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 종조(宗祖)인 도의조사의 가르침을 되새기고 조사의 뜻을 이을 것을 다짐하는 다례가 열렸다.
조계종은 5월 25일 오전 11시 조계사 대웅전에서 500여 대중이 참석한 가운데 ‘제6회 조계종조 도의조사 다례재’를 봉행했다.

▲ 조계종은 5월 25일 오전 11시 조계사 대웅전에서 ‘제6회 조계종조 도의조사 다례재’를 봉행했다. 사진=조계종 홍보팀
다례재에서 법전 종정스님은 원명 원로의원스님이 대독한 법어를 통해 “불조혜맥(佛祖慧脈)이 가섭(迦葉)으로부터 시작되어 도의(道義)까지 이르렀는데 이 가운데 참으로 전해진 것이 있습니까? 없습니까?”라고 물으며 “만일 전(傳)해 진 것이 있다면 열반묘심(涅槃妙心)은 사람마다 갖추어 있는데 세존(世尊)의 특별한 수단을 빌릴 것이 없을 것이며 만일 전(傳)한 것이 없다면 조사끼리 전하고 등불끼리 서로 계승한 것은 공연한 일인지 전신일구(傳身一句)를 일러보세요”라고 법어했다.

지관 총무원장스님은 추모사를 통해 “바라옵건데 조사(祖師)께서 오늘 저희들 추모하는 작은 정성을 애민히 여기시어 모든 국민의 마음과 몸이 항상 청정하고, 나라경제가 원활히 윤택하오며, 종단에서도 참선자는 눈푸른 명안납자(明眼衲者)가 많이 배출되고 전법하는 자가 밀고 있는 법륜의 수레바퀴가 걸림 없이 항상 굴러가며, 종단의 운영에 있어서도 장애가 없고, 병고를 앓고 있는 이들은 속득쾌차(速得快差)하며, 아울러 유주(有主) 무주(無主) 모든 고혼(孤魂)들은 극락정토에 왕생하고, 하루속히 평화적으로 남북이 통일되도록 이끌어 주시옵소서”라고 기원했다.

도의조사는 생몰연대는 자세하지 않으나 통일신라시대 스님으로 휘(諱)는 명적(明寂) 또는 원적(元寂)이고 호는 도의이며 속성은 왕 씨이다. 어느 날 부친께서 흰 무지개가 집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았고, 모친 또한 어떤 스님과 같은 자리에 앉아 있는 태몽을 꾼 후 임신하여 39개월 만에 북한군에서 탄생했다.
건중 5년(784)에 사신인 한찬(韓粲) 김양공(金讓恭)을 따라 당나라로 들어가 구법하였고, 곧바로 산서성 오대산으로 나아가 중대(中臺)에서 문수보살의 상서가 나타남을 감득하고, 광동성 광주 보단사 계단에서 비구계를 품수했다.

▲ 이날 다례재에는 원로의원 정무 스님, 월서 스님, 원명 스님, 혜정 스님과 총무원장 지관 스님, 호계원장 법등 스님, 포교원장 혜총 스님, 교육원장 직무대행 법장 스님, 용주사 주지 정호 스님, 직지사 주지 성웅 스님, 총무원 총무부장 원학 스님등 500여 대중이 참석했다.
도의조사는 소주 조계산 보림사로 나아가 육조 혜능대사의 영당에 참배하고, 홍주 개원사로 가서 서당지장 선사를 친견하고 그로부터 달마선법을 전해 듣고는 활연대오하였다. 지장대사가 찬양하여 “나의 법통을 전수받을 자는 그대가 아니고 또 누가 있겠는가?”라며 전법게와 함께 도의라는 법호를 전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 후 제방으로 행각하다가 강서 백장산 회해선사를 친견하고 문답하니 백장선사가 “강서선맥이 송두리째 동국승에게로 귀속되었다”고 찬탄했다.

당나라에서 37년간 머물며 수행하다가 821년, 신라 헌덕왕 13년에 귀국하여 조계선법을 펼치려 하였으나 시절인연이 도래하지 않았음을 탄식하고, 진전사에서 40년간 주석하다가 제자인 억성염거에게 전법하고 입적했다. 조사의 선법은 억성염거를 거쳐 보조체징에게 전해져 마침내 시흥했다. 체징은 장흥군 가지산에 보림사를 창건하고 신라구산 선문중 최초로 가지산문 일파를 형성하여 도의선풍을 널리 진작하였다.

이날 다례재에는 원로의원 정무 스님, 월서 스님, 원명 스님, 혜정 스님과 총무원장 지관 스님, 호계원장 법등 스님, 포교원장 혜총 스님, 교육원장 직무대행 법장 스님, 용주사 주지 정호 스님, 직지사 주지 성웅 스님, 총무원 총무부장 원학 스님을 비롯한 중앙종무기관 소임스님 등 500여 대중이 참석했다.

서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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