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인 정릉(사적 제208호)과 서울시 유형문화재인 조계종 흥천사(서울 성북구 돈암동 ‧ 주지 정념스님)가 인근 아파트 재개발을 둘러싸고 훼손될 위기에 처했다. 흥천사 주지 정념스님은 10일(화)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릉 제6구역 재개발사업과 관련해 문화유산 훼손 가능성이 심각하다고 비판했다.

흥천사와 ‘정릉을 사랑하는 모임' 등 지역주민들은 11일 오후 2시에 예정된 문화재위원회의 아파트 개발 허가를 위한 문화재 현상변경심의를 앞두고, 현상변경 불허를 촉구하는 민원을 제기하는 등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이번 심의에서 현상변경이 허가돼 공사가 이뤄진다면 목조건축물의 균열과 붕괴가 일어날 것은 자명하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논란이 되고 있는 ‘정릉 정비 사업’은 정릉 제6구역 주택재건축 정비사업조합이 정릉과 흥천사 사이의 부지에 삼성건설을 시행사로 총 19개동 752세대(지하 6층, 지상 12층 규모)가 입주할 수 있는 대규모 단지를 조성하는 것이다. 조성 계획에 따르면, 이 아파트 단지는 정릉과 불과 10여m 떨어져 있을 뿐 아니라 유형문화재 제66호인 흥천사 극락보전, 67호인 명부전으로부터 70m 거리에 위치해 있다.

▲ 정념스님
정념스님은 기자회견장에서 “흥천사가 보유하고 있는 극락보전, 명부전 등 목조건축물이 공사가 이뤄진다면 균열과 붕괴가 일어날 것”이라며 “고려말 조선초 왕릉 문화가 혼재된 역사성을 지닌 정릉을 우리 스스로 침해하는 결과가 될 것”이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이런 까닭에 문화재청 사적분과 및 세계유산분과는 이미 지난 2010년 7월과 9월 등 정릉 제6구역 정비사업조합이 신청한 문화재 현상 변경 허가를 수차례 부결한 바 있다.

현재 사업의 주체인 주택재건축 정비사업조합은 2011년 10월 반대 주민들과의 행정 소송에서도 ‘정릉 제6구역을 대표할 자격이 없음’이란 결과로 패소한 상황. 그러나 조합 측은 문화재청에 문화재현상변경을 지속적으로 신청하고 있다. 특히 이 같은 신청이 받아들여져 11일 오후 2시에 열리는 사적분과 ‧ 세계유산분과 합동회의에서 현상 변경 허가가 통과될 경우, 유서 깊은 문화유산인 정릉과 흥천사의 피해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정념 스님은 “해당 사업은 문화재보호구역의 제한을 초과하는 12층 높이(36m)의 대규모 공사 시행이며, 세계문화유산 정릉의 인근에 이 같은 무분별한 개발이 이뤄진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면서 “아파트 공사는 중단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만약 개발이 필요하다면 자연ㆍ문화ㆍ사람이 조화를 이루고 공존하는 공간이어야 할 것이고, 아파트 공사로 정릉의 세계문화유산 지정이 취소되면 그 책임은 문화재청이 져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 황평우 소장은 “흥천사는 계곡처럼 내려가 있는 터에 자리하고 있는 데 그 위에 36m, 70m짜리 15층 아파트가 들어서게 되면, 사찰은 아파트 분지 속에 들어가서 더 이상 종교적인 기능을 할 수 없게 된다”고 밝히며 “또 세계문화유산인 정릉을 지키는 것은 한국불교계의 문제일 뿐 아니라 한국의 역사문화유적을 보존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선 건국 최초의 왕릉인 정릉(사적 제208호)은 태조 이성계의 부인인 신덕왕후를 모신 곳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조선 왕릉의 하나이다. 또 흥천사는 정릉의 능찰로 서울시 지정 유형문화재 제66호 극락전과 제67호 명부전이 있는 전통사찰이다. 또 문화재로 지정은 되지 않았지만, 서울 지역에 유일하게 대방이 남아있는 사찰로 향후 대방의 문화재 지정이 필요한 상황이다.

- 박성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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