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시선은 밖을 향해 두리번거리고 있다. 사람들은 밖을 향해 헐떡이다가 자신을 잃어버린다.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자각하지 못하고 상황과 대상에 끌려간다. 또한 우리는 예기치 못한 상황이나 너무 긴장하여 머리가 백지처럼 하얗게 굳어지는 순간에 허둥대며 곤경에 빠지곤 한다.

“스스로 돌이켜 비추어 보라”

그렇다면 어이할 것인가? 그럴 때는 자신의 내면을 깊숙이 바라보아야 한다. 그렇게 밖으로 향하지 않고 자신을 돌이켜 비추어 보는 것을 선에서는 회광반조(回光返照)라 한다.

임제 선사는 말한다.
“그대는 말이 떨어지자마자 스스로 돌이켜 비추어 보라. 다른데서 구하지 말지니, 그대 몸과 마음이 조사님이며 부처님과 한 치도 다르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爾言下便自回光返照, 更不別求, 知身心與祖佛不別).” 《임제록(臨濟錄)》

주변으로부터 나를 자극하는 어떤 말을 듣는 순간, 급박한 상황이 벌어지는 순간, 그 말과 상황에 사로 잡혀 허둥대거나 안절부절 말고 자신을 조용히 돌이켜 보라는 것이다. 돌이켜 자신을 비추어보면 이리저리 날뛰던 마음이 멈춘다.

우리 내면에는 때 묻지 않는 부처님 성품이 자리 잡고 있다. 그것을 다른 말로 진리 그 자체, 본래 모습, 신령스러운 당체라고도 한다. 선에서는 우리 모두 본래 성불해 있다고 선언하지 않는가. 따라서 우리가 스스로 자신을 돌이켜 보는 순간, 본래 부처님 자리에 들어서게 되므로 감각의 부림이나 온갖 장난에 속아 넘어가지 않는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밖에서 들려오는 시끄러운 소리, 성가신 소리, 정신 나간 소리, 화나는 소리를 듣고 마음이 불같이 달아오르거나 맥 빠진 사람처럼 의기소침해 진다. 시비와 선악, 호오와 미추의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며 갈피를 잡지 못한다. 혼비백산하는 상황도 벌어진다. 그렇게 허둥대면서 자신의 학대하고 남을 원망하며 녹슬어간다.

경계의 파도에 흔들리지 않고…

그러나 어떤 상황과 조건에서든 자신을 돌아볼 수 있다면, 자신의 따스한 내면을 바라볼 수 있다면, 내면에 간직된 보물, 영원히 녹슬지 않는 금덩어리가 자신임을 보고 그 순간 경계의 파도에 좌우되지 않을 수 있다. 내면을 직시하고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앉혀 그 고요한 마음속에서 활로를 모색한다. 파도에 따라 이리저리 출렁거리지 않고 세상을 차분하고 명징한 시선으로 보게 된다.

어렵지 않다. 자신을 돌이켜 보기면 하면 된다. 돌이켜 보는 순간 나는 진정한 나 자신과 만난다.

《능엄경》에 ‘반문문성反聞聞性)’이라는 말이 나온다. 소리를 듣는 성품을 다시 들어보라는 의미다. 소리를 듣고 있는 나를 다시 돌이켜 비추어 본다는 것이다. 어떤 소리를 듣는 나가 있고, 그 어떤 소리를 듣는 나를 다시 들여다보는 나가 있다. 노래하고 소리치는 나가 있고 그렇게 노래하고 소리치는 나를 돌이켜 보는 나가 있다는 것이다.

어떤 소리를 듣는 나는 외부 조건에 따라 오락가락 반응하는 나이다. 겉마음이다. 그러나 그 소리를 듣는 나를 돌이켜 보는 나는 오락가락하는 나가 아니다. 내면에서 파릇파릇하게 숨 쉬고 있는 진정한 나이며 본마음이다. 그 본마음을 찾는 것이 선이다.

차별·분리의 아픔·경계는 없다

우리는 회광반조를 통해서 그 진정한 나와 만난다. 그 고요한 순간, 그 정적의 순간에 나는 너와 세상과 하늘과 함께한다. 거기에 차별과 분리의 아픔과 경계는 없다. 바로 그 자리에 서면 우리는 소란스러운 외부 경계에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고 상황에 깨어 있게 된다. 어떤 소용돌이에도 함몰되지 않고 호수처럼 맑은 정신으로 숨 쉬게 된다.

화두를 들 때도 회광반조하는 방법이 있다. “이 뭣고” 할 때 “이 뭣고” 하며 묻는 나 자신을 돌이켜 보는 것이다. 나를 돌이켜 보며 도대체 “이 뭣고” 하면서 묻는 이놈은 무엇인가 의심을 일으키는 것이다. 그렇게 화두 의심을 지어간다. 나를 움직이는 이놈, 과연 이 당체는 무엇인가 하고, 의심을 일으키는 순간, 그 순간 모든 판단과 생각의 작용이 사라지고 무념, 무아의 자리에 동참한다. 바로 그 자리에 모든 경계와 시비를 떠난 본래 모습을 엿보게 된다. 임제선사가 말하지 않았던가. 바로 돌이켜 비추어보는 그 자리가 부처와 조사의 자리니 달리 다른데서 찾지 말라고….

밖의 조건에 허둥대지 말라. 돌이켜 자신을 비추고 자신을 보라. 그리고 거기서 나오는 명징하고 투명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라. 파도가 자고 비바람이 멈출 것이다.

죽음 직전에 이른 사람이 갑자기 정신이 선명하게 밝아지는 것도 회광반조라 말하기도 하나보다. 회광반조란 그렇게 죽음도 어쩌지 못하는 밝은 생명자리다.

고명석/조계종 포교연구실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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