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과의 대화>라는 제목은 낯설지 않다. 그런데, 책의 부제로 붙은 “상생상극(相生相剋), 그 역동적 균형의 기적”이란 말은 독자의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아니, 애니메이션과 만화에 대한 책인데 웬 상생상극? 더군다나 표지에 붙은 문구는 더욱 알쏭달쏭하고, 마치 불교의 오래된 가르침 같기도 하다. “다른 한 쪽의 극단을 깨워라. 억눌리고 감춰졌던 극단이 빛으로 살아나면 무의미와 역설, 욕구와 상상, 우연과 무위가 춤춘다.”

흔히 ‘통섭’과 ‘융합’의 시대로 불리는 21세기이다. 탈(脫)세대, 간(間)학문, 혼(混)영역의 이질적인 마주침은 이제 일상적인 상식으로 자리 잡았다. 스마트폰으로 영화를 찍고, TV를 보면서 쇼핑을 하며, 서양의사들이 한의학을 공부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진 세상이다. 그리고 이런 시대일수록 ‘문화콘텐츠’의 중요성은 더욱 부각되기 마련이다. 한 사회의 문화적 축적과 가치가 ‘재미있게’ 전달될 때 사람들의 관심을 집중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 이정민은 <애니메이션과의 대화>를 통해서 만화, 즉 애니메이션이란 콘텐츠를 둘러싼 폭넓은 지식을 제공해준다. 저자의 표현에 따르면 애니메이션은 이러하다. “만화와 애니메이션은 / 철학의 정리들을 들쑤셔 흐트러뜨리고 / 과학의 가설과 결론을 의심하며 / 종교의 엄숙함과 예술의 권위마저 특유의 익살로 조롱한다. / 거기에 뜻밖의 만남, 영원한 호기심의 세계가 있다.” 독일의 대문호 괴테조차도 처음 만화를 접했을 때, 그림과 글이 결합한 양식을 보고 상당히 감탄했다고 하지 않는가?

저자는 우리들이 ‘만화’와 ‘영상’이 지닌 잠재력과 폭발력을 지나치게 경시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는다. 그리고 총 54가지의 질문과 답변을 합한 108개의 주고받음을 통해서, 애니메이션의 역사와 종류, 그 위상과 현황에 대해 소개해준다. 저자에게 애니메이션이란 자신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고 확장하게 해 주는 최적의 도구라고 할 수 있으며, 문화적 ‧ 상업적으로 무궁한 가능성을 담고 있는 콘텐츠 양식이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로 재직 중인 저자는 교양강의를 들려주듯, 편안한 경어체로 독자들을 애니메이션의 세계로 이끈다.

이정민 교수의 책 <애니메이션과의 대화>는 ‘萬里無雲—유쾌한 108문답 시리즈’의 다섯 번째 책이다. 이 시리즈는 “불교지도자의 교양필수”란 취지로 스님들의 교양을 위하여 한국불교학술진흥재단에서 의뢰하고 송암 스님(도피안사 주지)이 주도하는 기획이라고 한다. 스님들과 21세기 교양의 만남, 그로부터 빚어지는 “상생상극, 역동적 균형의 기적”을 기대해도 좋을 법하다.

- 박성열 기자

이정민 지음 / 종이거울 / 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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