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깨달음의 미학을 추구하는 화가가 있다. 그는 무시무종(無始無終)의 상징성을 담은 원상(圓相)을 화폭에 그린다. 그는 원(圓) 안에 구겨지거나 찢겨나간 한지나 CD 파편을 붙이거나 수많은 지문[핸드프린팅]을 찍으며 관객의 마음을 ‘자극’한다. 그는 그 자극이 단초가 되어 관객들이 다른 관점과 시각을 펼쳐내는 지혜를 얻고, 궁극에서는 자신과 현재의 삶까지도 변화시키는 동기를 부여받기를 서원한다.
지난 6월 12일부터 한 달간 독일 오덴탈(Odenthal) 시(市)에서 지역 언론의 주목을 받으며 ‘한국 화가의 초대전’이 열렸다. ‘깨달음(Erleuchtung)’을 주제로, ‘자연·선(禪)·인간’을 부제로 삼은 이 전시회의 초대작가는 원광대학교 동양학대학원 선조형예술학과 윤양호 교수(사진).
윤 교수가 먼 이국의 이름도 낯선 시(市)에서 초대된 까닭은, 그가 뒤셀도르프 쿤스트 아카데미(독일의 미술대학)에서 유학할 때 오덴탈 시의 ‘현대미술공모전’에서 대상의 영예를 안고‘장학금’을 받았던 때문이다. 현재 윤 교수는 오덴탈 시의 ‘평생명예예술회원’이다.
“지금의 서양, 특히 독일은 ‘정신세계를 담고자 하는 작품’에 크게 호응하고 있습니다. 물론 조형성만을 강조했던 때도 있었지만, 이제는 선(禪)으로 대변되는 동양적 사유에 심취해 있죠. 이번 초대전에 선보인 35점의 작품 모두 독일의 미술 애호가들이 가져간 것도 ‘깨달음의 미학’을 추구하는 화풍 탓일 것입니다.”
윤 교수는 40대 중반의 화가다. 그러나 그는 20여 년 동안 ‘깨달음의 미학’을 추구하는 작품 활동을 전개한 중견작가다. 대학을 졸업하고 4~5년간 화단에서 활동하며, 자신만의 예술세계(깨달음의 미학)를 추구하는 그림을 그렸지만, 화단과 관객의 시선을 잡지 못했다. 그는 갈등했고, 결국 자신의 그림을 확인하고 싶었다. 그리고 뒤셀도르프 쿤스트 아카데미로 유학길에 올랐다.
뒤셀도르프 쿤스트 아카데미는 1773년 설립된 미술대학으로 요셉 보이스를 비롯해 게하르드 리히터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예술가를 배출한 명문대학. 우리나라에서는 비디오 아티스트 故 백남준이 교수로 재직한 곳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윤 교수가 쿤스트 아카데미로 발길을 옮긴 것은, 그의 예술세계 중심에 요셉 보이스가 서 있기 때문이다.
“7년간의 독일 유학은 내 예술관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는 시간이었죠. 더욱이 고대 경전의 번역본을 읽으며 예술적 사유의 토양을 더욱 다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게 가부좌를 틀고 앉아 수행하는 독일인들의 모습입니다. 그것은 나에게 ‘신선한 충격’그 자체였고, 나 역시 독일에 있는 선방들을 찾아 수행하며 무욕허공(無慾虛空)의 미학을 정립해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윤 교수는 2002년 귀국 후, 과거와는 달리 ‘활발발한’ 활동을 전개했다. 대학 재학시절 전주 부근의 정수사라는 자그마한 절에 들어가 70여일동안 수행했던 경험 때문일까, 아니면 독일에서 선방을 찾아다녔던 그 원력이 있기 때문일까, 귀국 후 그는 원을 통해 우주만물의 정수를 관조하고 예술적 흥취를 얻을 수 있는 그림으로 관련 학계와 화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깨달음의 미학’이라는 생소한 분야를 개척한 그는 원광대학교 동양학대학원의‘선조형예술학과’신설을 주도했는가 하면 한국미술협회, 한국불교학회, 한국선학회 등 관련 학계에서 두드러진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화단에서도 마찬가지이다. 2000년대 이후 그는 ‘깨달음’ ‘선’ ‘명상’ 등을 주제로 50여 차례의 초대전과 기획·단체전에 참가할 정도로 화단에서의 그의 주목도는 크다.
미술평론가 장준석 씨는 윤 교수의 원의 세계를 “기운의 충만이자 기(氣)의 향연”이라고 정의하고, “확산과 응축이 반복되는 듯한 그의 원 작업은 이미 자신(윤 교수)의 정신과 예술세계를 넘어선 또 다른 세계를 우리에게 선보인다.”며 “그(윤 교수)에게 선(禪)이라는 것은 하나의 ‘자극’이며, 원이라는 형상 속에서 우리에게 또 다른 관점과 시각을 열어 보인다.”고 덧붙인다.
“‘선조형’이란 말은 크게 보면 동[선]서[조형]을 아우르는 미학을 뜻하고, 나는‘깨달음 미학’이라고 부릅니다. 그 세계를 담는 게 내 그림 인생의 목표입니다. 아직은 돈수와 점수를 토대로 내가 추구하는 미학의 세계를 만들어가고 있는 과정입니다. 하지만 매순간 최선을 다해 그린다면 분명 그 미학을 이루고, 궁극에서는 ‘인간의 미학’을 완성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오종욱/본지 편집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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