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월 19일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이 서울 성동구청에서 개최됐다. 총 100회 예정으로 전국에서 진행 중인 강연 중 85번째 순서였다. 스님의 전국 순회 강연은 2달간 6만여 시민들이 참여할 정도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남편이랑 성관계를 맺는 게 좀 불편한데 어쩌면 좋죠….” (질문자)
“이봐요, 스님인 나한테 그런 걸 물어보면 어떡합니까? 묻는데 대답을 안 할 수도 없고.” (법륜스님, 대중들 큰 웃음)


19일 저녁 6시 40분. 성동구청은 부산했다. 바야흐로 인기가 절정에 달한 법륜스님(평화재단 이사장)을 만나기 위한 사람들의 발걸음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수백 석에 달하는 좌석은 이미 꽉 채워진 상태였다.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을 모르는 불자가 있겠는가. 기자도 TV에서 종종 스님의 즉문즉설을 보며 그 통찰력 있는 달변에 혀를 내두르곤 했다. 막상 그 현장에 참여하게 되니 기대도 컸지만, 한편으로는 스님이 그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어쩌지 하고 켕기는 마음도 있었다. 법륜스님은 이미 너무도 유명하고 영향력이 커진 명망가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7시, 요란하고 썩 단정치 못한 기계음이 흘러나오고, 드디어 스님이 등장했다. 조금 지친 듯 느껴지는 스님의 의례적인 인사말을 들을 때까지만 해도 내 반신반의한 마음은 그대로였다. ‘그렇지. 스님의 전국 순회 공연은 벌써 85회째를 맞이했고, 오늘 오전에도 강원도 원주를 다녀오셨군. 어쩌면 좀 피곤할 때도 됐는지 몰라.’

그러나 막상 즉문즉설이 시작되자 스님은 180도 돌변했다. 스님은 별다르게 유난을 떨거나 목소리를 떨지 않으면서도 차분하게 대중들을 ‘장악’해갔다. 좌석도 모자라 비좁은 통로 틈과 복도에까지 끼어앉거나 강연장 뒷자리에 서 있던 사람들도 스님의 말에 홀린 듯 매혹됐다. 이것은 하나의 독특한 장관이었다. 어쩌면 대중들은 스님에게 기꺼이 ‘장악’ 당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암이 온 몸에 전염돼 1년 시한부인생을 선고받고도 밝은 목소리로 ‘죽음은 두렵지 않지만, 고통은 두렵다.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묻던 어느 40대 여성, 남들이 부러워하는 대기업에 다니면서도 매 순간 삶의 공허함을 이길 수 없다는 30대 남성, 또 어린 시절의 깊은 트라우마에서부터 자유롭지 못해 늘상 절망감을 느끼며 살아간다는 20대 여성까지…. 누구도 쉽게 대답하기 힘든 대중들의 질문은 이어졌다.

스님의 답은 자신감이 넘치고 명쾌했다. 스님은 삶의 덧없음을 호소하며 “이럴 줄 알았으면 어릴 적 소망대로 스님이 될 것을 그랬다”고 말하던 이에겐 “헛소리 하지 말고 우리 절에 와서 밥 짓는 공양주나 하라”고 (부드럽게) 일갈했다. 또 현실에 부대끼면서도 결혼과 출산에 대한 두려움을 토로하던 질문자에겐 “댁 같은 사람은 애 낳으면 안 된다. 자기 자신이나 잘 챙기라”고 투박을 주었다.

또 그 ‘즉답’의 내용도 결코 ‘전문적’이지 않았다. 대신 군더더기가 없고 유연했다. 스님은 고통을 어떻게 이겨내야 하는지 묻는 암 환자에게 “매일 아침에 눈 떴을 때 아프긴 아파도 이게 내 살아있는 거구나 생각하니 마음이 편했다”는 자신의 과거를 들려주며 “그저 남아있는 시간 동안 편하고 즐겁게 살다 가시라”고 말했다. 평생 다니던 직장을 떠나자 견딜 수 없이 우울하다는 중년의 남성에게는, 자신이 만난 어느 전(前) 경찰서장과 ‘A급 연예인’의 ‘뒷담화’를 들려주며 슬슬 그 마음을 어르고 달랬다.


사실 이날 현장에서 법륜스님의 강연을 들으며 가장 인상적이었던 점은 스님의 말씀보다는 청중들의 모습이었다. 사람들은 편안하게 자신을 내려놓은 채 다른 이들의 ‘인생사’와 그 인생사를 설득력 있게 정리해주는 스님의 이야기를 ‘즐기는’ 듯 보였다. 시원스럽게 웃고, 고개를 끄덕이고, 때론 탄식하고, 몰입하면서. 마치 하나의 ‘놀이’처럼 말이다.

즉문즉설을 이끌어가는 스님의 능력도 능력이지만, 그 능력에 매료돼 ‘화끈하게’ 공감하고 호응을 보내주는 대중들의 ‘감식안’도 평가를 해주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미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순회 대장정에는 두 달여 만에 6만여 명이 참여했다고 한다. 특히 사찰의 법회나 일반 불교관련 강연보다도 참여자 중 남성과 젊은 세대의 비율이 높은 것이 주목됐다.

사람들은 어쩌면 이렇듯 종교인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생생한 장(場)에 목말라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부처님을 비롯해 세계의 4대 성인(聖人)이라 일컬어지는 이들의 가르침의 전수란 언제나 ‘묻고 답하는’ 형식의 것이었다. 아무리 지혜로운 이들이라도 일방적으로 자신의 가르침을 ‘연설’하는 방안을 취하지 않았다.

사람이 다른 이의 말에 집중할 수 있는 최적의 시간은 15분이라는 연구결과도 있다. 가르치는 이와 배우는 이의 생생한 상호소통, 격의 없는 문답의 방식은 불교계에서 지금보다 훨씬 더 활성화되어야 하지 않을까. 적요하고 쟁쟁한 큰스님들이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 사회의 중생이 원하는 방편은 방편 자체로도 일말의 진실을 담고 있을 것이다.

법륜스님이 앞으로 더 적극적으로 정치의 ‘복마전’으로 뛰어들지, 만약 그런다면 그것을 잘 해낼지는 확언할 수 없다. 다만 기자가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강연장에 찾은 후 느낀 점 한 가지가 있다. 아직 스님의 강연장을 찾지 못했던 불자들은 반드시 일정표를 확인하고, 발걸음을 옮기길 바란다는 것. 질문하려면 경쟁이 치열하니 가능한 한 앞자리에 앉아 손을 번쩍번쩍 들어야겠지만 말이다.

 

- 박성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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