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시다 미키노스케 지음 / 이동철 외 옮김 / 이산 펴냄
장안은 본래 지명을 일컫는 고유명사였다. 오늘날 중국 산시성의 성도인 시안(西安)이 바로 그곳이다. ‘장안(長安)’ 당나라 시대 도읍지일 때의 명칭이었다. 물론 장안이란 이름 자체는 현대에 이르도록 여전히 흔적이 남아있는데, 시안시에 소속되어 있는 현(우리나라의 ‘구’에 해당하는)의 명칭으로 사용되고 있다. 우리말 사전에서는 ‘장안(長安)’을 ‘명사, 서울의 중심지, 도성 안’ 등으로 풀이한다. 우리말에서 보통 도회지 그것도 사대문 안의 시내 중심지를 일컫는 보통명사로 쓰여지고 있는 셈이다. ‘서울장안’ ‘장안의 화제’ ‘장안의 지가(紙價)’ 같은 말들은 대부분 이 같은 의미에서 사용된다.
하지만 ‘장안’이라고 하는 말을 단순히 고유지명이나 도회지를 가리키는 보통명사로만 이해한다면 큰 오류가 된다. ‘장안’은 중국의 천 년 고도이면서, 수나라와 당나라를 거치면서 세계의 중심이 되었던 중국문화의 한 시대를 대변하는 문화의 코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시다 미키노스케의 ‘장안의 봄’은 그러한 장안의 문화를 풍속과 역사를 따라서 이야기하듯 풀어나간 책이다. 이 책의 백미는 장안으로 대표되는 문화가 어떤 것이었는지 잘 설명하였다는 것에 있지 않다. 아니 설명은 없다.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당나라 시대의 장안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되돌아간 듯한 정경의 묘사는 감탄사를 절로 토하게 한다.
다음과 같은 이야기. 당나라 때 장안에 책방 곧 서점이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면 이 책을 보면 된다. 백낙천의 동생 백행간(白行簡)이 지었다고 알려진 『이와전(李娃傳)』에는 소설의 주인공인 이와가 자신의 정인인 정생에게 과거 시험 준비를 위해 ‘분전(墳典, 3황5제의 전적)’을 파는 시중 점포에 가서 필요한 서적을 사주는 장면이 등장한다. 저자는 이런 소설 속의 이야기 혹은 당시의 시(詩)에 등장하는 “명류의 옛 문집, 옷을 전당잡혀 샀다.”(名流古集典衣買) 같은 구절에서 서점의 존재를 증명한다. 서양의 경우는 이보다 몇 세기는 늦게 책방이 생겼다고 한다. 책방이 있다는 것은 별것 아닌 것으로 보이지만 문화사적으로는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지식 곧 정보가 대중화된다는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다.
또 다른 장면. 청나라 때 섭천사(葉天士)라는 명의가 소주에 살았다. 어느 날 회진을 나섰는데 아무런 병도 없으면서 길을 막고 치료를 요청하는 자가 있었다. 아무데도 나쁘지 않다고 하자, 환자가 “가난이란 병입니다.” 하고 대답한다. 이때 섭천사는 ‘감람’ 열매를 주워 모아서 건네주면서 심으라고 한다. 몇 년 지나지 않아 감람의 가격이 폭등하면서 치료를 청했던 사내는 부자가 되었다고 한다. 『우창소의록』이라고 하는 책에 나오는 이 대목을 근거로 저자는 추적에 나선다. 감람은 무엇일까? 흔히 쉽게 올리브 열매라고 생각하는 이것. 저자는 차근한 추적 끝에 이것은 올리브가 아님을 증명한다.
책의 대부분은 당대 장안이라는 도시에서 인도를 비롯한 서역과 중국을 포함한 동아시아의 문화와 사람들이 어떻게 어우러졌는지를 보여준다. 그것도 황궁이 아니라 술집에서 춤추는 서역 출신 무희(胡姬)의 춤사위를 통해서, 정월 보름에 펼쳐지는 관등(觀燈) 놀이와 야간 통행금지 해제의 연관성, 연회광경. 당대 일상의 광경을 통해 국제 도시 장안이라는 문화코드 속으로 산책을 떠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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