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계종은 5일 총무원 전통문화공연장에서 영화 <달팽이의 별> 특별 시사회를 개최했다.

“비구들아, 내 분명히 밝히지만 세계(loka)의 끝은 알 수도 없고 볼 수도 없으며 갈 수도 없다. 하지만 세계의 끝을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며 가지 않고서는 고(苦)를 끝낼 수도 없느니라.” (『쌍윳타니까야』 4권 중에서)

부처님은 세계의 끝이, 말하자면 세계의 진리가, 우리의 감각으로는 알 수 없고 느낄 수 없다고 설하셨다. 그러나 그 ‘끝’을 알아내지 못한다면 우리는 이 사바세계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 또한 부처님 말씀이다. 알지 못할 것이지만, 알아야 한다는 것. 그 ‘앎의 역설’은 가히 절대적이다. 스님들은 이 거대한 역설을 두고 한평생을 백척간두에 내어놓는 것일 터이다.

그리고 여기, 아주 어린 시절부터 ‘감각’을 상실했던 한 사람이 있다. 그의 눈은 보이지 않고, 그의 귀는 들리지 않는다. 시청각장애인 조영찬 씨. 그의 삶은 온몸으로 세계에 달라붙어 한 시간에 7미터 남짓을 이동할 수 있을 뿐인 달팽이와 비슷하다. 아주 느리고, 아주 조심스럽다. 그러나 그런 그가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는 우리들보다 세계의 ‘끝’과 더 먼 곳에 있으리라 판단하면 큰 오산이다. ‘멀다’와 ‘가깝다’는 관념은 그의 것이 아니고, 부처님의 것도 아니다.

조계종은 5일(월) 오후 4시 총무원 전통문화공연장에서 영화 <달팽이의 별> 특별 시사회를 진행했다. 이승준 감독과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스님이 영화를 관람했고, <달팽이의 별> 제작∙배급사 관계자, 종단 산하 장애인복지시설 종사자, 총무원 교역직 스님 및 직원들도 함께 참석했다. 영화가 상영되는 동안 기자는 몇 번 관람석을 엿보았다. 부처님 법을 위해 생(生)을 걸고 나아가는 스님들께서, 열렬한 개신교인(!)인 영찬 씨를 보며 웃고 한숨짓는 풍경은 푸근해보였다.

▲ 자승스님(두번째줄 왼편), 이승준 감독(가운데)이 이날 시사회에 참석했다.

영화 <달팽이의 별>에는 시청각장애인 조영찬 씨와 척추장애인 김순호 씨 부부가 만들어가는 사랑이야기가 담겼다. 순호 씨는 하루의 많은 시간 동안 영찬 씨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포개놓는다. 영찬 씨가 다른 이와 유일하게 소통할 수 있는 손가락 점자를 위해서다. 영찬 씨는 키가 남들의 반밖에 되지 않는 순호 씨를 위해 천장의 전등을 갈아주고, 설거지를 거든다. 그러나 아무래도 영찬 씨가 순호 씨에게 도움을 받는 부분이 훨씬 많다. 그걸 놀리는 장애인 친구들에게 영찬 씨는 ‘욱’ 한다. “순호 씨가 내 도우미로 결혼한 거라고 생각해?”

감수성이 예민한 영찬 씨는 작가지망생이기도 하다. 장애인 복지시설에서 운명처럼 만난 두 사람, 조영찬과 김순호. 먼저 영찬 씨에게 말을 걸고 ‘작업’을 건 것은 순호 씨였다. 영찬 씨는 그 만남에 대해 이렇게 술회한다. “한 천사 같은 아가씨가 나에게 저녁을 먹었느냐고 대뜸 묻고서는, 밥이 없다고 미안해 하다고 하면서 따끈한 라면을 끓여주었다. 지금껏 먹었던 그 어떤 밥보다 맛있는 라면이었다.” 대신 영찬 씨는 순호 씨가 아플 때 누구보다 먼저 달려가 그녀를 보살펴주었다. 마침내 둘은 결혼에 성공!

그러나 영화 중간중간에 삽입되는 영찬 씨의 자작시는 대개 시청각장애인이라는 고단한 운명을 아프게 되돌아보는 내용이다. 영찬 씨는 “삶은 승차감이 없는 기차에 탄 것 같다. 아침에서 점심으로, 점심에서 저녁으로….”라고 말하면서 “하루 종일 아무와도 대화하지 못하고 고립돼 있으면 혼자 우주에 있는 기분이다. 시청각장애인은 누구나 다 우주인 기질을 가지고 있다”고 고백한다. 그는 “볼 수 없는 것은 꿈꿀 수 없다. 나는 꿈 속에서도 시청각장애인”이라고 털어놓으며 “때로는 이 답답한 어둠을 벗어나 소리 지르고 질주하고 싶다”고 외친다. 글을 통해서.

하지만 영찬 씨는 끝내 노래한다. “가장 값진 것을 보기 위하여 잠시 눈을 감고 있는 거다. 가장 참된 것을 듣기 위하여 잠시 귀를 닫고 있는 거다. 가장 진실한 말을 하기 위하여 잠시 침묵 속에서 기다리고 있는 거다. 태어나서 한 번도 별을 본 적이 없지만 한 번도 별이 있다는 것을 의심한 적이 없었다….” 별은 우주에 있지만, 누구도 홀로 우주를 떠돌며 빛나는 별을 볼 순 없다. 영찬 씨에게 이 세상 속의 ‘별’을 찾아주었던 이는 순호 씨였다. 이 영화는 결국 사랑이야기였던 것이다.

삶은 어차피 혼자 가는 것. 외롭게 버텨야 하는 것. 순호 씨와 영찬 씨도 둘 다 이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진정한 외로움은 자신의 결점을 꽁꽁 숨기며, 타인을 밀어내는 것이 아니다. ‘사랑’과는 거리가 먼 듯 보이는 불교에서도 크게 다르진 않다. "좋은 친구들과 사귀며 함께 공부한다면 도의 절반을 달성한 것과 같지 않습니까"라고 묻던 아난 존자에게 부처님은 설하시지 않았던가. "그렇게 말하지 말라. 좋은 벗들과 함께 공부하는 것은 도의 전부를 이룬 것과 같다." (『선지식경』)

▲ 이승준 감독
이날 시사회가 끝난 후 기자는 이승준 감독에게 웃으면서 물었다. 명색이 조계종 시사회인데 주인공들이 독실한 기독교인들이라 불편한 점은 없었냐고. 이승준 감독은 “특별히 그렇지는 않았다. 이 영화는 각자의 종교적 ‧ 정치적 분별 너머로 사람들이 간직한 더 깊은 부분을 건드릴 수 있을 거라 믿었다”면서 “총무원장 스님도 장애인들과 우리 비장애인들이 서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공유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어 고맙다고 말씀해주셨다”고 말했다.

불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이승준 감독은 “솔직히 불자는 아니다. 무교다”라면서 “그러나 여행을 갈 때마다 사찰에 들러, 사찰만이 가지고 있는 그 고요하고 평화로운 분위기를 만끽하곤 한다”고 밝혔다.

한편 2008년 말부터 꼬박 2년여의 산고 끝에 2010년 4월 제작된 <달팽이의 별>은 2011년 11월 다큐멘터리의 ‘칸영화제’ 암스테르담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아시아 최초 장편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또 미국 PBS 선정 ‘2011년 최고의 다큐멘터리’ 12위, 2010년 EBS국제다큐영화제 개막작 선정 등 성공가도를 이어왔다. 핀란드, 미국, 일본 등 세계 각국 영화계가 <달팽이의 별>의 작품성에 주목해 제작에 공동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지난 2월에는 최광식 문화부 장관이 참석했던 특별 시사회가 열렸으며, 오는 8일에는 김황식 총리도 <달팽이의 별>을 관람할 예정이다. 영화관 정식 개봉은 3월 22일이다. 일반 상영과 함께 시청각 장애인을 위해 한글자막과 음성해설을 덧붙인 ‘배리어프리’ 버전으로도 개봉된다. 음성해설을 맡은 가수 김창완 씨의 목소리 재능기부로도 화제가 된 바 있다.

도겐(道元) 선사는 말했다. 모든 것이 불성(佛性)의 체현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꽃은 좋아하고 잡초는 좋아하지 않는다고. 우리 비장애인들은 아마 앞으로도 영원히 민첩하고, 훤칠하며, 반듯한 사람을 좋아할 것이다. 자신의 생각을 시원시원하게 말할 수 있고, 자신을 아름답게 꾸밀 줄 아는 사람을 좋아하리라. 그러나 그것은 세계의 ‘끝’, 부처님이 말한 세계의 진리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 끝을 모르는 한 우린 누구나 고(苦)에서 벗어날 수 없다. 도겐 선사의 말처럼, 우리가 사랑해도 꽃은 지고, 우리가 사랑하지 않더라도 잡초는 자라난다. 불법은 평등하다.

- 박성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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