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겨울 삭풍(朔風)을 타고 휘날리는 나뭇잎은 쓸쓸하기만 하다. 그러나 마지막 남은 목숨의 끈조차 떨어버리고 본래 자리, 空(공)으로 돌아가는 그 순간이야말로 부처님의 가르침이 아니던가. 그래서 마지막 남은 입새 하나가 파르르 떠는 모습, 그 모습이 아찔하도록 아름다운 것일까

약수암(주지 관수)으로 가는 길목. 남한산성의 허리를 돌아 경기도 이천과 여주 경계선을 향해 물고기 떼처럼 거슬러 올라가는 70번 간선도로 가에도 낙엽들이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 차가 지나갈 때마다 길 위에 떨어져 뒹구는 낙엽들이 좁다란 간선도로로 훠이 훠이 날아오르다가 이내 맥없이 낙엽비가 되어 투두둑 떨어졌다.
갑자기 ‘인생무상’이란 말이 떠오른다. 그래. 생명 있는 모든 것들은 누구나 한 번은 저 낙엽처럼 이 세상과 이별해야 하지 않겠는가. 싫든 좋든, 그때까지도 이 세상에 남아 있는 원한이 있든 없든, 끝내 이루지 못한 애달픈 사랑이 있든 없든, 잘 살았든 못 살았든, 언젠가는 그렇게 사라지는 것이 아니겠는가.
‘뭇 생명을 살리는 물이 흐른다.’ 하여 붙여진 ‘藥水庵(약수암)’. 약수암은 지금부터 30여 년 전 당우를 세우면서 그 역사가 시작됐다. 약수암이 자리하고 있는 문장리의 ‘문장’이라는 이름은 멀리서 보았을 때 이곳이 빗살무늬(紋)를 띄고 있는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지금은 ‘文章(문장)’으로 변했다.
약수암 들머리에 들어서자 초등학교 교정이 보이고, 학동들의 아우성이 메아리치듯 길손을 맞이했다. 초등학교 주변에는 인심 가득해 보이는 따뜻한 집들이 길손의 눈길을 머물게 했다. 집들 사이로 잘 포장된 산길을 올라갔다. 듬성듬성 앉아 있는 암석을 기대어 ‘약수암’이라는 푯말이 웅크리고 앉아 있다. 몇 개의 푯말을 지나자 새롭게 만든 듯 깨끗한 자갈길이 보이고 이내 조그마한 약수암 경내로 들어섰다.
약수암을 병풍처럼 둘러선 월악산 자락에 옷을 다 벗은 나무들이 듬성 등성 서 있었다. 예로부터 한 사찰이 창건되는 데는 항상 신비한 인연이 뒤따르고 있음을 불자라면 누구나 알 고 있다. 약수암 역시 ‘물’과 관련된 구전이 많다. 그중에서도 임진왜란과 6·25동란 등 큰 전란 중에 매번 마을 사람들이 이 물의 신비한 덕을 입어 생명을 부지하고 살아났다는 이야기는 ‘흥천면’ 일대에서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다.
대웅전의 지붕 곳곳에는 파란 이끼가 피어올라 있다. 20평도 채 안될 만큼 작은 대웅전을 밑에서 올려다보니 마치 하늘에 떠 있는 ‘보궁’처럼 보였다. 대체 저 자그마한 대웅전에서 사람들은 무슨 소원을 빌었을까. 그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합창을 한 채 저 대웅전을 들어서며 자신의 가족과 건강과 장수, 극락왕생을 빌었을까. 저 대웅전은 수많은 사람들의 간절한 소원을 얼마나 들어주었을까. 길손의 의문에 답을 하듯, 그 대웅전 앞에서 야단법석을 준비하듯 가지런히 앉아 있는 문정리 집들이 대웅전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다. ‘나무아미타불’을 염송하듯이.
관수(觀水) 스님의 수행과 포교 공간인 지금의 약수암은 ‘신비’보다는 ‘기도’와 ‘신심’을 좇아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 가고 있다. ‘영험’보다는 부처님의 일대교시가 도도히 흐르는 사찰이 된 것이다.
“지금은 문장리 주민들에게 자비의 손길을 펴는 것으로 포교를 대신하고 있다”는 관수 스님은 “재적 신도가 너무 적어 눈에 띄는 포교 사업을 펼치지 못하고 있지만, 이렇게 손을 내밀다 보면 주민들이 맞장구를 치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사찰 발전의 초석도 다지는 게 아니겠습니까”라고 말했다.
약수암의 대중 행사는 초하루 법회와 매월 첫째 주 일요일 ‘자비도량참법기도’를 봉행하는 게 전부이다. 참석 대중의 수도 10명이 채 되질 않는다. 물론 동지, 정월, 초파일에는 60 여 명의 대중이 모이기는 하지만, 이는 아주 특별한 경우인 셈이다.
그러나 “언젠가는 맞장구를 치지 않겠냐”는 스님의 염원처럼 동참 대중의 수가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는 게 관수 스님의 귀띔이다. 물론 법회와 기도에 동참하는 대중의 열기는 여느 사찰과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뜨겁다. 연령층도 신심 깊은 40대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약수암 경내 곳곳에서 어느 보살의 오래 묵은 소원처럼 차곡차곡 쌓여진 돌계단이 보였다. 그 돌계단 위에 가지런하게 놓인 신발이 합장을 한 채 하늘로 쭉쭉 뻗어 올라간 참나무 숲을 바라본다. 마치 불심은 계절이 바뀌어도 결코 변하지 않는 참나무의 절개 같은 것이라고 속살거리는 것처럼.
약수암 | 경기도 여주군 흥천면 문장리 산72번지
(031)881-3429

오종욱/월간선원 편집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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