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학이라는 것은 공간성과 시간성이 있어야 축적이 되는 것인데, 시간과 공간을 떠나 있으니 물리학은 알 수가 없지요. 알 수가 없지만 신묘한 하나의 생명이란 말입니다.
눈방울이나 물방울이나 공기나, 원자나 식물이나 동물이나 모두가 다 근원자리에서는 하나의 신비로운 생명이란 말입니다. 이 자리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불성자리입니다. 그리고 이 자리가 우주의 진리이기 때문에 진여불성 (眞如佛性) 이라 부릅니다.
나는 여기에 있고, 우주의 근본자리인 진여불성은 저 멀리 대상적으로 있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요. 그러나 그렇게 대상적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 우주라는 것은 오직 그 진여불성뿐입니다.
육식(六識)이 있고, 그 밑에 말나식(末那識) 이라는 잠재의식이 있고, 그보다 깊은 아뢰야식(阿賴耶識) 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보다 더 깊은 암마라식( 摩羅識) 이 있는데, 그 근본은 무엇인가. 그것은 알 수 없는 신비로운 생명체인데 그 자리가 이른바 불성입니다.
그 근원적인 것을 볼 수 있는 분들이 이른바 성자입니다. 자기 스스로 근본자리하고 하나가 되어야 성자입니다. 그 자리에 이르기 위해서 몇 년 또는 몇 개월 동안 애쓰고 공부하지 않습니까. 그 자리에 이르기 위해서는 그냥 보통으로 해서는 안 됩니다. 물론 업장이 가벼운 분은 빨리 되고, 업장이 무거운 분은 더디 되겠지요.
부처님 가르침은 우주 근본의 바탕에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거기에 따르는 공덕이 꼭 붙습니다. 가령 하루 참선하면 하루 참선한 만큼 마음도 몸도 맑아지고 우리 건강도 더 좋아집니다.
그러나 그 반대로 바른 참선을 하지 못하면, 이른바 상을 여의지 않거나 근본을 여의고서 하는 공부는 그렇게 안 된단 말입니다. 근본을 여의고 하는 공부는 몸도 안 풀리고 마음도 안 풀리고 참선공부에 따르는 법열 (法悅) 이나 행복감도 별로 없습니다.
따라서 참선을 할 때는 꼭 그 근본자리, 본래면목의 자리를 떠나지 않고 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론적으로 우선 중요한 것은 ‘천지우주가 모두 다 일미평등 (一味平等) 한 불성뿐이다.’, ‘진여불성뿐이다.’라는 이치를 깨닫는 것입니다.
청화 스님/
청화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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