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호에서 이미 언급되었듯이, 삼국시대 오나라 적오(赤烏) 원년(238년)에 도사 갈현(葛玄)이 천태산 화정(華頂)에 최초로 차를 심은 지 이미 1700여년이란 장구한 세월의 풍상을 이어오면서,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도 찾아보기 드문 아주 독특한 ‘천태산 차문화’를 형성하였다. 그것은 바로 천태산차가 당시 중국의 유·불·선(儒佛仙) 세 종교와 함께 어우러져 형성·발전되어 왔다는 것이다.
차는 불교에서 수행자들이 참선을 할 때 잠을 쫓고, 정신을 맑게 하여 집중력을 향상시켜 수행에 큰 도움을 주었다. 이로 인해 승려들의 참선 수행 중에 유일하게 허락된 음료일 뿐만 아니라 절을 찾아오는 참배객들을 대접하는 음료였고, 부처님께 공양하는 최고의 음료였다. 차와 관련된 중국의 여러 사찰들의 기록에 의하면, “수행하는 승려들이 절 주변에서 직접 차밭을 일구고, 찻잎을 채취하여 차를 만든 뒤, 최고 의 차는 부처님께 공양 올리고, 중간급의 차는 향객(香客)1)들에게 대접하고, 가장 질이 낮은 하등의 차는 승려 자신들이 마신다.”고 하였다.
도교에서는 차를 음료라기보다는 약(藥)으로 여기는 경향이 많았다. 그래서 그들은 차를 불로장생의 단약(丹藥)으로 삼아 진인(眞人)이 되기 위한 수행을 정진하였다. 일설에 의하면 도교에서 불교보다 훨씬 앞서서 차를 심고 차를 마셨다고 한다. 이 부분은 불교가 차와 관련된 기록을 많이 남긴데 비해 도교의 차에 대한 기록은 상대적으로 적어서 확실하게 정확한 연대나 인물 및 사적들을 입증하기는 쉽지는 않겠으나, 차의 발상지인 중국에서 도교가 중국의 순수 토착종교인 점과 한참 후에야 불교가 인도에서 중국으로 전래된 역사적 사실들을 감안해 볼 때 최소한 중국에서 도교가 불교보다 먼저 차를 심고 마신 것만큼은 사실일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나중에 기회가 되면 다시 논하기로 하겠다. 반면에 유가(儒家)에서는 차를 마심으로써 뜻을 밝게 하고 마음을 정화하는 등 차를 심신의 양성에 주로 많이 활용하였다. 뿐만 아니라 차를 민간에까지 전파하여, 민간 가정에서 는 손님을 접대하거나 조상께 제사를 지낼 때 차를 사용하게 되었다. 아울러 밖에서 벗과 사귀는 모임에서도 차를 중요한 매개체로 애용하여 마시기도 하였다.
이렇듯 유불선(儒佛仙)이 함께 어우러져 형성된 독특한 ‘천태산의 차문화’는 이내 곧 온 세상에 그 유명세를 떨치게 되었고, 당나라와 송나라 때에 이르러 천태산 차문화는 비로소 정착과 동시에 극성기를 맞이하였다. 아울러 해외에까지 전파되게 되어 천태산차와 천태산 차문화는 중국차와 중국차문화를 최초로 우리나라와 일본 등 세계에 전파하는 발원지가 되었다.
한·중(韓中) 다도 학계의 여러 보고에 의하면, 우리나라 신라 때 김대렴(혹은 대렴)이 중국에서 찻씨를 가져와 지리산 옥천사(玉泉寺:현, 쌍계사) 부근에 차를 심고 재배했다는 한국최초의 차가 바로 천태산에서 가져 온 차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1982년 한국 경상대학교 임업(林業)과의 김재생(金在生) 교수가 발표한 《한국의 전통 민속식물학에 관한 연구》라는 논문에는 “대렴이 중국 절강성 천태산에서 생산된 찻씨를 가져와서 지리산 쌍계사 부근에 심었다.”고 주장하였으며 이는 지금까지도 거의 정설로 굳어져 있다.2)
당나라 정원(貞元)이십년(804년)에는 일본 승려 뎅교우(傳敎)대사 인 사이죠우(最澄)3)법사가 천태산 국청사(國淸寺)와 진각사(眞覺寺)에 불경을 배우러 왔다가 귀국하는 길에 천태산 차씨를 가져가 일본 히에이산(比睿山) 산기슭에 있는 히에노야다원(日吉茶園:지금의 池上茶園)에 심었다고 한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일본이 우리나라 보다 24년이나 더 앞서 중국차가 전래되었다는 것이다.4)
당나라 원화(元和) 원년(806년)에는 일본에서 온 ‘고우보우(弘法)’대‘사구우카이(空海)’가 천태산에 불법을 구하러왔다가 일본으로 돌아가는 길에 적잖은 양의 천태산 찻씨를 가지고 귀국하여 일본각지에 심었다고 한다.
또 송나라 때에는 일본의 ‘에이사이(榮西)’선사가 건도(乾道) 4년(1168년)과 순희(淳熙) 14년(1187)에 두 차례나 천태산의 만년사(萬年寺)를 찾아 천태불교의 밀종을 공부하였는데, 그는 유학 기간 동안 천태산 현지 차농(茶農)들의 차 재배법과 제다기술 및 음차방법을 세심하고 깊이 있게 고찰하였다. 그리고 소희(紹熙) 2년(1191)에 유학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천태산의 찻씨를 대량으로 가지고 와 세부리산(背振山)에 심었다고 전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의 다도 학계에서는 에이사이 선사가 중국의 말차법을 비롯한 중국차문화를 가져온 것만큼은 인정하고 있지만, 중국에서 찻씨를 가져왔다는 설에 대해선 완강히 부인하고 있다. 어쨌거나 에이사이 선사는 귀국 후 일본의 다경이라 할 수 있는『끽다양생기(喫茶養生記)』 저술하여 전국적으로 널리 다도(茶道)를 보급하는데 큰 공헌을 했을 뿐 아니라 이로 인해 일본의 차조(茶祖)로까지 추앙받게 되었다.

박영환/동국대 강사

각주)-----------------
1)향객(香客): 부처님께 향을 살라 올리고 소원을 빌려고 절을 찾아오는 불교 신자 및 참배객을 말한다.
2)2006년 8월호《차의 세계》에는 “1999년 5월 절강대 유학생 이은경(李恩京) 씨가 동계경(童啓慶) 교수의 지도를 받아 생물유전학과 비교형태학의 방법을 통해 중국 천태산(天台山)과 한국 지리산(智異山) 차수(茶樹)의 비교 연구를 발표했는데, 천태산 차나무와 지리산 쌍계사 부근의 차나무가 놀랄 만큼 일치되고 닮았다.”고 하였다.
3)뎅교우대사(傳敎大師:767~822년): 일본 천태종의 개조인 사이죠우(最澄)스님
4)김대렴이 당나라로부터 차씨를 가져 온 시기는 신라 흥덕왕3년인 서기828년이다.《삼국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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