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미타불의 명호를 염송함은 매우 쉽고 정토에 왕생하기도 매우 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생들이 염불하지 않아 왕생할 수 없다면, 부처님이라도 중생들을 어찌 구제하리오? 세상 사람들은 지옥에 들어 갈 것을 걱정하면서도 정토에 왕생한다는 것은 믿지 않으니 진실로 알 수 없는 일이다. - ‘십의론’ 중에서 -

용수보살은 ‘칭명(염불)’을 ‘이행도’로 풀이하여 ‘불퇴위’에 들어갈 수 있는 뱃길과도 같다고 하였습니다. 세친보살은 ‘5념불문’을 통해 ‘염불’과 ‘정토왕생’의 직접적인 연관성을 강조하였습니다. 담란스님은 정토에 왕생하여 ‘염불’하여 불퇴를 얻은 것을 ‘이행도’, 차토에서 불퇴를 얻은 것을 ‘난행도’라 하였습니다.

원래 ‘염불’은 ‘불퇴위[阿惟越致]’로 가는 길이라 칭해졌습니다. 용수보살은 칭명(稱名)에 의해 보살도를 성취하고, 불퇴위에 들어가는 ‘이행도(易行道)’를 설명하였습니다. ‘불퇴위(不退位)’란 물러섬이 없는 불퇴의 자리[位]로 풀이됩니다.

일반적인 수행법들은 긴 시간에 걸쳐 정진하고 수행을 닦아 불퇴위의 경지에 닿게 된다고 합니다. 그렇기에 일반 범부로서는 실질적으로 요원한 일입니다. 그런 까닭에 용수보살은 수행의 여러 갈래 가운데, 여러 불보살님의 명호를 칭하고 예배하여 범부들도 비교적 수월하게 실천할 수 있는 길을 가리켜 ‘이행도(易行道)’라고 하였습니다.

상대적으로 6바라밀 등의 수행을 ‘난행도(難行道)’라 칭하고 육로의 보행(步行)에 비유하였으며, ‘이행도’의 경우 물길 위의 배를 타는 것[乘船]에 비유하였습니다. ‘이행도’ 수행은 여러 불보살의 명호를 칭하는 것에 의지하고 있습니다.

‘칭명’에 의하여 보살도를 성취하고 물러서지 않는 자리에 들 수 있다고 하였으니, ‘칭명’의 염불은 곧 보살 수행도의 하나로 중요한 수행방법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아니 되겠습니다.

세친보살의 '왕생론'에서는 정토의 행(行)을 대승의 보살도로서 수립하고 있습니다. 바로 ‘5념문(五念門)’입니다. '왕생론'의 원래 명칭은 '무량수경우바제사왕생게(無量壽經優波提捨往生偈)‘입니다. 익히 알려진 것처럼 '정토론', 혹은 '왕생론' 내지 ‘왕생게’ 등의 이름으로 불립니다. '왕생론'은 모두 24행(行) 96구(句)의 게송과 그에 대한 해석[長行]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안락(安樂)세계를 생각하여 아미타불을 봄으로써 아미타불의 정토에 태어나기를 원하는 것”과 “정토에 왕생키 위해 ‘5념문’을 수행하는 것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깨달아 부처가 되는 길을 실현하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그 근본은 아미타부처님이며, 끝으로 예배의 취지에 연유가 있음을 논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아미타불은 무량수불(無量壽佛) 내지 무량광불(無量光佛)의 이름을 지니고 있습니다. ‘무량’하다의 뜻은 ‘부처님 덕성의 범위와 크기를 측량할 수 없을 만큼 무량하다.’는 의미입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아미타불에 대해 언급한 《아미타경》의 내용을 잠시 살펴보면,

舍利弗아, 이 부처님을 아미타불로 부르는 연고는, 광명은 無量하여 十方의 나라를 비추어도 장애가 없기 때문에 이름하여 아미타라고 한다. 또한 舍利弗아, 이 부처님의 수명과 그 나라의 수명은 무량무변아승기겁이기 때문에 아미타라고 이름하니…

라고 하였으니 그 광명과 수명의 무량함을 알 수 있겠습니다.

'왕생론'은 게의 맨 앞에서 “안락국에 태어나길 원한다.”라고 표명하였습니다. 이어 친견의 대상인 정토의 장엄을 서술하고, 회향구로써 끝을 맺고 있습니다. 게송의 해석에서 정토에 왕생하는 방법을 부연하여 ‘5념불문’으로 제시하고, 이를 수행하여 그 행(行)이 성취됨으로써 안락국에 태어나는 ‘5과문(果門)’을 얻는다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5념문’이란 ① 예배문(禮拜門) ② 찬탄문(讚嘆門) ③ 작원문(作願門) ④ 관찰문(觀察門) ⑤ 회향문(廻向門) 등의 다섯 가지입니다. ‘5과문’은 ① 근문(近門) ② 대회중문(大會衆門) ③ 택문(宅門) ④ 옥문(屋門) ⑤ 원림유희지문(園林遊戱地門) 등 입니다. 이는 정토에 있어서 그 깨달음의 순서를 설명한 것이라 합니다. ‘5념문’의 관찰문에서는 관찰의 대상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특히 주목해야 할 부분은 제2찬탄문인데, 여래의 이름을 칭하고, 그 광명지상(光明智相)과 명의(名義)와 같이 여실히 수행이라고 권하며 구업(口業)에 의한 찬탄을 설하였습니다. 이를 이어 중국에서 용수보살과 세친보살의 설에 주목하여 설명하신 분이 담란(曇鸞)스님입니다. 스님은 용수보살이 설해 밝힌 ‘칭명이행’의 설을 고양하여 ‘피토불퇴(彼土不退)’와 ‘차토불퇴(此土不退)’로 설명하였습니다. 즉 정토에 왕생하여 불퇴를 얻은 것을 ‘이행도’, 차토에서 불퇴를 얻은 것을 ‘난행도’라고 규정하였습니다.

용수보살께서 언급하신 ‘이행도’는 선덕불(善德佛) 이하의 많은 제불보살의 명호를 칭하는 것이라면, 담란스님의 관점은 ‘정토에 왕생하여 불퇴를 얻기’에 정토의 교주인 아미타불 한 분만을 ‘칭명’하는 것이 되겠습니다. 

수행자는 아미타부처님을 생각하여 억념(憶念)하니, 이에 부처님 명자(佛名字)를 생각하고, 부처님 상호(相好)를 생각하고, 부처님의 광명을 생각하고, 부처님 신력(神力)을 생각하고, 부처님의 공덕을 생각하고, 부처님의 지혜를 생각하고, 부처님의 본원(本願)을 억념한다. 여기에 다른 마음이 끼어들어 혼란스러울 사이가 없으니, 마음과 마음이 서로 이어져 10념(十念)에 도달함이라. - ‘안락정토의’ 중에서 -

-정성우 / 한국선리연구원 상임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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