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들은 선농(禪農)에 진력하고, 불자들은 신행에 힘쓰는 사찰이 있다. 경춘가도의 초입인 마석터널 오른편 산자락에 앉아 있는 영선암(주지 광선 스님)이다. 서로의 본분사만을 좇다보니 영선암의 경내는 조용하기만 한데, 그 이면에는 불도를 향해 역동적인 사부대중의 움직임이 있다.

마석터널의 입구에 이르자 오른편으로 산길이 열렸다. ‘영선암’이라는 돌 푯말로 시작되는 산길에는 정갈하게 쌓아 올린 10여 개 남짓한 돌탑들이 길을 따라 늘어서 있었다. 1959년 천막 법당으로 시작했다는 영선암. 하지만 30미터 남짓한 산길 끝자락에서 언뜻 보이는 전각의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40여 년이란 결코 짧은 세월은 아니지만, 그 사이 원력이 없었다면 결코 가능하지 않을 전경이었다.
“선방에서 공부할 때는 제가 이런 일을 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사부대중이 함께 공부하는 도량을 열고 보니, 수행만큼이나 가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깨달음은 다음 생에 이룰 수 있지만, 대중과 더불어 공부하는 것은 지금 아니면 안 되지 않습니까.”
단신으로 천막법당을 연 이래 지금까지 영선암을 떠나지 않은 광선 스님은 “부처님의 가피와 인연이 더해지면서 지금의 영선암이 가능했다”고 말했다. 또한 ‘사(寺)’라는 이름 대신 ‘암(庵)’이라는 이름을 쓴 것에 대해 “아직 선(禪)을 공부하는 도량이 아닌데, 어떻게 ‘영선사’라고 할 수 있겠냐”고 반문한 광선 스님은 “선원을 개원하는 게 이곳의 마지막 불사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영선암은 남양주 일대에서 언론사로부터 주목 받는 사찰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곳이다. 우거진 살림을 병풍처럼 두르고 수락산, 도봉산, 삼각산, 불암산이 훤히 내다볼 수 있는 사찰 전경도 그렇고, 매년 경내 안팎으로 형형색색의 야생화가 피는 것도 그렇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사부대중이 어울러져 부처님 오신 날 등의 불교 명절을 여법하게 치루는 모습에서 세인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여여(如如)하기만 한 영선암의 사중 모습은 천막법당을 걷고 본격적으로 불사를 시작할 때부터 다져졌다. 70년 대 초 대웅전을 세울 당시 정재가 부족한 탓에 일꾼들을 충분히 부릴 수 없자, 신도들 스스로 부부동반으로 자원봉사를 자처해 밥을 짓고, 기와를 올리고, 사찰을 정비하는 일에 나섰다. 90년 대 초 대웅전을 개축하고, 월륜당·삼성각·제각 등의 요사를 세울 때도 신도들은 적잖게 노력봉사에 열의를 보였다.
“일이란 강제적으로 시킨다고 해서 될 수 없습니다. 자신의 역할을 분명하게 쥐어 주기만 하면 됩니다. 자신이 할 일이 분명한 곳에는 ‘재미’가 있을 수밖에 없는데, 옷자락을 끄집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참여하지 않겠습니까. 불자는 특별히 관리한다 해서 관리되는 게 아닙니다. 스스로 하겠다는 계기를 심어주어야 합니다.”

광선 스님의 ‘사찰 운영론’의 성과는 법회와 신도회의 활성화로 나타나고 있다. 영선암은 매달 초하루·보름법회와 일요법회를 봉행하고 있는데, 신도 중에서 60여 명의 불자들이 매 법회마다 빠짐없이 참석할 정도로 깊은 신심을 가지고 있다. 특히 매월 셋째주 일요일에 봉행되는 법회에는 40여 명 남짓한 남성불자들이 고정적으로 참여할 정도다. 큰 스님 법문을 듣고 수계 받는 일도 신도들이 스스로 계획하고 추진하며, 매월 세차례 서울노인복지센터에서의 자원봉사도 자생적으로 결성된 봉사단체인 ‘관음회’에서 진행하고 있다.
신도를 모으는 일보다는 가난한 구도자로 남고 싶은 광선 스님의 수행철학도 지금의 영선암을 있게 한 단초가 되었다. 이곳에서 70년대 초 대웅전을 세우고 난 후, 스님은 선농일치(先農一致)의 삶을 살았다. 농사를 짓고 나무를 하며 쌓아 올린 볏단과 땔감뭉치가 72년도 그린벨트 조성을 위해 실시된 항공촬영에 찍히게 됐고, 이미 세워진 건물로 추정돼 그린벨트에서의 사찰 건축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사찰은 수행과 실천이 어울러져야 할 곳”이라는 광선 스님은 “여기에는 편향적인 이끌림이란 있을 수 없다”며 “마치 마음을 공부하는 여정에서는 서로를 의탁할 수 없듯이, 서로의 본분사를 분명히 알고 스스로 해쳐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영선암 |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동 24번지 | (031)592-4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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