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산중이건 어느 회상이건 어느 사회이건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원융(圓融)과 공의(公議) 살림을 통해 화합을 도모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여정은 결코 만만하지 않습니다. 괴각(乖角)이라는 존재 때문입니다. 괴각이란 말은 ‘소뿔이 앞으로 곧게 뻗어나가지 못하고 옆으로 삐뚤어져 솟아있다’는 뜻인데, 이로 인해 괴각의 주변은 항상 소란하고 힘듭니다.
‘괴각’을 떠올릴 때마다 지금은 입적하신 모(某) 스님의 일화가 생각납니다. 그 스님은 숱한 괴각행(行)으로 주변을 놀래고 곤혹스럽게 했습니다. 추운 겨울날 늦은 저녁 대중들의 고무신 속에 물을 부어 얼려놓곤, 다음날 새벽 도량석 소리에 눈을 부비며 깜깜한 댓돌 위에서 고무신을 신던 대중들이 미끄러지게 한 것은 그 스님의‘가장 애교스러운 괴각’에 불과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던 그 스님이 어느 날부터 무슨 계기가 있었던지 한 마음 돌이킨 이후 그야말로 ‘하심(下心) 존자’로 바뀌었습니다. 심지어 큰 사찰의 주지가 되어서도 행자에게도 공손하게 합장하고 존댓말로써 후원 살림에서 오는 사소한 잘잘못을 알아듣도록 가르쳐 주었고, 대중들은 감읍하여 그 스님의 가르침을 두말없이 따랐습니다.
그 스님의 일화는 모자라면 모자라는 대로 넘치면 넘치는 대로 담아내는 마음의 크기를 짐작하게 할뿐 아니라, 한 순간 돌이킨 마음이 어떤 변화를 가져오는 지도 보여줍니다. 마음이란 놈은 넓기로 한다면 천하를 품을 수 있지만 좁기로 한다면 바늘 끝조차 용납하지 못하는 녀석입니다. 그래서 함께 사는 대중들에게는 ‘화광동진(和光同塵)’과 같은 마음의 여유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재단법인 선학원이 지난달 18일 새로운 임원진을 구성하고, 공의(公議)의 살림을 희망하며 발전의 각오를 다지고 있습니다. 임원 스님들 스스로 ‘자신의 빛을 온화하게 만들어서 남과 더불어 한다[和光同塵].’는 마음으로 임하고 있습니다. 이럴 때 대중 모두가 서로를 인정 해줄 수 있는 ‘마음 도리’를 갖는다면, 바로 그 순간이 ‘영산회상’이 될 것입니다.

법진 스님/본지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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