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족(藏族)승려의 음차모습.
필자는 예전에 계간 『다담(茶談)』의 지면을 통해 티베트와 중국 한족들 사이에서 일 천여 년의 긴 세월을 두고 진행되어 온 ‘한장다마무역(漢藏茶馬貿易)’이란 주제를 갖고 수차례 논고를 발표한 적이 있다. 지금 필자가 소개하고자 하는 티베트의 차문화는 ‘한장다마무역’과는 전혀 무관하지 않기에 서두부터 이 이야기를 먼저 언급하였다.
독자들이 필자가 소개하고자 하는 티베트의 차문화에 대해 개괄적이거나 또는 심도 있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장다마무역’에 대한 예비지식이 필요하거니와 혹은 독자들이 예전에 읽어보았던 필자의 졸고인 ‘한장다마무역’에 대한 내용이 이해가 쉽지 않았다면, 지금 얘기하고자 하는 ‘티베트의 차문화를’ 읽고 나면 한층 그 이해가 쉬울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즉, ‘한장다마무역’과 ‘티베트의 차문화’에 관한 이야기는 둘이 아닌 하나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며, 두 가지 이야기는 서로에 포함되기도 하며, 서로를 포함시키기도 하는 동질의 문제이며 본질적으로 하나의 역사적 사건이기 때문이다.

티베트의 일반적인 음료로는 크게 두 가지를 꼽을 수가 있다. 하나는 차(茶)요, 또 하나는 술(酒)이다. 여기서 술에 관한 얘기는 본 잡지의 범주를 벗어나므로 생략하기로 하겠다. 인터넷과 언론 매개체의 발달로 인해 차를 좀 공부하였거나 조금의 취미가 있는 사람이라면 “티베트의 차(茶)”하면 아무런 주저함 없이 ‘쑤여우차(?油茶)’를 꼽을 것이다. 그러나 그 다음은 선뜻 설명을 이어가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다. 티베트에 대한 지식과 정보가 많이 대중화 보편화 된 것도 사실이지만, 반면에 그만큼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더욱이 차에 대해서는 상당한 부분이 왜곡되어 왔거나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부분이 허다하다.
티베트(투뽀어:吐蕃) 음차의 역사는 상당히 오래 전에 시작되었으며, 그 역사는 투뽀어(吐蕃)1)왕국의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티베트의 역사서인 『한장사집(漢藏史集)』의 기록을 보면 ‘투뽀어’왕조의 제36대 짠
▲ 차마고도
푸(贊普:왕)2)인 뚜쏭망뿌즈(都松莽布支:676-704년)의 재위시기에 티베트 땅에는 이미 찻잎(茶葉)과 자기(瓷器)가 발견되었다. 티베트 문헌에 의하면 “티베트 왕인 뚜쏭망뿌즈(都松莽布支)가 중병에 걸려 궁중에서 조용히 요양을 하고 있는데, 하루는 한 마리의 아름다운 작은 새가 입에다 푸른 나뭇가지를 입에 물고 날아와 왕궁 옥상의 처마 위에 떨어뜨려 놓고서 옥상에 앉아 아름답게 지저귀고 있었다.
그 다음날 해가 뜨자 작은 새는 다시 날아와서 즐겁게 재잘거리며 짠푸(왕)의 주의를 끌었다. 짠푸는 곧 사람을 시켜 녹색의 나뭇가지를 주워 오게 하였는데, 이것은 여태껏 전혀 보지 못했던 녹색 나뭇잎이었다. 왕은 신기해하며 그 나뭇잎의 뾰족한 끝부분을 조금 입에 넣고 맛을 보았다. 그 나뭇잎의 맛은 맑은 향이 있을 뿐만 아니라 정신 또한 맑아지고, 입 안에서는 생진(生津)을 느끼게 되었다. 즉시 차 주전자에 그 잎을 넣은 뒤 물을 붓고 끓였더니 아주 좋은 음료가 되었다. 짠푸는 이에 크게 기뻐하고, 즉시 신하들에게 명하여 투뽀어(吐蕃) 전역을 뒤지게 하여 이 나뭇잎을 찾아오게 하였다. 그러나 이 나뭇잎은 투뽀어 땅에서는 전혀 구할 수 없는 나뭇잎이었다.
▲ 뿌다라궁
후에, 한 대신(大臣)이 고생 끝에 중국 땅에서 겨우 그 나뭇잎을 찾아서 따가지고 돌아왔다. 대신(大臣)은 그것을 삶아 음료수로 만들어 짠푸에게 바치어 마시게 하였다. 짠푸는 그것을 마시고 병을 요양하여 이내 곧 건강을 회복하였다.”고 한다.
이 기록은 비록 티베트인들의 문헌상에 기록된 내용이긴 하지만, 약간의 전설적 성향이 농후하다는 것을 금세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내용의 기술에 있어서 약간의 과장이 가미되긴 해도, 완전히 터무니없는 기록이라고는 볼 수가 없다. 고대의 기록이란 대저 약간의 신비성과 과장이 늘 동반한다는 것을 우린 역사
▲ 茶馬司(사천성 名山縣 新店鎭)
를 통해 익히 배워 왔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이후부터 티베트인들의 음차의 풍습이 생겨나게 된 것 같다.
티베트어로 ‘차(茶)’를 ‘가(?:ja 혹은 jia)’라 한다. 이것은 중국의 차에 대한 발음 중에서 가(?)자의 음을 가차(假借)했음을 극명하게 드러냄과 동시에 중국의 한족(漢族)과 티베트민족(藏族)들의 경제문화 교류가 이미 오래 전에 이루어졌음을 잘 반영해 주고 있는 것이라 하겠다.
다음의 기록을 보면, 티베트들의 음차의 풍속은 투뽀어(당나라)왕조 때에 이미 흥기하기 시작하였다는 사실에 대해 더 이상 의심할 여지가 없다. 당나라 때 이조(李肇)가 지은 『당국사보唐國史補)』하권에 투뽀어(티베트)의 음차에 대한 기록을 보면 다음과 같다.
“상노공(常魯公)이 서쪽의 투뽀어(吐蕃)에 사신으로 갔는데, 천막에서 차를 다렸다. 짠푸가 묻기를 ‘이것은 무슨 물건이요?’하자, 노공이 말하기를 ‘번뇌를 씻고 갈증을 치료하는 것으로 차(茶)라고 이릅니다.’ 하자, 짠푸가 말하기를 ‘우리 여기에도 있소.’하며 그것을 내어 오도록 명하고는 하나씩 짚어가며 말하기를 ‘이것은 수주(壽州)의 것이고, 이것은 서주(舒州)의 것이고, 이것은 고저(顧渚)의 것이고, 이것은 기문(?門)의 것이며, 이것은 창명(昌明)의 것이요’라고 말하였다.”
이 기록은 이때 이미 절강(浙江), 호광(湖廣), 안휘(安徽) 등지에서 생산되는 명차(名茶)들이 ‘투뽀어’ 왕국의 궁중의 상비(常備) 물품(物品)으로 구비되어 있었을 뿐만 아니라, ‘투뽀어’에서 음차의 풍기가 흥기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한장사집』에서는 더 나아가 전문적으로 각 장(章)과 절(節)로 나누어 차의 분류에 따른 기록을 하였을 뿐만 아니라, 열여섯 종류나 되는 차엽의 생산지, 특징, 팽다(烹茶) 및 제다(製茶)에 걸친 상세한 기록을 남기고 있다.

박영환/동국대 강사

각주)-----------------
중국의 당나라시기에 지금의 티베트인들의 조상이 세웠던 거대한 왕국으로써 지금의 중국 서부 일대(티베트, 청해, 섬서, 사천, 신강)를 지배하였으며, 당나라와는 군사력에 있어 대등한 관계를 유지하였음.
짠푸(贊普):티베트어로 왕이란 뜻. 몽고에서 위대한 왕에게 칸(干)이란 칭호를 바치는 것과 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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