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는 생각없이 그 마음 쓰라.” 불도를 구하는 보살은 나·개체·개인 등의 생각을 절대로 일으키지 말아야 한다.

한문 번역본을 의지한 한글번역

“…而滅度之 如是滅度 無量無數無邊衆生 實無衆生 得滅度者 何以故 須菩提 若菩薩 有我相 人相 衆生相 壽者相 則非菩薩(이멸도지 여시멸도 무량무수무변중생 실무중생 득멸도자 하이고 수보제 약보살 유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 칙비보살).”

“이와 같이 한 없고 끝없이 많은 중생들을 제도하지만 실제로 제도 받은 중생이 없어야 하느니라. 왜냐하면 수보리야 만약 보살이 자아에 대한 고집, 인간에 대한 고집, 중생에 대한 고집, 명에 대한 고집이 있으면 보살이 아니기 때문이니라.”

(※이상의 부분은 먼저 게재한 〈대승정종분 제 三의 Ⅰ〉에 나온 것이나, 제 三의 Ⅱ에 참고로 다시 게재합니다.)

(이 부분의) 범본을 의지한 한글번역

“그러나 이렇게 하여 우수한 중생들은 영원히 편안히 경지에 인도하여 들어가게 하더라도, 사실은 그 어느 하나라도 또한 영원히 편안한 경지에 인도되어 들어가게 된 것은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스부-티야, 만일 불도를 구하는 사람이 ‘나는 살아 있는 것이다.’라는 생각을 낸다고 하면, 벌써 그는 불도를 구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어째서 그러한고 하면, 스부-티야, 그 누구라도 나라는 생각을 일으키거나, 또는 살아있는 것이라는 생각, 개체라는 생각, 개인이라는 생각을 일으키거나 한다면, 벌써 그는 불도를 구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가 없게 되기 때문이니라.”

[주석]

멸도(滅度)케 함 - 범어 원문은 parinirvapayati 입멸(入滅) 즉 열반에 들게 한다는 뜻.
아상(我相) - 범어 원문은 atma-samjna. 자아(自我)를 실체가 있는 것으로 보는 [實體觀] 생각.
인상(人相) - 범어 원문은 pudgala-samjna. 개인(個人)을 실체가 있는 것으로 보는 생각.
중생상(衆生相) - 범어 원문은 sattva-samjna. 살아 있는 것들을 실체가 있는 것으로 보는 생각.
수자상(壽者相) - 범어 원문은 jiva-samjna. 개체(個體)나 혹은 개인의 밑바탕에 존재하는 생명력 또는 영혼(靈魂)을 실체가 있는 것으로 보는 생각. jiva는 범어의 ‘산다’하는 어원(語源)에서 유래하는 것이므로 한문으로 번역하는 사람들은 이것을 수자(壽者)라고 번역하였다고 한다. 또한 범어의 jiva는 본래 생명(生命)을 뜻하는 것이지만, 이것을 인도사상에서는 일반적으로 개체(個體)의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불교에서 생명원리(生命原理)를 뜻하는 말로는 정확하게는 jivitendriya 즉 생명의 뿌리[命根]라는 말이 있으므로 여기서는 그것과 구별하기 위하여 개체(個體)라는 말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금강경》의 이곳에서 말하는 범어의 atman(개인), sattva(중생, 즉 살아 있는 것), jiva(개체), pudgala(개인) 등은 모두가 다 영혼 또는 인격주체(人格主體)를 뜻하는 것으로 인도의 일반과 불교에서 생각하고 있는 것들이니, 한문 번역의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 등을 한문식으로 풀이하는 것을 무리한 일이라 하겠다.
그러므로 범어의 sattva-samjna 한문 번역인 중생상을, 그리고 jiva-samjna 한문 번역인 수자상 등을 한문식으로 풀이하기를 일반적으로 “수자상이란 나는 일정한 기간동안을 살다가 사후에는 천당이나 극락세계로 갈 것이라는 막연한 고집이니 속담에 하루 죽을 줄 모르고 천년 살줄만 안다는 예와 같다.”라든지, “중생상이란 나는 5온 등의 인연에 의하여 살아가는 존재라는 고집이니 나에게는 괴로움이나 즐거움 따위가 끊임없이 온다고 생각하는 상태이다.”라든지 또는 pudgala-samjna의 한문 번역인 인상을 풀이하기를 “인상이란 나는 사람이지 축생이나 귀신이 아니다. 나는 지금의 몸으로 장차 인연 따라 6취에 왕래하거나 성불하게 될 것이다 하는 막연한 믿음이다.”하는 등의 순 한문식 문자풀이로만 확대해석 하게 된는 등 범어의 원문을 모르기 때문에 한문만을 의지하여 억지로 끌어다 부치는 무리한 풀이라고 할 것이니, 자제되어야 할 일이라 하겠다.

《금강경》에서의 이곳에 나오는 4상(四相)의 atman-samjna 아상, pudgala-samjna 인상, sattva-samjna 중생상, jiva-samjna 수자상은 모두가 다 한결같이 범어의 원문의 뜻이, atman 자아, pudgala 개인, sattva 살아 있는 것, jiva 개체 등의 뜻이 다 실체로서의 살아 있는 것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음을 지적하는 것이니, 이와 같이 자아·개인·사는 것·개체 등을 실체로 존재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實體觀]은 불도를 행하는 구도자의 견해나 태도로서 마땅하지 않다고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일러주고 계신다.
그러기에 이 대목에서는 불도를 행하는 구자자는 나라는 생각[四相] 없이 그 마음을 쓰라고 하신다.

[강설]

범어 Nirvana 열반(涅槃)이란, 번뇌의 속박에서 해탈하여 다시는 미혹한 생을 받아서 윤회에 드는 업인을 짓지 아니하는 상태에서 죽어서 영원한 진리로 돌아가서 일체가 된 경지를 말하는 것이며, 이러한 열반의 경지에 들었더라도 아직 이 몸과 생각을 지니고 있는 동안은 유여열반(有餘涅槃)이고, 수명이 다하여 이 몸과 생각이 아주 없어져서 다시는 생을 받지 아니함을 무여열반(無餘涅槃)이라 한다는 것이 원시불교나 부파불교에서의 견해임에 대하여 대승불교사상에서는 열반을 진여실상(眞如實相)과 같이 보았고, 이것을 자성청정열반(自性淸淨涅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중생을 끝까지 제도하려는 대비원력(大悲願力)을 지니는 까닭에 열반에도 머물지 아니하고, 또 실상을 아는 지혜가 있는 까닭에 생사에도 머물지 않는 대승보살의 경지를 무주처열반(無住處涅槃)이라고 불렀다.
그러한 보살이 만약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을 낸다면 그는 보살이 아니라고 하였으니, 그 네 가지 상이란 무엇인가. 일반적으로는 아상이란 5온이 임시로 화합하여 생긴 몸과 마음에 실재의 아가 있다고 하며, 또 아의 소유라고 집착하는 소견이며, 인상이란 아는 인간을 말하는 것이므로 출생세계의 동물과는 같지 않다고 집착하는 소견이며, 중생상이란 아는 5온법으로 말미암아 생긴 것이라고 집착하는 소견이며, 수자상이란 아는 일정한 기간의 목숨이 있다고 집착하는 소견이라고 해석하고 있으며, 집착하는 소견이라고 해석하고 있으며, 심지어는 한 차원 높여서 깨달은 경지에서의 4상, 즉 깨달은 경계에 대하여 잘못 알아 집착하는 네 가지 상이 있으니, 여기서의 아상은 깨달음을 집착하여 아라고 하는 것. 인상은 집착하지 않는다는 데 집착하여 아가 깨달았다는 마음이 있는 것. 주생상은 아상·인상 등을 여의였으면서도 깨달았다는 상에 집착하는 것, 수자상은 중생상에서 한 걸음 나아간 것이나, 아직도 능히 깨닫는 지혜를 가지는 것 등이라고 해석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한문으로 번역된 경전의 한문 글귀가 지니고 있는 뜻을 다분히 의지한 해석인 것이며, 범어 경전의 본래 뜻을 참작한 것은 아닌 것이다. 그래서 이것을 범본 《금강경》을 통해서 본다면, atman은 자아 즉 나라는 생각이며, 이것이 아상(我相)이라 번역되었다. sattva-samjna는 실체로서의 살아가는 것이 실지로 존재하고 있다는 생각 즉 살아있는 것이라는 생각이며, 이것이 인상이라고 번역되었다.
jiva는 본래의 뜻은 생명이라는 뜻이였으나, 인도에서는 일반적으로 개체의 뜻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이것이 한문으로 중생상이라고 번역되었다. 그리고 pudgala는 유정(有情) 또는 중생이라는 뜻이지만 일반적으로 개인 또는 개아(個我)의 뜻으로 사용되며, 이것이 한문으로는 수자상이라고 번역되었다.
이상의 넷은 모두가 인도의 사상에서나 불교사상에서 일반적으로 영혼 혹은 인격주체를 뜻하는 것으로 사용된 것들이며, 따라서 실체로서의 살아가는 그 어떤 것이 실존해 있다고 생각하거나 또는 atman 자아, jiva 개체, pudgala 개인 등을 실체라고 생각하는 것은 불도를 구하는 사람의 올바른 견해가 아니라고 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진실하게 불도를 구하여 커다란 서원을 세우고 그 어떤 경우에도 마음이 흔들리는 바 없으며 끝까지 계속적으로 노력하여 물러나지 않는 보살 마하살은 반드시 바른 법을 잘 설하여 일체중생 및 자기 자신에게 있는 커다란 잘못된 소견, 커다란 교만한 생각, 커다란 집착하는 마음 등의 모든 번뇌를 피하여 없애야 하며(新修大正藏 25권 94·a)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 속에서 지혜를 추구하되, 그것은 색·수·상·행·식의 5온에서는 구할 수 없음을 밝혀서 불도를 구하는 수행에 있어서 ‘나’라는 것을 조금이라도 두어서는 보살이라고 할 수 없으며, 이런 것이 있다면 바로 이것이 마음을 가리게 되어 불도를 장애하게 됨을((新修大正藏 25권 807·a) 《금강경》과 깊은 관계가 있는 《소품반야경》에서도 말하고 있으며, 불도를 구하는 사람 즉 선남자·선여인, 보살마하살이 어떻게 그 마음을 지녀야 하며 수행하여야 하며, 일체 중생들과 상응하여야 하는 가를 제시고 있어서 여기에 초기 대승불교에서 보살사상이 일어나고 있는 모습을 볼 수가 있다. 이러한 바탕 위에서 《금강경》에서는 무수 무변한 생명 있는 것들을 모두 영원히 편안한 경지에 이끌어서 들어가게 하여야 하며, 그러면서도 보살은 자아 즉 ‘나’라고 하는 생각을 일으키거나, 살아있는 것이라는 생각, 개체라는 생각, 개인이라는 생각 등을 일으켜서는 안 되는 것이며, 만일 조금이라도 이러한 생각을 일으킨다면, 이미 불도를 구하는 보살이라고 할 수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인환 스님/전 동국대 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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