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내 절집 담장을 넘어 들려오는 익숙한 소리 중 하나는 바로《반야심경(般若心經)》의 대명주(大明呪)일 것이다. 사전적 의미로 대명주란 위대한 깨달음의 진언이라 하며, 글자그대로 풀이하면 커다란 밝음의 진언을 뜻한다. 본래 진언은 그 자체로 불, 보살의 서원과 덕을 가리키는 것이며,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는 비밀의 어구이기 때문에 해석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그렇지만 현장이 번역한《십일면신주심경(十一面神呪心經)》,《발제고난다라니경(拔濟苦難陀羅尼經》,《승당비인다라니경(勝幢臂印陀羅尼經)》에는 진언을 수지, 독송함으로써 과거에 범한 죄가 소멸되고, 악업을 짓지 않고, 여러 가지 위험과 두려움에서 벗어나며, 정법을 듣고, 보리심을 구하고, 속히 무상정등각을 얻는다고 하는 취지가 기술되어 있다. 그만큼 진언은 그 자체로 불가사의한 힘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수지, 독송하는 것만으로도 현세의 공덕을 얻고 깨달음의 성취로 이르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본래 진언은 해석하지 않지만 ‘경전 속 진언 이야기’에서는 진언을 잘 기억하고 독송하기 쉽게 하기 위해 진언의 뜻과 의미를 소개하는 것임을 말해두고 싶다.

현장, 반야심경 독송해 위기 모면

현장이 법(法)을 구하기 위해 인도의 서역지방을 여행하고 있을 당시 도적을 만나 일심(一心)로《반야심경》을 계속 독송하여 위기를 모면했다는 내용은 유명하다.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이것을 산스끄리뜨(Sanskrit)어로 표기하면 다음과 같다. “gate, gate, pāragate, pārasaṃgate, bodhi, svāha” 가떼-(gate)는 ‘가다’를 뜻하는 동사 ‘gam’의 과거분사의 여성형인 ‘gatā’의 호격인데, ‘gatā’는 ‘빠람-이따(pāram-ita)’의 ‘itā’(어근√i 역시 ‘가다’를 의미함)와 같은 의미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이 진언은 곧 반야바라밀다를 가리키며, 반야바라밀다 자체가 진언이고 그것을 다시 표현한 것이 “가떼-, 가떼-…”로 시작하는 진언인 것이다.

이에 따라 대명주를 번역하면 “나아가라, 나아가라, 피안으로 나아가라, 피안으로 완전히 나아가라, 깨달음이여”를 의미하게 된다. 관자재보살이 깊은 반야바라밀다행을 행할 때 5온이 공함을 관하셨다고 하듯이《반야심경》은 모든 것의 자성(自性)이 없다는 것을 관(觀)함으로써 모든 번뇌와 고통으로부터 벗어나 걸림 없이 자유롭게 되는 방법을 가르치고 있다.
그러면 “나아가라, 나아가라, 피안으로 나아가라”에서 피안은 대체 어디에 있는 가란 의문이 생긴다. 피안(彼岸)이란 삶과 죽음의 바다를 건넌 깨달음의 언덕이며, 열반의 경지를 말한 것으로 일반적인 시간과 공간의 개념으로 생각해서는 이해할 수 없다.《반야심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하고 있다.

깨달음의 마음인 보리심으로 나아가라

“색불이공(色不二空) 공불이색(空不二色)”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
이것은 모든 존재하는 것들의 무자성(無自性)을 관(觀)함으로써 곧 진여의 세계가 현상계를 벗어나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현상계가 곧 진여의 세계란 것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우리들은 공(空)의 세계 즉 열반의 세계가 저 어딘가에 있다는 착각을 하곤 한다. 마음의 자성(自性)자리가 바로 공(空)의 자리인 것인데 어찌 오고 감이 있을까.《반야심경》은 곧 지혜의 완성이라는 수행법을 가르치는 경전이며, 대명주인 “아제, 아제, 바라아제…”는 반야바라밀다행을 행하여 깨달음의 마음인 보리심으로 나아가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피안(彼岸)의 세계와 차안(此岸)의 세계는 다른 것이 아니다. 반야바라밀의 완성으로 내 안의 부처를 보고 내 안에 있는 본래 참 본성을 체득할 때 마음의 자성은 자유자재로 우주의 보편으로 상주할 수 있을 것이다.

강향숙/한국불교선리연구원 상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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