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엄(香嚴 : ?~898) 선사는 당나라 동주 향엄산의 지한(智閑) 선사이다. 선사가 위산영우를 뵈니 위산 선사가 “평생에 듣고 본 것을 떠나 네가 세상에 나오기 전 너의 본래면목(父母未生前)에 대해 한마디 말해보라.” 함에 향엄이 이리저리 사량하여도 한마디도 할 수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스님에게 가르쳐 주기를 애원하였으나 “내가 말하는 것은 내 소견이지 너에게 무슨 소용이 되겠느냐. 오직 네 스스로 자증(自證) 자오(自悟)해야만 한다.”라는 말씀뿐이었다. 번민하다 못해 위산을 하직하고 남양(南陽)에 가서 혜충(慧忠) 국사의 유적을 보고 거기에 머물렀는데, 어느 날 돌맹이를 주어 던진 것이 대나무에 맞아 ‘딱’하는 소리를 듣고 확연히 깨쳤다.
그는 목욕하고 향을 사르며 멀리 위산을 향해 절하면서 “화상의 대비대은은 부모보다도 더 큽니다. 만일 그 때 저에게 언어를 빌려 설파하셨던들 어찌 오늘 이와 같은 법열을 맛보오리까.”하고 감격의 눈물을 흘리면서 다음과 같이 게송을 지었다.

一聲忘所知 (일성망소지)
更不假修治 (갱불가수치)
動容揚古路 (동용양고로)
不墮?然機 (불타초연기)
處處無?迹 (처처무종적)
聲色外威儀 (성색외위의)
諸方達道者 (제방달도자)
威音上上機 (위음상상기)

한 번 치는데 모두 잊었네.
더 다시 애써 닦을 것 없네.
거동에 옛길을 높이 들어
초연의 기틀에 떨어지지 않는다.
이르는 곳마다 자취 없고
성색(모습)이 위의를 잊으니
제방에 도를 통한 이는
모두 최상기라 이르네.

위에서 말한 선문답은 대표적인 오도기연으로서 선가의 지남(指南)이 되어왔다. 여기에서 공부하는 수행자의 면모를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공부란 발심이 사무쳐서 더 이상갈 곳이 없을 때 문득 한 순간의 기연에 억겁의 의심이 녹아 없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현사 선사는 돌부리에 채여 아픔을 느끼는 순간에 크게 깨치고, 장경 선사는 발을 걷어 올리는 순간에 이치의 문이 열리고, 영운선사는 복사꽃을 보는 순간에 의심이 풀어졌으며, 향엄 선사는 돌맹이가 대나무에 부딪히는 순간 더 이상 닦을 것이 없는 경지에 이르른, 일련의 일들이 모두 발심이 충만한데서 온 결실인 것이다.

혜거 스님/서울 금강선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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