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주구천동’하면 ‘10대 명승지’라는 타이틀이 따라온다. 그러나 불자라면 그보다는 ‘고승 보림처’를 먼저 떠올려야 하지 않을까.
‘9천여 명의 고승들이 다녀갔다’ 해서 지어진 九千洞(구천동)이라는 지명처럼, 이곳에는 조선시대 고승인 부용·부휴·정과·벽암 스님 등이 운수하며 숱한 이야기를 남겼다. 또한 용성·선파·전강 스님 등과 같은 근대 고승들은 구천동에만 머물지 않고 저자거리로 나와 대중들에게 상당 법문을 하고 참선을 지도하며 선법(禪法)을 심었다.
여기에서 무주 불교의 특징이 드러난다. 과거 불교가 ‘구천동’과 같이 깊은 산중 계곡에 은거해 있었다면, 근대 이후 무주 불교는 오탁 세상으로 나와 연근(蓮根)을 심고자 했던 고승들의 노력이 돋보인다는 점이다. 향산사(주지 성본 스님)가 주목되는 것은 바로 그 변화의 시발점이기 때문이다.
덕유산 한 줄기의 준령이 내려와 앉은 향로봉을 병풍으로 삼은 향산사는 1918년 용성 스님에 의해 개원된 무주 군내 최초의 포교당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다. 당시 용성 스님은 전통 불교의 맥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대중 포교가 시급하다고 판단하고, 신심 깊은 불자들을 모아 ‘지장회’라는 모임을 결성, 부인선원을 열었다.
그리고 용성 스님은 단지 염(念)을 하고 기복하는 것을 수행으로 생각했던 불자들에게 상당 법문으로 불법의 참 맛을 일깨워주는 한편 참선 지도를 병행해 신심을 다졌다. 이후 선파·전강 스님 역시 향산사에 주석하며 불자들의 근기를 끌어올리는 데 진력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불자들의 공부가 높았다는 점에 내심 놀
랐다”는 향산사 주지 성본 스님의 말처럼, 무주 불교는 ‘탄탄한 정진력’으로 무장되어 나아갔다. 물론 성본 스님은 “지금의 무주 불교가 과거 선사들의 뜻을 이어가고 있지 못한 것 같아 아쉽다”며 “향산사가 ‘탄탄한 정진력’을 되찾는 단초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인법당으로 시작한 향산사는 70년대 이후 혜림 스님(향산사 前 주지·1978년 열반)과 성본 스님의 중창불사에 힘입어, 현재 대웅전·선원·나한전·산신각 등 총 7동의 건각이 들어선 지역 불자들의 수행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하고 있다.
“인천 용화사에서 정진하고 있을 때 전강 스님의 권유로 이곳(향산사)으로 왔다”는 성본 스님은 “은사(혜안) 스님은 검소한 삶으로 선사들의 유지를 받들고자 노력한 분”이라며 “최근 스님의 노력에 미력을 더해 ‘선원’을 개원했는데, 대중 참선 지도의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무주 불교계에서 향산사의 상징적 의미를 뒷받침하듯, 이곳에는 중요 유물들이 많다. 우선 용성 스님이 손수 빗은 불상이 있고, 조선시대 상궁들의 서원이 담기 오방번 7기와 6·25 당시 적상산 안국사에서 옮겨온 16나한상 등 있다. 여기에 목판본 30종 75책, 필사본 11종 12책 등 모두 43종 97책도 빼놓을 수 없다. 70년 남짓한 역사를 가진 사찰이지만, 소장되어 있는 전적과 불상 등을 놓고 보면 주변의 천년고찰에 뒤지지 않는다.
향산사 비지정문화재를 조사한 바 있는 송기일 교수(전남대, 문화재청 문화재 전문위원)는 “사찰 규모나 연혁과 비교해 상당량의 불서 등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다는 점이 매우 주목된다”며 “스님들의 운수 과정에서 향산사에 전해진 것으로 보이며, 이는 향산사의 지역적 역사적 중요성을 가늠하게 하는 척도”라고 지적했다.
이들 전적 중에는 임난 전후로 간행된 15종 17책이 주목되는데, 특히 국내 유일본으로 보이는 3종 3책이 돋보인다. 『상교정본자비도량참법(詳校正本慈悲度場懺法)』은 1474년에 궁실의 수명장수과 극락왕생을 기원할 목적으로 간행된 불서로 매우 정교하게 판각된 특징을 보이고 있다. 동일본이 현재 보물로 지정되어 있을 정도로 매우 귀중한 전적문화재이다.
또한 『운수단(雲水壇)』의 개흥사판과 보현사판은 아직까지 주요 기관의 고서목록 및 학계에 전혀 소개된 바가 없는 매우 희귀한 유일본이고, 상주 보문사에서 임난 이전인 1568년에 간행된 『천지명양수륙제의찬요(天地冥陽水陸齋儀纂要)』역시 국내 유일본으로 처음 발견된 불서이다.
“유물이 말해 주듯 향산사는 무주 불교의 대표적인 수행도량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 성본 스님은 “유서 깊은 선사도량으로서 옛 조사들의 선풍을 잇고 무주 불교의 정진력을 되찾는 데 일조하겠다”고 말했다. 스님에 따르면 무주 불교는 과거와 달리 수행과는 거리감이 없지 않다는 것.
이에 따라 스님은 향산사 내 관음회라는 참선 모임을 결성하고 불자들에게 하루 1시간 정도의 생활 참선을 적극 권유하고 있다. “나이든 불자일수록 ‘무상’을 느낀 분들”이라는데 주목한 성본 스님은 “행주좌와 어묵동정은 하루아침에 몸에 베일 수는 없지만, 서서히 시작해 탄력이 붙으면 과거의 전통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향산사 | 전북 무주군 무주읍 읍내리 721-1 (063)322-27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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