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문 | 중동지역에서 문제가 터질 때마다 사람들은 “유태교와 이슬람 사이의 도저히 풀 수 없는 갈등 구조 때문에 일어나는 피할 수 없는 분쟁”이라고 쉽게 이야기해왔다. 특히 서구 기독교적 시각에서 전해오는 소식과 서구적 관점에 익숙한 우리나라에서는,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분쟁과 갈등의 원인과 책임을 ‘이슬람 근본주의’에 돌려온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최근 이스라엘의 ‘가자 지역 폭격’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면서 이런 시각에 제동이 걸리고 있다. 국내에서 ‘서구 기독교 중심 시각’에 변화가 오고 있다는 것이다.>

본래 종교의 목적은 세상 사람들에게 안락과 평화를 가져다주는 데에 있다. 각 종교마다 그 목적을 이루는 수단과 방법이 서로 다르기에 교리와 의례 또한 달라진 것뿐이다. 어쨌든 “내 종교의 가르침이 가장 우월하다”고 믿는 각 종교에서는 그 가르침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해 교세를 확장해서 목적을 달성하려고 하는 것이 당연하고, 이 점에서는 불교도 예외가 아니었다. 석가족의 고타마 싯달타가 깨달음을 얻은 이래 열반에 드실 때까지 수십 년 삶이 바로 전법 활동의 연속이었고, 그 뒤 2500년에 이르는 불교 역사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선교와 포교의 목적이 아무리 소중하다고 해도 그 목적의 가치가 모든 수단과 방법을 정당화해주는 것은 아니다. 포교의 역사가 평화로웠던 불교와 달리, 척박한 사막에서 태어난 셈족의 유일신 종교인 유대교 · 기독교와 이슬람은 선교를 위해 다른 종교에 대해 배타적이고 심지어 폭력과 전쟁을 앞세워온 경우도 많다. 서양사(西洋史)에서 ‘십자군전쟁’이라고 미화하는 가톨릭의 중동 침략 당시 보여준 잔인성과 야만성은 상상을 초월했고, 이슬람 세력이 중앙 · 서남아시아에 들어갈 때에도 비슷했다.
서구 제국주의 세력이 중남미와 아프리카를 강제로 점령하고 식민지로 만들 때에도 가톨릭 선교가 중요하게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은 공인된 사실이다. 『처음 읽는 아프리카 역사』라는 책을 보면, 아프리카 전역에 “백인들이 이곳에 왔을 때 그들은 『성서』를 갖고 있었고 우리는 땅을 가졌다. 그런데 지금은 우리가 『성서』를 갖고 그들이 땅을 가졌다.”는 이야기가 널리 퍼져 있다고 한다. 기독교를 내세워 평화적으로 접근하다가 결국 땅을 빼앗아 약탈하고 개종을 강요하는 서구 기독교 세력의 ‘양두구육(羊頭狗肉)’식 태도에 대한 적절한 묘사가 아닌가.
이렇게 이슬람과 기독교의 폭력적 선교를 이야기한다고 해서 이 종교가 본래 폭력적이거나 과격하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그들의 근본 가르침은 사랑과 박애에 있다. 예수님의 사랑과 용서에 대해서는 너무 잘 알려져 있지만, 이슬람의 교조인 마호메트도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것과는 달리 관용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기독교나 이슬람 모두 종교 집단이 커지고 조직이 필요해지면서 근본 가르침은 사라지거나 파묻혀버리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전도를 펼치는 것으로 본말이 전도되었을 뿐이다. 아이러니 한 것은, 이슬람에 대해 적대적인 미국 개신교 보수파들과 알 카에다와 같은 ‘이슬람 과격파’들이 동일한 관점과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2005년 8월 미국 남부 뉴올리언스를 폐허로 만들었을 때에는 이런 일까지 있었다. 어느 보수적인 개신교 ‘낙태반대 단체’에서는 “하느님이 동성애자들을 벌주기 위해 카트리나를 보냈다. 루이지애나 주에서 낙태 시술이 광범위하게 행해지고 있으므로, 카트리나는 낙태찬성주의자들에게 신이 내린 징벌이다.”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한편 ‘이라크의 알 카에다’라고 밝힌 한 단체에서는, ‘미국의 허리케인을 환영한다’는 글을 인터넷에 올려 “신[알라]의 분노가 억압자들의 중심부를 강타했다”고 주장하기도 하였고, 이슬람 권의 인터넷 사이트에서는 “카트리나는 신[알라]이 우리 편에서 싸우라고 파견한 전사이며, 전사 카트리나는 우리와 함께 미국에 대항해 투쟁한다.”는 등의 주장을 쉽게 볼 수 있었다.
“극과 극은 서로 통한다.”는 말이 꼭 맞는 것이다. 이 정도까지 가면 종교라고 할 수 없고 단지 ‘종교라는 간판을 단 정치 집단’에 불과한데, 문제는 이런 엉터리 집단에 사람들이 몰려든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런 과격한 집단이 ‘알라’와 ‘하느님’의 이름을 빌려 폭력과 분쟁을 일으키고, 인류를 공포로 몰아가서 결국 자신들이 받들어 모시는 ‘알라’와 ‘하느님’의 얼굴을 더럽히고 있다.
어쨌든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전쟁·테러·지역 분쟁에 종교가 일정 정도 관련되어 있음을 부인할 수 없고, 그래서 최근에는 종교 자체를 부정하는 『만들어진 신』·『신은 위대하지 않다 - 종교가 모든 것을 어떻게 해쳐왔는가?』나 『실패한 가설 神:‘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과학에서는 어떻게 보여주는가?』·『종교가 인간을 얼마나 사악하게 만들었나?』 등의 저서가 기독교 문명의 본거지인 서구에서 베스트셀러 대열에 오르는 지도 모른다.

김용/소상공인경제정책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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