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인셉션>

<아바타>와 함께 2010년 극장가를 점령했던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인셉션>은 매우 복잡한 플롯의 영화입니다. 그다지 머리가 좋지 못한 난 이 영화를 보면서 내내 하품만 했습니다. 그렇지만 꿈과 현실의 관계를 끈기 있게 파고드는 집요함이 마음에 들었기에 2회차 관람을 시도했습니다.

어려운 수학공식을 대했을 때의 난감함은 조금씩 사라졌습니다. 두 번째 관람에서 영화는 꽤 많은 것을 던져주었습니다. 특히 불교신자라면 이 영화를 통해서 가장 어려운 개념 중의 하나인 ‘함장식(含藏識)’을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만법연기의 근본이 되는 ‘함장식’이 영화에서는 ‘림보’라는 개념으로 표현됩니다. 림보는 무의식의 가장 저변에 위치하며 한 인생을 존립케 하는 중심 생각을 품고 있습니다. 함장식의 종자에 의해 현상이 존재하고, 또한 윤회가 가능해진다는 불교의 생각과 완전히 일치합니다.

그러므로 개인을 바꾸기 위해서는 이곳 림보에서 새로운 생각의 씨앗을 심거나 기존의 생각을 빼내는 작업이 필수적입니다. 이렇게 림보에서 생각을 교체하자 영화 속 인물은 자살을 결심하기도 하고, 자신의 재산을 해체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 림보에 침투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을 재워야하고 그의 꿈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이 기발한 아이디어가 이 영화 <인셉션>을 이끌어가는 원동력입니다.

<베트맨 비긴즈> <다크 나이트> 등을 통해 오락영화에서도 놀라운 재능을 보였지만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인썸니아> <메멘토> 등을 만든 작가주의 감독입니다. 이번 작품 <인셉션>은 놀런 감독의 이런 두 가지 장점이 잘 버무려진 아트 블록버스터입니다. 전형적인 헐리우드 상업영화의 겉옷을 입고 있지만, 또 그렇게만 단정할 수 없는 난해한 구조와 주제를 갖고 있는 영화로서 오락영화의 한 단계 업그레이드 작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영화 <인셉션>에서 코브는 타인의 꿈속에 침투해 상대의 생각을 훔치는 데 탁월한 전문가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색다른 임무를 맡게 됩니다. ‘인셉션’이라고, 생각을 집어넣는 것입니다. 생각을 집어넣는다는 발상은 상대를 나의 의도대로 움직이게 하고자 할 때 주로 쓰는 수법으로, 영화 <올드보이>에서의 복수도 이런 식의 ‘생각 집어넣기’를 통해서 이뤄졌습니다.

그런데 타인에게 생각을 집어넣는 일은 그렇게 간단치가 않습니다. <올드보이>에서는 15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런데 스피드에 익숙한 현대사회에서 그토록 오래 기다리는 것은 시간 낭비입니다. 영화에서는 오직 10시간이 주어질 뿐입니다. 10시간 안에 상대의 머릿속에 의도하는 생각을 집어넣어야 합니다. 외과수술을 통해 상대의 머릿속에 칩을 집어넣듯이. 그래서 영화에서는 공공칠가방에 내재된 기계장치와 10시간 동안은 어떤 자극에도 잠잘 수 있는 약물이 필요했습니다. 이런 것들로 10시간 만에 새로운 인간으로 태어날 수 있다는 상상, 참으로 참신했습니다.

그런데 영화는 의외의 방향으로 흐릅니다. 코브가 의뢰인의 부탁을 받고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아 피 의뢰인의 림보로 침투해서 ‘생각 심기’에 성공한다는 게 밖으로 드러나는 줄거리만 정작 중요한 것은 생각 빼내기(추출, extraction)입니다. 원래 목적은 인셉션(inception)이었는데 영화는 이상하게 ‘추출’에 집중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생각 심기’보다는 ‘생각 빼내기’ 즉 트라우마 제거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주인공 코브(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트라우마는 아내 멜(마리옹 코띨라르)입니다. 멜은 코브와 마찬가지로 꿈속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인물이었는데 꿈속을 현실로 착각하는 아내를 위해 코브는 아내의 무의식에 ‘이곳은 현실이 아니다. 깨어나기 위해서는 죽어야 한다’는 생각을 집어넣었습니다. 이런 결과로 아내는 현실 또한 꿈속으로 착각하게 됐으며, 자신의 아이들 또한 현실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다가 마침내 자살해버리고, 이로 인해 코브는 아내 살해범이 돼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타국을 떠도는 신세가 됩니다.

결국 여기서 집중해야 할 것은 트라우마입니다. 코브의 트라우마는 아내에 대한 죄책감입니다. 자신 때문에 아내가 죽은 것이니까요. 직접적으로 등을 떠밀어 죽인 것은 아니지만 그의 생각 집어넣기, 인셉션 때문에 아내가 죽었기 때문에 그는 깊은 상처를 안게 되고, 그의 삶은 결코 안정을 찾지 못하고 부유하게 된 것입니다.

아내 멜은 불쑥불쑥 나타나서 그의 삶을 방해했습니다. 현실에 충실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코브의 이런 문제를 해결해주는 존재는 아리아드네(엘렌 페이지)라는 설계사입니다. 그리스신화에서 실타래를 제공함으로써 테세우스를 미궁에서 구해낸 그 아리아드네와 같은 역할을 담당합니다.

영화 속 아리아드네는 코브가 이끄는 ‘인셉션’팀에 가담하면서 코브의 문제를 간파하고 코브의 꿈속으로 침투해 멜로부터 코브를 구해냅니다. 코브의 무의식에서 죄의식을 추출해내게 됩니다. 아내의 죄의식에서 벗어난 코브는 한결 밝아진 얼굴로 집으로 돌아와 아이를 만납니다.

코브와 관련한 트라우마와 함께 영화의 다른 축을 형성하는 것이 피 의뢰인인 피셔의 트라우마입니다. 피셔는 거대 기업의 상속자로 아버지와의 사이에 미묘한 갈등이 존재합니다. 그는 아버지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했다고 여기고, 아버지는 자신에게 실망했다는 생각에 시달립니다. 즉 아버지와의 사이에 상처를 안고 있는 것이지요.


의뢰인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먼저 수행해야 할 과제가 피셔에게서 아버지에 대한 트라우마를 제거하는 것입니다. 물론 영화는 의뢰인의 주문대로 피셔에게서 상속받은 재산을 해체시키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하려는 목적을 향해 나가지만 근본적으로는 피셔의 트라우마가 림보에서 제거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데 치중합니다.

림보에서 아버지와 화해한 피셔는 한층 밝아집니다. 비록 재산은 손실을 보았지만 그는 더 행복해졌습니다. 바로 여기에 영화가 ‘생각 심기’가 아닌 ‘생각 빼내기’에 집중한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이는 불교의 가치관과 일치하는데, 함장식에 존재하는 모든 씨앗의 제거야말로 우리를 윤회로부터 구해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불교의 수행방법인 참선이나 염불, 주력 등 대부분의 방법이 모두 인간의 관념을 빼내는 데 목적이 있는 것만을 봐도 생각 빼내기가 얼마큼 인간의 행복과 자유에 중요한가를 알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놀런 감독은 꿈이라는 가상공간을 통해서 인간이 보다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는데 그게 바로 트라우마, 생각 빼내기라는 걸 지혜롭게 알아챘던 것입니다.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피셔도 그렇지만 코브의 트라우마가 ‘죄의식’이라는 것입니다. 죄의식은 서양종교의 근간을 이루는 사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영화가 이 죄의식으로부터 벗어나는 데 집중한다는 뜻은, 그간 자신들을 지탱해온 종교에 대한 피로감을 표현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서양의 종교가 ‘죄의식 심기’에 치중한다면 불교는 ‘죄의식 빼내기’에 관심이 많다고 보는데 마침내 영리한 현대인들은 ‘생각 빼내기’가 자신에게 더욱 유리하다는 걸 알아낸 것입니다.

지난번에 다루었던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아바타>도 그렇지만 지금 언급하고 있는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인셉션> 또한 불교 사상 위에서 창의력을 발휘한 영화들입니다. 이들 두 감독으로 말할 것 같으면 아마도 현재 헐리우드 영화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감독들이고, 또한 그들이 만든 <아바타>나 <인셉션>은 2010년도 최고의 흥행작들입니다. 그런데 이들 영화가 불교적 사상 위에서 만들어졌다는 게 참으로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부처님의 사상이 세대를 뛰어넘는 진리라는 걸 의미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 김은주 /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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