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이에게는 각기 원(願)이 있다. 제불보살에게도 사홍서원과 같은 총원(總願)과, 각 별원(別願)이 있다.

아미타불의 48원(願)으로 극락세계가 장엄되고, 약사여래의 12원(願)으로 유리광세계가 장엄되듯이, 모든 불국토가 제불보살의 서원과 공덕으로 장엄된다. 그리고 ‘오늘’ 이 순간의 우리의 세계는 바로 우리들의 서원과 신행으로 장엄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만약 우리가 스스로 바르게 서원을 세우지 못한다면 먼저 자신의 서원과 신행을 바로 세우는 데 더욱 노력해야 할 것이다.

대승불교의 이념은 상구보리 하화중생이다. 즉 개인의 깨달음과 정토사회의 구현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개인의 깨달음과 정토사회 구현이라는 떨어질 수 없는 두 과제를 분리시켜 생각하거나, 너무 추상적인 영역에 둔다는 데 있다. 불교교단은 사회 속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개인들을 키워내는 곳이 아니라, 부처님이 열어 보이신 참다운 진리를 실현해가는 수행 공동체인 것이다.

이제 우리는 눈앞의 일에만 매달려 씨름하는 소승적 자세를 버려야 한다.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불국토에 대한 서원을 바르게 세우고 그것을 향해 움직이는 새로운 힘을 일으켜야 한다.

바른 원을 세우면 거기에는 반드시 정진력이 따르게 마련이다. 그래서 우리는 원력(願力)이라고 하는 것이다. 일시적인 방편이나 미봉책으로는 불국토를 가꿀 수 없다. 개인의 삶이나 사회가 부정적인 비난과 질시보다는 긍정적인 올바른 서원에 의해 이끌어져야 바르게 서는 것이다.

화엄경의 初發心是便成正覺(초발심시변정각)의 말씀처럼 처음에 바르게 세우는 서원이 바른 깨달음에 이르는 길임을 자각하며 오늘 불교저널을 창간한다. 그리하여 본 불교저널이 우리사회의 참된 깨달음과 불국정토 구현을 위하여 노력할 것을 서원한다.

법진 스님/본지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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