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의 기운…생물 성장에 작용
바람[風]은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 창공은 나를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 탐욕도 벗어놓고 성냄도 벗어놓고 / 물따라 바람따라 살다가 가라하네.”라는 나옹화상의 노래처럼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고 걸림없는 자유자재의 상징’이다. 고정되어 있지 않는 무상의 존재인 바람은 우리가 소중하다고 느끼는 그 어떤 것에도 집착함은 덧없는 것이라는 것을 가르쳐 준다.

『숫타니파타』에서는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고 했다. 자유롭고 어떠한 것에도 걸림없는 바람처럼 온갖 생활잡사, 속박과 번뇌에 걸리지 말고 수행정진에 일로매진 하라는 가르침이다.
바람은 우주의 숨과 기운을 나타내며 지(地)수(水)화(火)와 함께 일체의 물질을 구성하는 4대(四大)중 하나의 요소로 꼽힌다.
풍(風)대는 생물을 성장시키는 작용을 하고 지(地)대는 땅으로서 딱딱함의 본질을 보위하는 작용을 하고, 수(水)대는 습성을 모으는 작용을 한다. 또 화(火)대는 뜨거움을 본질로서 성숙시킨다. 그리고 모든 생물은 다시 바람을 비롯한 4대로 흩어지게 마련이다.
또한 바람은 동서남북의 기본 방위뿐만 아니라 동남, 동서 등 중간방위의 기준이 되면서 공간구성론, 또는 분할론의 준거가 된다.
바람은 부드러울 때는 풍요의 숨결, 삶의 약동성 등을 나타내기도 하나 풍상(風霜), 돌풍, 광풍 등에서 보는 바람같이 인생의 험한 역경이나 폭력, 파괴를 상징하기도 한다.

육조의 설법
육조 혜능스님이 남제현 제지사에 묵고 있을 때였다. 거센 바람에 깃발이 흔들리는 것을 보고 두스님이 싸우기 시작했다.
“바람이 움직이는 것이다.” “아니다. 깃발이 움직이는 것이다.”
입씨름은 끝을 보지 못했다.
혜능스님이 이를 듣고 말했다. “바람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요, 깃발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다.”
강사가 물었다. “그러면 무엇이 움직인다는 말입니까?”
이에 혜능이 답했다. “두사람 마음이 움직인 것이다.” 이는 모든 문제는 마음에서 일어나 마음에서 해결된다는 깨우침을 주는 유명한 공안이다.


비나 바람을 일으키거나 몰고 다니는 대표적 동물이 용이다. 특히 돌개바람(회오리바람)은 꼬리가 땅에 붙은 거대한 용의 형상을 연상시키며 바닷물이 회오리바람과 함께 휘감겨 기둥 형태로 높이 솟아오르는 것을 ‘용권’ 또는 ‘용솟음 현상’이라고 한다.
용은 반인반사(半人半蛇)로 표현되는데 불교를 보호하고 국가를 수호하는 신장으로 부각되어 호법룡 호국룡으로 믿어졌다.

풍경
바람에 흔들려 소리를 울리는 풍경은 법당이나 불탑의 처마에 매달아 놓는 불구이다. 풍경은 방울에 경세(警世)의 의미로 고기모양의 얇은 금속판을 매달아 두는 것이 상례인데 이는 항상 물고기처럼 깨어있어, 공부하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즉 바람불면 ‘뎅그렁 뎅그렁’ 소리로 고요한 사찰을 살아있게 하여 수행자의 방일이나 나태함을 일깨우는 것이다.
풍경은 선문답에도 나온다. 서천 28조 가야사다스님이 승가난제스님에게 출가했을때 승가난제스님이 물었다. “방울이 우느냐 바람이 우느냐”는 질문에 “바람도 아니요. 방울도 아니며 제마음이 웁니다.”
풍경은 신라 감은사지 출토의 청동풍경과 백제 마륵사지 출토의 금동풍경이 대표적이다.

부채
불교에서 부채는 부처님을 모셔오는 시련행렬때 사용하는 의식용으로도 쓰이고 도(道)의 전수로도 사용됐다. 지눌스님이 혜심스님을 처음 만났을 때 들고 있던 부채를 주었다. 이에 혜심은 “전에는 스승의 손에 있던 것, 지금은 제자 손바닥으로 왔네. 만약 미친듯 달리면 맑은바람 부쳐 일으켜도 무방하리.”라고 읊었다. 이 일을 두고 사람들은 부채를 전함으로써 도를 전수했다고 한다.
또 무속에서 부채는 제의기구의 필수품인데 승려 3명이 나란히 그려진 삼불선은 불교와 무속이 습합하는 과정에서 그려진 무구이다.


창은 바깥세계로 향한 열림의 상징이다. 바람을 맞이하는 통로가 되는데 불교에서는 창을 광명의 들목으로 표현하고 있다. 즉 창은 광명을 받아들이는 곳이면서 세속세계를 종교세계로 향해 열어놓은 들목을 표상한다. 그림자가 어릿하거나 빗소리, 바람소리가 설레는 창에는 간절한 그리움과 기다림 또한 투사되어 있어 많은 시의 소재가 되고 있다.

풍류(風流)·풍수(風水)
원광법사가 세운 불교정신에 기반하여 삼국통일을 이끌었던 화랑도는 풍류(風流)와 풍월(風月)을 기본으로 하였다. 이는 대자연에 노닐며 몸과 마음을 닦는 의미가 있다.
이를 보면 화랑도의 바람은 풍월과 풍류라는 말을 통해 자연의 섭리나 이법등을 상징했다. 자연에서 일깨워지는 시정과 인생의 섭리, 현묘의 도는 곧 풍월로 표상됐으며 나아가 8계를 지킬 것을 서원하는 국가적 불교행사인 팔관회로 표현됐다. 또 집의 터를 본다든가 무덤자리를 정하는 등 우리 민족의 생활 속에 깊게 스며있는 풍수(風水)는 인간과 기후와 풍토 그리고 물의 조화를 설명하고 있다. 특히 도선국사는 자생 풍수사상의 원조로 알려지고 있으며, 대부분의 전통사찰들은 풍수좋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

기(旗)
바람에 펄럭 펄럭 움직이는 기(旗). 사찰에서 불전이나 불당앞에 세우거나 올리는 당번(幢幡)은 기도나 법회등 의식이 있을때 부처님과 보살의 위신으로 마군(魔軍)을 굴복시키는 표시이다.
기(旗)는 죽은이를 심판하는 명계(冥界)의 왕이며 지장의 화신으로 불리는 염라대왕이 거처하는 곳이라고 한다.
또 남방불교를 전한 가락국 수로왕의 왕후인 허황옥공주는 원래 인도의 아유타국 공주였다. 수로왕은 꿈에 하늘의 상제가 배필로 공주를 맞이하라는 계시에 따라 유가천으로 하여금 망산도에 가서 기다리게 하였다. 그런데 왕의 말대로 남서쪽 바다에서 붉은 돛을 단 배가 붉은 기를 휘날리며 왔는데 허황옥공주가 타고 있었다.
가락국은 허황옥공주가 왕후가 되자 점점 국가와 불교가 융성해졌고 백성들은 허왕후가 죽은뒤 은혜를 기리기 위해 붉은기를 달고 배가 들어온 곳을 기출변(旗出邊)이라고 하고, 붉은 기는 행복의 예보를 상징하고 있다.

박소은/MBC 구성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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