에서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라고 노래했다. 여기서 저자는 한 송이 국화꽃에 숨어 있는 ‘인연의 과학’을 본다. 얼핏 생각하면 봄새의 울음이 가을꽃과 무슨 상관이 있냐는 의문을 달수도 있겠지만, 저자는 이 세계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존재자들 사이에 형성되는 상호 연관과 의존의 맥락을 보면 지나친 과장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어렵다고 말한다.

이런 무한한 상호의존의 세계는 불교의 연기론이 제시하는 세계상이기도 하지만, 자연 과학의 성과에 근거한 것이기도 하다. 결론적으로 말해 과학은 피상적으로 관련 없어 보이는 것들도 그 근원에서 서로 연관돼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준다는 것이다. 문명 간의 충돌이 21세기에도 그치지 않아 자연계의 파괴가 지속되고 있는 상황은 과학을 아는 인문사회 문화, 인문사회를 아는 과학을 더욱 절실히 요구하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은 이 두 문화가 어떻게 만나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를 성찰하기도 하고, 오직 하나뿐인 지구의 생명을 구하기 위한 우주적 차원의 과학과 인간의 참모습에 대해 견해를 피력하기도 한다. 게다가 저자는 자신의 주장에 설득력을 높이기 위해 “한 티끌 먼지 안에 온 우주가 다 들어 있다.”거나 “소가 물을 먹으면 우유가 되고 뱀이 물을 먹으면 독이 된다.”는 등의 경전 내용을 비유로 삼기도 한다. 또한 2장에서도 저자는 이러한 문제를 좀 더 넓혀서 일상에서 생각해볼 수 있는 불교의 화엄 사상으로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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