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마경>에는 부처님께서 유마힐을 문병하러 보낸 사리불(舍利佛)과 천녀(天女)가 나누는 대화가 등장한다. 유마힐의 방 안에서 사리불은 천녀에게 “깨달음은 말로써 표현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하며 짐짓 입을 다문다. 천녀의 대답은 이렇다.

“그렇지는 않습니다. 말씀[言說]과 문자[文字]야말로 모두가 해탈의 모습입니다. 왜냐하면 깨달음은 마음 안이나 마음 밖에, 또 그 사이에 성립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문자를 떠나 깨달음을 말하지 마십시오. 모든 것[法]은 그대로가 해탈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유마힐소설경(維摩詰所說經) 中권, 관중생품(觀衆生品) 중에서)



종로구 화봉갤러리에서 열리는 ‘고려대장경 1000년 기념—한국과 세계의 불경展’을 둘러보면서 문득 천녀의 말이 생각났다. 전시대 안에서 고요히 쉬고 있는 불경들은 모두 물리적인 시공간을 뛰어넘은 “해탈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정법(正法)’과 ‘구법(求法)’의 정신이 켜켜이 녹아들어 있는 부처님의 현신일지도 모른다. 우리들은 그것을 너무 쉽게 잊는다고 할지라도….


▲ 금분을 풀에 개어서 쓴 티벳 불경.

▲ 미얀마 불경. 호화장정.

▲ 인도네시아 패엽경. 종이 대산 페다라수라는 나뭇잎에 필사한 불경.


화봉갤러리에서는 고려와 조선시대의 초조 ‧ 재조 대장경을 비롯해 묘법연화경, 금강반야바라밀경, 부모은중경 등의 목판과 필사본, 그리고 중국과 일본, 티벳 ‧ 몽골 ‧ 미얀마 ‧ 인도네시아 ‧ 만주 등 세계 여러 나라의 판본과 사경 등 100여 권이 비교전시 되고 있다. 전시된 불경들은 화봉문고 여승구 사장이 30년간 개인적으로 수집해온 것.

여 사장은 “불경 출판은 근대 이전의 우리 출판 인쇄사의 중심에 서 있어 역사 연구에 큰 자료가 되고 있다”면서 “이번 전시회를 통해 다가올 또 다른 한국정신문화의 천년을 조망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한국과 세계의 불경전’은 이달 31일까지 계속된다. △문의: 02) 735-5401~4.

- 박성열 기자

 

▲ 화엄종주백파대율사대기대용지비(華嚴宗主白坡大律師大機大用之碑). 추사 김정희가 찬서한 백파대사비.

▲ 불설대보부모은중경(佛說大報父母恩重經).

▲ 최치원의 사산(四山)비 중 하나. 문경 봉암사. 회양산문의 지증대사(824~882)를 기리는 내용.

▲ 단석산 신선사 마애불상. 6세기 신라. 신라화랑도, 김유신 장군과 관계가 있는 불상으로 추정된다.


저작권자 © 불교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