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가 ‘문명 패러다임 전환’이라는 소용돌이에 휩쓸리고 있다. ‘문명의 전환은 기존의 세계관, 기존의 삶의 방식으로는 어렵기에 과거와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이 세계 각국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현대세계의 전환기적 성격은 단순한 국제질서의 외형적인 변화나 힘의 이동이 아닌 그 내면에서 진행되고 있는 인류사적 전환이라는 성격에서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불교사상이 가지는 보편성은 새로운 세계관, 인생관, 사회적 동력의 대안이라는 측면에서 기대를 모으고 있다.

현대문명의 위기
지구촌 인구는 이미 60억 시대에 접어들었다. 이미 유엔은 세계 인구 증가 문제를 비롯한 인류의 장래를 위협하는 중대 요인에 대한 세계적 관심을 일깨우고 있다. 유엔인구기금은 2015년에는 세계인구가 70억, 2050년에는 94억 내지 100억으로 늘어날 것으로 추산한다. 인구증가는 지금 상당수 인류가 겪고 있는 기아·질병·빈곤·실업·환경오염·전쟁·범죄·인종·여성·(종교)전쟁 등을 더욱 격화시킬 것이 분명하다.
최근 발표된 <유엔인간개발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8억4천만 명이 영양실조를 겪고 있으며, 약 10억 명이 기초생활요구도 해결하지 못하는 극빈상태에서 허덕이고 있다. 8억8천만 명이 의료서비스를 전혀 받지 못하는 상태이며, 2억6천만 명이 기본적인 위생시설에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
<유엔인간개발보고서>는 선진국에 사는 세계 최상위 20% 인구의 소득과 세계 최하위 20% 인구의 소득격차는 60년엔 30 대 1이었으나 90년엔, 60 대 1, 97년엔 74 대 1로 계속 확대되고 있는 것으로 집계했다. 13억 명은 하루 미화 1달러 미만으로 생존투쟁을 벌이고 있다.
현대 문명의 위기는 바로 이런 세계적 불평등 구조를 개선하는 방향으로 풀어나가야 할 극히 어려운 과제를 안고 있다.

문명의 진화
카프라는 그의 저서 『새로운 과학과 문명의 전환』에서 “현대문명이 중병에 걸려 있다.”고 진단하고, 그 원인을 “서구문화가 너무 오랫동안 데카르트-뉴튼적 고정관념(이분법적 결정론적 세계관)에 집착한 것으로 보았으며, 그 고정관념 때문에 현대 문명은 창조적인 유연성을 잃고 경직되었다.”고 보았다.
유기체 생물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면 창조적인 적극적 피드백으로 유전변화를 일으켜 다른 종(種)으로 변화되듯이, 문명도 사회제도와 사고방식이 경직되어 있을 때에는 쇠망하고 새로운 문화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쇠망해 가는 현대 문명은 기계론적이고 분석적이며, 사변적이고 물질적이며, 개인 위주의 남성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다. 반면 새로 대두하는 문명은 시스템적이고 종합적이며, 직관적이고 정신적이며, 환경에 민감한 여성적인 특성을 지닌 문화가 될 것으로 예견되고 있다.

공멸이냐 진화냐
헌팅턴은 『문명의 충돌』이라는 저서에서 “이데올로기 대립에 억눌려 역사 흐름에 나타나지 않고 있던 문명간(종교간, 민족간)의 갈등이 수면으로 터져 나올 것.”이라고 전망하고, “문명과 문명의 충돌은 세계 평화에 가장 큰 위협이 되며, 각기 다른 문명에 바탕을 둔 국제질서만이 세계 대전을 막는 가장 확실한 방어 수단”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인류 미래는 자기중심적인[我相에 가득한] 가치 체계를 극복할 수 있는가에 달려있다. 인류의 가치 이념체제가 전환되지 않는 한 인류의 미래는 암울하며, 최악의 경우 핵전쟁, 생태계의 파괴 등으로 자신이 자신을 멸망시키는 최초의 존재가 될 것이라는 우려는 오래전부터 제기되어 왔다. 불교의 성주괴공(成住壞空)이 말하듯 생겨난 존재는 반드시 무너져 공(空)으로 돌아가듯이 인류 역시 예외적인 존재가 아니다. 따라서 인간의 행위능력에 걸맞은 가치체계를 수립하는 것이 새 문명의 전제 조건이 될 것이다.

화폐로부터의 해방
인류의 역사는 원시적 수평사회로부터 신분계급제도를 거쳐 화폐에 의한 지배 등 수직사회로 전개되어 왔다. 이제 새로운 문명은 자각적이고 자율적인 인간에 의한 수평적 횡적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수직적 위계질서 속에서 부나 권력, 명예 등의 목표를 위해 투쟁하는 사회가 아닌 누구나 현재의 행복을 즐길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이제 당면한 과제는 ‘자본의 지배로부터 계급의 해방’이라는 것에서 ‘물신(物神)의 지배로부터 인간의 해방’이라는 것으로 바뀌고 있다.

과학기술의 인간적 계승
근대 이후 과학기술의 발달은 인간의 물질적 생활에 혁명적 변화를 가져왔으며, 이런 물질적 성공은 인간의 의식과 사회제도의 발전에 필요조건으로 작용했다. 새 문명은 물질과 정신을 아우르며 우주 전체를 하나로 인식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과학을 요구하고 있다. 분자에서 원자, 소립자 순으로 계속 쪼개 나가면 물질의 근본을 밝힐 수 있고, 그것을 토대로 인간이 마음대로 세상을 개조할 수 있다고 믿어온 물질주의 기술문명이 낳은 환경파괴 등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추구하는 새로운 과학이 문명의 전환을 이끌어야 한다.

인간중심의 정보화 사회
정보통신 기술의 혁신적 발전은 데이터베이스와 뉴미디어 등 정보의 고도화와 다양화가 가져오는 정보 산업화를 이뤄내고 있으며, 인터넷 등 다양한 정보 네트워크가 사회의 급격한 정보화를 이뤄내고 있다. 그러나 ‘정보 혁명’은 인간성과 사회성의 상실이라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아무리 정보가 많고 개인의 개성이 존중된다 하더라도 풍요 속의 빈곤 현상과 개인의 고립화가 심화되고, 사회공동체의 분열과 갈등이 증폭될 수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정보 사회는 개인과 개인의 관계가 ‘좋은 벗’(善友)으로 규정되는 인간중심의 공동체적 삶을 모델로 하여 인간중심의 네트워크 사회를 구현해야 한다.

불교, 새로운 정신문명의 지주
소유와 차별에 바탕을 둔 현대 문명의 사회질서는 권력에 의해 유지되어 왔지만 새로운 문명사회는 보편적인 진리의 힘에 진리에 기초하지 않으면 안 된다. 시대와 사회의 조건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표출되어 온 진리는 개인의 자기 혁명(수행)으로 완성된다. 자기 혁명 없이 세계의 혁명은 이뤄질 수 없으며, 진리도 구현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소유와 평등을 근본적 가르침으로 삼는 불교는 새로운 문명에 이르는 과정과 성립 이후에 올바른 정신적 지주가 될 가능성이 크다. 새로운 문명은 새로운 인간에 의해 이뤄질 수밖에 없으므로 허상과 허위의식에 바탕을 둔 낡은 세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진정한 힘과 방향을 갖게 된다. 연기와 윤회의 세계관을 통해 세계가 일체임을 아는 새로운 인간은 갈등과 경쟁의 세계로부터 공존과 연대의 세계를 모색하는 것이다.
‘다양성 속에 하나 됨’을 추구하는 것이 미래 문명이라면 불교와 과학의 상호보완은 미래 문명이 존속하기 위한 결정적 요소인 자율적이고 자각적인 인간 완성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오직 법(진리)과 자신에 의지하라는 불교의 가르침이야말로 이런 요구에 가장 잘 부합할 것이기 때문이다.

작은 보살들의 시대
현대문명이 안고 있는 제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하는 주체로서의 새로운 인간형은 ‘보살상’으로 제시된다. 인류의 사고와 욕구를 지배하고 있는 대립과 경쟁에 바탕을 둔 분절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삶의 태도를 혁명적으로 변화시킨 인류의 미래상이다.
정토회 지도법사 법륜스님은 “이 시대는 작은 보살들이 필요한 시대”라고 말한다. 지금은 영웅이 필요한 시대가 아니라 작은 보살들이 개미군단처럼 모여 불국토를 이루어 나가야 할 때라는 것이다.
첨단과학기술의 고도문명을 구가하는 21세기에 불교는 그 어떤 역사시기보다도 새로운 미래사회의 정신문명을 제시하고 대립과 갈등의 서구적 질서를 조화와 협력으로 포용해 낼 수 있는 사상적, 현실적 에너지를 잠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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