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불교에서 가장 유명한 불보살님은 관세음보살이 아닐까 싶습니다. 자비의 화신인 관세음 보살님은 불자들이 가장 많이 찾는 보살이지요. 어려움에 처한 중생이 일심으로 관세음보살을 부르면 그 소리를 듣고 보살님은 자비심을 일으켜 중생을 구제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관세음보살님은 어떤 모습으로 중생을 구제할까요? 절에 걸린 탱화, 아니면 불상에서 보이는 그 원만한 상호로 중생 곁에 나타날까요? 누구라도 보살임을 알게끔 발광을 보이면서 특별한 모습으로 나타날까요?

물론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항상 이런 모습으로 중생 곁에 오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관세음보살에 대해서 <관세음보살보문품>에서는 바라문으로 설법할 중생에게는 바라문으로, 비구가 되어 설법할 중생에게는 비구가 되어, 소년·소녀가 되어 설법할 중생에게는 소년·소녀가 되어 설법한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결국 관세음보살이 온갖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 민족의 중요한 역사적 보고인 <삼국유사>에서도 관세음보살님의 다양한 변신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관세음보살은 주로 수행자에게 그 모습을 보입니다. <삼국유사>의 관세음보살은 여러 모습을 나투어 수행자의 수행 정도를 가늠하지요. 때로는 파랑새의 모습으로, 때로는 냇가에서 더러운 옷을 빨래하는 아낙으로, 때로는 만삭의 몸을 한 여인네로, 또 때로는 수행에 방해가 되는 팜므파탈의 이미지로 등장했습니다.

<관세음보살 보문품>의 이론과 <삼국유사>의 실재를 종합해서 정리하면 관세음은 아주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 곁에 온다는 것입니다. 바로 내 이웃의 모습으로 올 수도 있고, 나를 가장 괴롭히는 직장 동료의 모습으로 올 수도 있고, 자식의 모습으로 올 수도 있는 것입니다. 다만 문제는 우리가 그들 속에서 관세음보살을 찾아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결론은 관세음보살을 거룩한 모습으로 기대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곁에서 관세음보살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내게 가장 큰 고통을 주는 이가 관세음보살일 수도 있고, 가장 큰 행복을 안겨주는 이가 관세음보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영화 <킹콩을 들다>(한국,2009)에 나오는 주인공에게서 관세음보살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킹콩을 들다>는 관세음보살 영험담의 기본 골격을 차용하고 있습니다. 관세음보살이 어려움에 처한 중생 앞에 나타나 그에게 도움을 줄 때 클라이맥스가 형성되는데 이러한 영험담의 기본 모티브를 이 영화에서도 발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영화는 전남 보성의 시골중학교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주인공은 시골 중학교 역도부 소속의 6명의 소녀들과 코치입니다. 여기서 소녀들은 고통에 빠진 중생들이고, 코치에게서는 소녀들에게 희망을 주는 관세음보살의 이미지를 찾아낼 수가 있습니다.

소녀들에게서 역도는 마지막 남은 희망이었습니다.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것처럼 지푸라기이기도 했지요. 역기를 놓는다면 그녀들에게는 아무 것도 남지 않을 만큼 마지막 남은 보루였던 것입니다.

얼마큼 절박했냐면, 주인공 영자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할머니 손에서 자랐는데 그 할머니마저 돌아가시자 의탁할 곳이 없어졌습니다. 그리고 학교에서 가장 뚱뚱하다는 이유로 뚱녀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현정이는 짝사랑하는 남자친구에게 자기 존재감을 보여주고 싶었고, 효녀 여순은 아픈 엄마를 위해서 역도를 하려고 했습니다.

이렇게 역도를 할 수밖에 없는 이들에게 실패한 역사인 이지봉 코치가 다가왔습니다. 그는 어떤 사람이냐면 88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따면서 팔을 다치고 심장병까지 얻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역기를 들 수 없는 처지에 놓인 한마디로 실패한 역사입니다. 물론 그의 마음도 이 상처로 많이 꼬여있습니다.

사실 역도 코치 개인의 모습으로 보면 역도 때문에 인생을 망쳤다고 생각한 그에게서 전혀 관세음보살의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자기 한 몸 자기 인생도 제대로 못 추스르는 모습이거든요. 하지만 그는 스스로가 만든 감옥에서 벗어날 길을 발견합니다. 연민이지요. 불교적인 용어로 하면 자비입니다. 관세음보살의 다른 특징이 자비라고 봤을 때 그에게 자비관세음이라는 칭호를 갖다 붙여도 전혀 어색하지가 않습니다.

다른 애들이 모두 점심시간에 맛있는 점심을 먹으로 즐겁게 떠들고 있을 때 주린 배를 움켜 잡고 애들이 버린 우유를 쓰레기장에서 찾아내 마시는 영자를 보면서 코치는 연민의 마음으로 가득 찼습니다. 이 마음이 생기면서 자신의 상처로 갇혀있던 의식이 확장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 도시락을 영자와 나눠 먹고, 또 갈 곳 없는 영자의 처지를 알게 되고는 역도부 창설에 대해 매우 회의적이었던 태도를 바꿉니다. 영자에게 역도가 현실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출구라는 인식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불쌍한 영자 돕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역도부에 음식을 만들어 먹일 수 있는 주방을 만들고 또 합숙훈련소도 만듭니다. 마침내 그에게는 자기 자신의 문제에서 완전히 벗어나서 이 소녀들을 역도선수로 성공시키는 데 온 마음을 주게 됩니다. 그래서 소녀들을 위해서 장을 봐 영양가 좋은 음식을 해먹이고 체계적인 훈련을 시키며 또 ‘운동선수는 무식하다’는 소리를 듣게 하지 않으려고 열심히 공부도 시킵니다. 자기 몸을 돌보지 않고 아이들에게 매우 헌신적입니다.

그는 분명 관세음보살이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헌식적인 보살핌과 애정 덕분에 영자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국가대표 선수가 됩니다. 그리고 뚱녀에서 똥녀라는 좀 혐오스런 별명까지 얻으면서 학교 공식적인 왕따였던 현정이는 학교 킹카를 사귀게 됩니다. 이런 게 모두 이지봉 코치의 헌신에서 비롯됐습니다.

관세음보살의 특징이 자비심과 중생 구원이라고 봤을 때 그를 관세음보살이 아니라고 할 이유가 전혀 없었습니다. 이 영화는 우리 곁에 온 관세음보살이라고 제목을 갖다 붙여도 될 만큼 구원의 공식을 담고 있습니다.

사실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었습니다. 1988년 제 81회 전국체전에서 15개의 금메달 중 14개의 금메달과 한 개의 은메달을 따면서 파란을 일으켰던 순창여고와 또 순창여고 코치였던 정인영 코치를 모델로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더욱 진정성이 느껴졌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우리 곁에는 늘 관세음보살이 있는 것 같습니다. <삼국유사>에서 수행자에게 수행의 정도를 가늠하는 부처님도 계시고 <킹콩을 들다>에서 나오는 이지봉 코치처럼 자신을 헌신해서 타인에게 등불이 되는 부처님도 있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한 가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누군가의 고통에 진심으로 소통하고 그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줄 수 있다면 누구나 관세음보살이라고. 관세음보살을 인간과 구별해서 먼 데서 찾지 말고 바로 내 옆에서 중생이 곧 부처고 부처가 곧 중생이라는 진리를 찾게 한 영화였습니다.

김은주/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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