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승에 의하면, 제 1차 결집은 라자그라하의 칠엽굴에서 가섭존자를 상수로 한 500명의 아라한에 의해 행해졌다고 한다. 이때 아난 존자가 경을 송출하고 우팔리 존자가 율을 송출한 것을 498명의 다른 아라한이 승인하는 형식으로 결집이 이루어졌다고 전한다. 이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오늘날까지 전해지게 된, 불교사에 있어서는 매우 중요한 사건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이 결집에 대한 다른 견해도 있다. 이 결집은 비구니 수행승과 재가자들이 배제된 채, 비구 수행승들만으로 그것도 아라한만으로 구성되었다. 500명의 아라한이 가지는 상징성은 누가 뭐라해도 훼손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의 유력한 비구니 수행승들과 재가자들, 그리고 일반 비구 대중들이 같이 참여한 상황에서 결집이 행해졌다고 하면, 제 1차 결집의 의미는 지금의 평가와는 사뭇 다른 평가를 받았을 것이다.
재가자가 아라한이 될 수 있는가를 얘기하면서, 결집의 의미를 새삼 거론한 이유는 결집이 비구 아라한들만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부처님의 말씀이 비구 승단을 중심으로 구축되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 하나의 예로 우리는 수행자의 계위를 나타내는 사향사과설을 들 수 있다. 선학들의 연구에 따르면 부처님의 입멸 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다음에 사향사과설이 체계화 되어 경전에 편입되었을 것이라는 견해를 거의 정설로 받아들이고 있다. 즉 이 설은 부처님의 직설로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것이다.
사향사과설의 핵심은 재가자는 불환과까지만 도달할 수 있고, 아라한과는 재가자가 성취할 수 없는 단계라는데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는 아라한은 오직 출가자만의 경지라는 선언과도 같은 것이다. 이것은 달리 표현하면, 사향사과설은 출가승만을 위한 수행 체계라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사향사과설이 부처님의 직설이냐 아니냐를 떠나서, 과연 부처님께서는 재가자는 아라한이 될 수 없다고 단언하셨을까. 현재 우리들이 접할 수 있는 초기 경전에는 재가자의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해탈을 성취했다고 하는 기술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몇 가지의 예를 들어 보자.
상윳따니까야』에서는 다음과 같은 부처님 말씀을 전하고 있다. “마하나마여! 이렇게 해탈한 마음을 갖고 있는 우바새와 백 년 동안 해탈한 마음을 갖고 있는 비구 사이에는 어떠한 차이도 없다. 해탈한 사람의 해탈에는 어떠한 차이도 없음을 나는 설한다.”이는 곧 재가자이건 출가자이건 해탈을 성취한 이상에는 그 어떠한 차이도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밝힌 것으로 이해될 수 있는 내용이다. 또 다른 예를 보자.
『앙굿따라니까야』에서는 따뿟소(Tapusso) 장자에 대한 부처님의 다음과 같은 말씀이 전해지고 있다. “비구들이여, 여섯 가지 법을 구족한 따뿟소 장자는 여래에 대해서 완벽을 얻은 자이고, 불사(不死)를 본 자이며, 불사를 깨달아 행위한다. 여섯 가지란 무엇인가. 붓다에 대한 무너지지 않는 신뢰, 가르침에 대한 무너지지 않는 신뢰, 승가에 대한 무너지지 않는 신뢰, 성스러운 계, 성스러운 지혜, 성스러운 해탈이다.”
따뿟소 장자는 불법승 삼보에 대한 굳건한 믿음과 계를 구족하고, 지혜를 겸비했으며, 해탈을 성취한 자로 기술되고 있다. 그는 이러한 여섯 가지를 통해 불사를 깨달았다고 설해지고 있다. 불사는 부처님이 초전법륜에서 다섯 비구들에게 선언하셨던 “나는 불사에 이르렀다”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는 내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전에서는 따뿟소 장자를 아라한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이는 재가자의 해탈과 그 가능성은 인정한다 해도, 붓다나 출가 불제자들에게 헌사되는 호칭인 아라한까지 재가자에게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 경전 편찬자들은 거부감을 갖고 있었음을 유추하게 한다.
여하튼 초기경전에서 재가자를 아라한으로 묘사하고 있는 경전은 없다. 그러나 재가자로서 아라한이 될 수 있는가라는 문제는 경전에 기술되지 않는 것으로 그냥 끝나지는 않는다. 부파불교시대가 본격적으로 전개되면서 재가자의 아라한 문제는 재가 아라한론으로 부파간의 이설로 등장하게 된다.
재가 아라한론의 부파간의 상이한 견해는 상좌부의 『논사』에 구체적으로 기술되어 있다. 그리고 그 외에도 상좌부 소전의 『밀린다팡하』와 설일체유부의 『대비바사론』등을 통해서도 전해져 오고 있다. 『논사』를 보면, 상좌부는 재가 아라한을 인정하지 않으나, 북도파라는 부파는 인정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밀린다팡하』에서 나가세나 존자는 『논사』의 입장에서 조금 발전된 입장을 보이고 있다. 나가세나 존자는 재가자의 상태에서 아라한이 될 수 있지만, 재가자의 상태를 계속 유지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존자는‘즉일출가, 즉일열반’이라고 해서 ‘아라한이 된 재가자는 그날로 출가하던가, 아니면 그날로 열반에 들어야 한다’는 절충안을 제시하고 있다. 그 이유로서 나가세나 존자는 ‘재가의 특질’이 ‘부정’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기에 아라한이 된 재가자는 부정한 재가의 특질을 지닌 채로, 하루 이상을 보낼 수가 없다는 것이다. 계를 받아 출가자가 되거나, 그럴 수 없는 상황이라면, 그 날로 열반에 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는 결국 재가자의 아라한은 인정될 수 없다는 상좌부의 입장을 견지한 것으로서, 실질적으로 재가 아라한을 인정한 것이 아니라는 평가를 피할 수 없다.
한편 법장부 소전의 『사분율』에는 삼귀의만으로도 마음의 해탈을 얻어 다시는 속세의 욕락을 즐길 수 없다는 내용을 전하고 있다. 아라한의 경지에 도달하지 못한 사람도 올바르게 삼보에 귀의하면, 속세의 욕망을 다시는 즐길 수 없거늘, 아라한이 된 사람이 재가자라고 해서 어찌 재가의 부정함을 특징으로 그대로 간직할 수 있을까.
이렇듯 재가 아라한을 인정하지 않은 것은 당시의 출가자 중심의 교단이 갖는 한계를 그대로 노정한 것은 아닐까. 이러한 한계는 나중에 발전한 대승불교의 재가보살의 관념에서 극복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필원/청주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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