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 1 : 이기적이고 괴팍한 노처녀 도라는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들의 편지를 대필해주고 받는 돈으로 살아갑니다. 하루는 남편이자 아버지를 간절히 만나고 싶어하는 아나와 그의 아들 조슈에의 편지를 대신 써 준 그날, 아나가 교통사고로 죽습니다. 중앙역을 떠나지 못한 채 배회하는 조슈에. 도라는 조슈에를 인신매매단에 팔아넘기고 받은 돈으로 리모콘 TV를 사지요. 그날 밤을 잠 못 이루는 밤으로 보내고, 아침 날이 밝자 인신매매단을 찾아간 도라는 조슈에와 함께 도망칩니다. 내친 김에 조슈에의 아버지를 찾아 함께 길을 떠나는 도라.

장면 2 : 테살리아의 대도시 이올코스의 왕 아이손은 아버지가 다른 동생 펠리아스에 의하여 왕위에서 쫓겨납니다. 아이손의 어린 아들 이아손은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켄타우로스 족의 현자(賢者) 케이론에게 맡겨지고…. 다 자란 이아손은 잃어버린 왕위를 되찾기 위해 숙부인 펠리아스를 찾아갑니다. 순순히 왕위를 내놓을 리 없는 펠리아스는 먼 동방 황무지 콜키스에 있는 황금모피를 가져올 것을 요구합니다. 이에 원정대가 결성되니 바로 아르고 원정대이지요.


▲ 김문갑 박사
[장면 1]은 영화 〈중앙역〉의 내용이고, [장면 2]는 그리스 신화입니다. 이 두 장면은 사이에 수천 년의 간극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똑같은 이야기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도라는 일상이 반복되는 중앙역을 떠나 낯선 환경, 익숙하지 못한 세계로 떠났다가 돌아옵니다. 이아손도 왕궁을 떠나 펠레온산에서 살고, 다시 콜키스로 긴 여정을 떠났다가 돌아오지요. 이 일상으로부터의 ‘분리’, 낯선 미지의 세계로 ‘입문’, 다시 본래 자리로의 ‘귀환’이라는 이야기 구조는 일찍이 조셉 켐벨이 제시한 신화 속 서사구조입니다.  

〈중앙역〉, 〈델마와 루이스〉같은 로드무비는 물론, 〈스타워즈〉, 〈반지의 제왕〉같은 SF, 〈본 시리즈〉류의 액션 추리극, 심지어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같은 멜로물까지도 ‘분리-입문-귀환’이라는 서사구조를 뼈대로 합니다. 어째서 수천 년 전 신화 속 이야기 구조가 첨단 과학의 시대에도 맹위를 떨치는 걸까요? 그건 아마도 인간은 과거나 현재나 늘 떠나고 싶어하기 때문일 겁니다.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은 대부분이 꿈꾸는 희망사항이지요. 그럼 왜 우리들은 그토록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어할까요? 그건 일상이 내가 꿈꾸는 삶이 전혀 아니기 때문이겠지요.

도라가 낯선 곳으로의 여행 끝자락에서 만나는 사람은 거울 앞에서 화장을 하는 자신, 그토록 미워하던 아버지가 그리워 눈물 흘리는 그녀 자신입니다. 이런 도라의 모습은 일상 속에서 왜곡된 채 은폐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일상에서 탈출하고 싶은 욕망은 어쩌면 이렇게 가려진 ‘나’의 참모습을 되찾고 싶어서 일 것입니다. 선재동자가 깨달음을 얻고자 길을 나선 것도, 예수가 광야에 나아가 악마의 시험에 드는 것도, 싯달타 태자가 고행길에 접어드는 것도 모두 잃어버린 본래면목을 찾아 나선 여정은 아닐까요?

그래서 떠나보려고 합니다. 석가모니가 생노병사가 고통임을 알게 된 순간부터, 큰 수레[대승(大乘)]에 몸을 싣고, 중국의 천태산에도 올라갔다가 육조 혜능을 만날 때쯤이면 아마도 나의 본래면목과 조우하리라 기대하면서 말입니다.

- 김문갑 / 철학박사 · 충남대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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