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일, 한국선학회가 "한국불교의 수행과 『선원청규』"를 주제로 개최한 춘계학술대회.


“한국불교 1700년의 역사, 한국선불교 1000년의 역사에서 『선원청규』가 최초로 제정되었다. 한국적 수행풍토에 맞는 사상과 실참에 의거하여 한국선의 정체성이 확립되는 기틀이 비로소 마련됐다. 이제 가장 중요한 것은 『청규』를 제정하여 편찬한 데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청규』를 어떻게 실천하느냐의 문제이다.” (월암스님)

“『선원청규』의 중요성과 의의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나 조계종의 이번 『청규』는 과거의 것들을 근간으로 ‘짜집기’에 치우쳤던 것이 아닌지 걱정스럽다. 돈오(頓悟)와 점수(漸修)의 문제를 명료하게 정리하지 못한 측면도 아쉽다. 자유와 평등, 경쟁의 논리에 따르는 현대 첨단산업사회의 특성에 대한 배려 또한 부족했다.” (이평래 교수)


지난해 11월 전국선원수좌회는 약 6년여 간의 준비기간 끝에 『대한불교조계종 선원청규』를 발간했다. 1700년 한국불교의 독자적인 수행 지침서를 처음으로 마련했던 그 대작불사를 기념하며 '선원청규' 발간의 의미를 되짚는 학술대회가 열렸다.

한국선학회(회장 송묵스님)는 14일 오전 10시, 동국대 문화관 초허당세미나실에서 "한국불교의 수행과 『선원청규』"라는 주제로 2011년 춘계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이번 학술대회에서는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불교를 특징짓는 독특한 선수행 지침과 그에 따른 『선원청규』의 출현에 대한 폭넓은 고찰이 이루어졌다.

특히 이날 대회의 백미는 월암스님(문경 한산사 용성선원장)의 첫 번째 발표 “선원청규 편찬 의의와 그 내용: 주요 사상을 중심으로”와, 그에 대한 이평래 충남대 명예교수의 논평이었다. 전국선원수좌회의 학술위원장을 역임하며 『선원청규』 편찬을 주도했던 월암스님이 청규의 역사적 · 사상적 의의를 강조하며 그 실천을 강조했다면, 이평래 교수는 조계종의 개혁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청규의 내용이 지니는 한계에 대해 포괄적으로 비판했다.


"『선원청규』, 한국적 수행풍토에 맞는 사상 통해 한국선의 정체성 확립" 

▲ 월암 스님
월암스님은 발표에서 우리는 지금까지 인도불교의 율장과 중국불교의 청규를 계승하여 수행지침으로 삼아왔지만, 이제 그 바탕 위에서 한국불교적 가치에 주목한 새로운 청규를 제정해 수행과 교화의 모범으로 삼게 되었다고 역설했다. 특히 조계종의 『선원청규』는 부처님의 율장정신에 기반을 두면서도 선종의 전통 위에 놓여있는 불조혜명(佛祖慧命)을 계승하는 측면에서 획기적이라는 것이 스님의 주장.

불조의 혜명을 유지 · 발전시키기 위해 수행자들은 견성성불(見性成佛)과 요익중생(饒益衆生)을 실천해나가야 한다. 그 주된 수행의 덕목이 바로 간화선이다. 월암 스님은 나아가 수행의 체계와 방편을 결정하는 청규의 주요사상으로 ▲계 · 정 · 혜 삼학을 강조하는 삼학등지(三學等持), ▲선교겸수적 수행론에 의거한 실참을 요구하는 선교겸수(禪敎兼修), ▲조사선 전통의 수행과 간화선 수행을 접목한 간화정종(看話正宗), ▲노동과 수행이 분리되지 않음을 주창한 선농일치(禪農一致), ▲수행과 다례를 일치시켜 나가는 선다일여(禪茶一如) 등을 꼽았다.

이번 『청규』는 출가수행자의 대중적 생활복지와 노후복지를 위해 종단 차원의 복지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규정해 주목되어 왔다. 월암 스님은 “종단과 본 · 말사는 출가수행자가 안심하고 수행과 교화에 전념할 수 있도록 보장해 주어야 한다”면서 “수행을 위하여 평생 선원이나 토굴에서 정진한 수좌들을 위해 종단과 수좌회 차원의 복지대책도 절실히 요구된다”고 밝혔다. 또 『청규』는 생명나눔 문화의 확산을 위하여, 사후 장기기증 · 시신기증을 통해 중생회향을 실천해야 함을 권고하고 있기도 하다.


"한국불교 독창성 살리면서도 사회 흐름에 적극적으로 조응하는 『청규』 돼야" 
 

▲ 이평래 교수
논평자로 나선 이평래 교수는 『선원청규』가 “참된 선종으로의 발돋움을 위한 개혁의 기치를 높이 쳐든 것”이라며 조계종 전국선원수좌회의 청규 제정이 갖는 의의 자체는 높이 평가했다. 그러나 이 교수는 “이번 『선원청규』는 목숨을 걸고 도를 닦겠다는 감흥을 자아낼 만큼의 신선한 맛은 부족하다”면서 “(새로운 청규가) 헌법이나 법률을 개정하는 것처럼 과거의 것을 근간으로 하여 짜깁기를 한 것이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선원청규』의 한계에 대하여 ▲과거의 전통, 특히 중국 청규에 지나치게 얽매이며 그 인용의 수준에 머무른 측면이 엿보인다는 것, ▲우리 선불교의 난제인 돈오와 점수의 개념에 대한 명료한 해석을 유보했다는 것, ▲자유와 평등을 전제로 하는 민주사회, 첨단산업과 과학이 변화를 주도하는 현대사회의 특징을 아우르려는 정신이 빈약하다는 것, ▲중국 한문권(漢文圈)으로부터 벗어나 한글문화를 살리려는 노력이 부족했다는 것, ▲간화선을 실참하고 지도하는 방안이 여전히 논리적 · 체계적이지 못하다는 것 등을 들었다.

이 교수는 이번 청규의 내용에 대하여 “각 항목의 내용을 천착하여 볼 때 구체성이 부족하고 너무 포괄적으로 나열되어 있는 것이 적지 않다”면서 “불교의 독창성과 독자성을 살리면서도 현대사회를 어떻게 개혁/개조하여 정토를 건립할 것인가를 더욱 철저하게 연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한국불교가 불교를 둘러싼 시대적 흐름을 정확하게 읽고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주문이었다.

월암스님은 이 교수의 논평에 대하여 “지금 해주신 말씀들은 수행인의 문제인 동시에 선원의 문제, 한국 불교 전체의 문제이기도 하다”고 언급하며 “앞으로도 모두가 함께 노력하여, 간화선의 외연을 넓히고 수행의 질을 높일 수 있도록 청규를 다듬어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스님은 일반 대중들이 간화선에 더욱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지침과 방법론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에도 공감했다.

한편 학술대회에서는 첫 번째 발표 후 김호귀 동국대 강사의 “『수선결사문』의 수선작법과 수선결사의 이념”(토론 동국대 강사 희철스님), 신규탁 연세대 교수의 "『범망경』의 계율과 수행"(토론 김호성 동국대 교수), 이덕진 창원대 교수의 “『선원청규』와 한국불교 수행의 나아갈 길"(토론 석길암 금강대 교수) 등의 발표가 이어졌다.

이날 학술대회엔 조계종 전국선원수좌회 전 대표 혜국스님, 전국선원수좌회 『선원청규』 편찬위원장 의정스님, 한국선학회 회장 송묵스님, 한국선학회 고문 현각스님, 동국대 불교학술원장 인환스님 등을 비롯한 많은 사부대중이 참석해 『선원청규』 편찬의 의의를 조망했다.  

- 박성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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