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등회가 무형문화재로 지정됨에 따라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어장(魚丈) 원명스님에게도 교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원명스님은 조계종단이 범패를 체계적으로 전승한다는 목적으로 설립한 한국불교전통의례전승원의 초대 학장으로 임명됐다.

영산재(중요 무형문화재 제50호) 전수조교인 원명스님은 영산재와 수륙재, 예수재 등 각종 재의식만 3천회 넘게 집전해 온 ‘달인’이다. 2006년 최규하 대통령 국장(國葬)과 지난 1월 지관 전 총무원장 영결식도 스님의 재의식으로 주관했다.

범패란 예로부터 전하는 불교음악을 총칭해 부르는 말이다. ‘범음(梵音)’, ‘인도(印度) 소리’, ‘어산(魚山)’이라고도 한다. 가곡․ 판소리와 함께 한국 전통 3대 성악중 하나다. 내용은 주로 석가모니 부처님의 공덕을 찬양하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 범패 법맥을 이을 후학양성에 진력하고 있는 원명스님


범패는 진감선사(眞鑑禪師)가 9세기 초 당나라에 가서 중국의 범패를 배운 뒤 귀국해 전파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삼국유사> ‘도솔가조’에 따르면 이미 그 이전부터 범패승이 있었던 것으로 기록돼 있다.
또 당나라에 있었던 신라의 절 ‘적산원(赤山院)’에서 부르던 범패에 ‘당풍(唐風)’, ‘향풍(鄕風)’, ‘고풍(古風)’이 있었다는 기록이 일본 자각대사의 ‘입당구법순례기’에 전한다. 이에 의하면 진감선사가 배워 온 범패는 당풍이고, 향풍의 범패는 홋소리와 가까우며, 고풍의 범패는 서역에서 들여온 것으로 지금의 짓소리와 비슷하다.

범패가 단절 위기에 빠졌던 때는 일제 강압기 시절. 일제는 1911년 사찰령을 반포하고 다음 해 각본말사법을 제정하면서 범패와 작법을 금지시키는 정책을 폈다.

범패에 출중한 스님을 ‘어장’이라 부르는데 조계종은 2006년 원명스님을 어장에 추대했다.
원명스님은 일찍이 범패에 눈을 떴다. “17세 때 출가해 선승이 되려고 안거철마다 선방을 전전했어요. 캄캄한 밤중에 혼자 선방에서 수행하다 범패 소리를 들으면 황홀경에 빠져들었지요. 그 순간 염불이든 참선이든 범패든 극치에 들어가면 다 한 길로 통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 길로 스님은 당대 최고 어장이던 박송암 스님을 찾아가 범패를 전수받았다.
박송암스님은 김운공 장벽응 스님 등과 함께 범패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대표적 범패 어장.

범패는 듣기엔 좋지만 배우려 한다면 어려워서 대부분 포기하고 만다. 예전 한가닥 소리한다는 기생들도 범패를 배우러 왔다가 30분도 안돼 돌아가는 경우가 허다했다고 한다.

스님은 범패가 푸대접 받는 현실을 안타까워한다. “우리나라 범패가 중국이나 일본보다 음악적으로 훨씬 뛰어나다”면서 “서양사람들은 우리 범패를 가장 훌륭하다고 감탄하며 칭찬하는데 정작 우리는 우리 것을 푸대접하고 있다”고 아쉬움을 토로한다.

한국불교전통의례전승원 초대 학장으로 임명된 원명스님. 정식으로 후학을 양성하게 돼 기쁘다는 원명스님은 “벌써 20여명이 전승원에 등록해 범패를 배우고 있다”고 밝히고 “이들을 앞으로 5년동안 상주권공, 불교의식 장단, 불교무용, 수륙작법 등 재를 지내는데 필요한 의식을 집중적으로 교육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모든 번뇌가 사라진 선정의 상태에서 소리를 해야 참맛이 나는 법’이라고 범패를 말하는 원명스님은 어산 작법을 이을 후계자 양성에 노익 어장의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김종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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