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는 처마나 나무 한 곳에 제법 넓은 집을 짓고 먹이를 기다리는 커다란 왕거미와 냇가나 도랑 한 구석에 때를 지어 다니는 송사리를 보며 마냥 한가로워 했고, 꿈틀거리는 지렁이와 거머리를 보며 징그럽다고 몸을 떨었다. 그런데 그런 기억도 어느새 먼 과거가 되었다.

도시화의 물결에 밀려 주변 어디에도 그 풍경은 존재하지 않는다. 개천과 도랑은 복개되어 도로로 쓰이고, 흙먼지 날리던 동네 길들은 포장되어 기능은 있으되 생명은 없다. 단층이던 건물들은 어지러울 정도로 치솟아 있다. 편리하기는 하지만 메마른 우주공간을 연상케 한다. 지금도 북한산을 비롯한 전국의 산들이 사람들의 영악한 생각에 불편해 하고 있다. ‘어디까지 어떻게 뚫고 깎을 것’인가를 생각하면 잠이 오지 않을 일이다.
지역 발전이란 명분하에 경제적 이익을 앞세워 진행되는 요즘의 개발은 기존의 삶의 조건이나 생활방식 등을 깡그리 무시한 백지상태에서 출발하는 것이 보통이다. 정치인을 비롯한 개발론자들에게 한 지역의 자연환경이나 전통적인 삶의 방식과 같은 이른바 ‘이전의 것’들은 전혀 고려할 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지 못하다. 이러한 개발논리 밑에 전제된 것은 ‘이전의 것’, 즉 ‘과거의 부정’으로, 지금까지 존재해 온 모든 것들은 개발의 출발점이 될 수 없다.
이 과정에서 각 지역의 마을을 중심으로 이뤄졌던 전통적인 공동체적 삶의 문화는 점점 찾아보기 어렵게 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각 지역에서 이뤄지는 개발은 기존 자연마을의 경계나 삶의 방식, 자연조건에 대한 고려가 거의 배제된 채로 진행된다. 자연마을의 생활권과 경계를 무시하는 행정구역의 개편과 개발, 이와 함께 추진되는 새로운 도로와 대단위 아파트 단지 등의 조성은 수백 년 내려 온 마을공동체와 문화를 한순간에 지워버린다.

특히 대단위 아파트 단지 조성은 지역 삶의 문화에 대한 아무런 이해가 없고 이해의 필요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외부 이주민들이 다수가 되게 함으로써, 그 지역의 전통문화 유지의 기초인 인적기반을 무너뜨린다. 삶의 성향과 스타일이 다른 다수의 외부 주민이 유입되어 전통적으로 전승되어 온 지역 나름의 독특한 문화를 고수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러한 개발이 이른바 ‘전통적인’ 마을 단위의 공동체 문화를 파괴해서만은 아니다. 더 큰 문제는 그것이 우리문화의 다양성을 파괴한다는 점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한국의 마을 중심의 지역문화는 각각 그 나름의 독특한 모습을 보여준다. 주거양식, 생활방식, 먹을거리, 놀이, 음악, 의례생활, 말투 등등에 있어서 각 마을은 독특한 지역색을 지닌 나름의 자족적인 삶의 방식과 문화를 유지해왔다.
그러나 기존 생활경계나 삶의 방식, 문화, 자연 등에 대한 아무런 배려 없이 진행되는 개발은 이러한 자족성과 개성을 지닌 마을단위의 전통적인 지역문화를 손쉽게 허물어버린다. 예컨대 새로 건설된 도로는 사람들을 마을에서 도시로 이동시킨다. 마을단위의 삶을 도시에 종속시켜 나름의 자족적이고 완결된 삶의 방식을 파괴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역색을 유지하는 독특한 지역문화를 보기는 더욱 어려워지고, 전반적으로 문화의 표준화와 획일화가 가속화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자연계에서 '생물종 다양성'이 건강한 생태계 유지에 핵심이듯이, 건강하고 생명력 있는 문화를 위해서도 '문화의 종 다양성'유지가 요구된다. 이런 점 에서 지역의 다양한 전통적인 삶과 문화를 파괴하고 어느 지역에서나 천편일률 식으로 진행되는 개발은 대단히 위험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것이다.
전통을 내세워 우리 삶의 변화 자체를 마냥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현재 우리사회에서 행해지는 개발이 한 지역이나 마을의 자연환경, 삶의 모습, 문화를 존중하고 지켜주는 이른바 ‘친 전통문화, 친 지역 문화적’인 개발은 될 수 없는지 안타깝다. 개발로 인해 오랜 시간 의 깊이를 가진 우리의 삶 하나가 한순간에 사라지는 것을 보면서, 과거와 현재, 전통과 현대가 함께 살아 숨 쉬는 그런 삶의 문화는 언제나 가능해 질지, 다양성과 개성이 존중받는다는 요즘에도 왜 아직 우리사회에서는 무속과 같은 민간신앙이나 전통적인 생활방식이, 단순히 과거의 잔재가 아니라, 또 하나의 살아있는 종교, 또 하나의 현재적 생활방식으로 자리 잡지 못하는 것인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편리만을 추구한 채 자연·전통·문화의 다양성 등을 간과한다면, 가까운 미래 어느 한 시점에서는 그 과보에 눌려 힘겨워할 것이 분명하다. 즉, 불편함을 없앨 수는 있겠지만, 옛 것 모두를 잃어버리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만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공익을 위해서 최선을 다한다고 명분을 세우지만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생각하는 공익이면 좋겠다. 이제 더 이상의 편리를 자제하고, 이 시대를 사는 우리만의 것이 아니라 후손을 위해서 아껴야할 한정된 유산으로서의 자연·전통·문화의 다양성임을 알았으면 좋겠다.

김용/전 청와대 행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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