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크로드의 불교조각'이라는 주제로 강연 중인 임영애 교수

 2월 17일 오후 두 시, 국립중앙박물관 대강당의 열기는 뜨거웠다. 지금으로부터 1500여 년 전, 부처님 법을 구하고 또 그 법을 전하기 위해 거친 사막을 오고간 스님들이 찬탄했던 서역의 불교조각을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자 모인 뭇 사람들 때문이었다. 대강당의 400 좌석은 일찌감치 꽉 메워진 채 ‘실크로드와 둔황’展 강좌의 시작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번 17일의 강좌는 경주대학교 문화재학과 임영애 교수의 <실크로드와 불교조각>. 불교미술을 전공해 온 임영애 교수는 청중들을 이끄는 에너지가 넘쳤고, 또 무엇보다도 달변이었다. 임 교수가 흥미롭게 전해주는 고대 서역의 불교적 향취에 2시간 내내 청중들 모두가 한껏 몰입하는 것이 느껴졌다.

임 교수는 중국 돈황을 기점으로 해서 ‘돌아올 수 없는 땅’이란 뜻을 지닌 타클라마칸 사막을 통과하는 서역 북로와 서역 남로의 가혹한 지리적 조건을 소개하는 것으로부터 강의를 시작했다. 청중들은 임 교수와 함께 법현(法顯) 스님(337~422)의 <법현전>을 읽으며, 험악한 지리와 풍토로 인해 동료 스님을 잃으면서까지 구법(求法)의 일념으로 서역을 통과한 여행기를 엿보았다. 임 교수는 “도대체 법현과 현장, 혜초 스님 등은 왜 이런 험한 길을 오고갔는지, 종교의 힘이 무엇인지를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 2월 17일, 국립중앙박물관 대강당에 모인 청중들

이어 임 교수는 서역 불교조각을 타클라마칸의 대표적인 도시인 미란, 호탄, 쿠차로 나누어 상세하게 설명했다. 임 교수에 따르면, 서역 불교조각의 가장 큰 특징은 흙으로 빚은 조각이 많다는 것과 거푸집을 쓴다는 것이다. 이는 돌이나 나무가 부족한 사막의 환경 탓이었으며, 쉽게 깨지는 흙조각을 계속적으로 생산하기 위한 방편이었다고 한다. 또 서역 불교조각은 가는 허리와 굵은 허벅지를 강조한 육체, 띠주름(혹은 U자형 주름)을 부각시킨 얇은 옷으로 구별되는 외양을 지니는 것도 특징.

역사적으로 ‘오랑캐’가 사는 변방국가라고 천시되었던 서역 지방의 불교미술이 중국 불교미술의 원류를 이룬다는 사실도 놀라웠다. 예컨대 10여 년 전 중국 불상의 시작이라고 손꼽히는 금동불좌상의 성분을 분석해보니, 타클라마칸의 호탄 불상과 동일한 성분이 검출되었다고 한다. 중국 최초의 불상은 바로 호탄에서 만들어져 전래된 것이다. 인도에서 동아시아로 이어지는 ‘실크로드’를 통해서 불교 문물이 이동했다는 생생한 증거인 셈이다.

또 임 교수는 “불교미술은 보는 것이 아니라 읽는 것”이라는 평소 지론에 대해서도 힘주어 강조했다. 불교미술은 일단 그 작품에 담긴 ‘내용’을 알아야 그 작품이 담고 있는 의미를 확실하게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임 교수는 불교 미술을 겉으로 보고 감상하는 것에서 그칠 게 아니라, 그 작품 안에 담긴 불교적 의미를 읽어내고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미란에 남아있는 본생도(부처님의 전생을 다룬 이야기) 벽화을 보더라도, 그 조각에 그득히 담겨있는 비슈반타라 태자의 선업(善業)을 알지 못한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

그렇게 수많은 유물 자료와 임 교수의 열정적인 설명으로 꽉 채워진 두 시간의 강좌가 끝나고 청중들의 갈채가 이어졌다. 숨 돌릴 새 없이 춘천의 또 다른 강좌에 시간을 맞춰야 했던 임 교수에게 양해를 구하면서 몇 마디를 나눌 수 있었다. 다음은 임 교수와의 일문일답.


△ 강연에서 상당한 에너지가 느껴집니다, 활발한 저술과 논문 집필로 유명하시고, 2009년에는 불교관련 연구를 하는 학자에게 주어지는 학술상인 불이상(不二賞)을 받기도 하셨죠. 요새는 무엇에 그리 열심이신지요?

연구죠. 아니, 연구 외에는 생각하는 게 거의 없습니다. (웃음) 학교 안에서 하는 연구도 연구지만, 문화재를 발굴하고 보존하는 지정 조사 프로젝트에도 힘쓰고 있습니다. 지정 조사가 중요한 것은 문화재가 도난당하거나 훼손되지 않게끔 제대로 파악되고 관리되어야 하기 때문이고, 또 설사 도난당한다 하더라도 이미 조사가 되어 있다면 보다 쉽게 찾을 수 있기 때문이지요.

△ 그간 어떤 프로젝트를 맡아 오셨나요?

황룡사 프로젝트는 지난 1월 말에 끝났습니다. 경주 황룡사에 남아 있는 대좌받침 위에는 과연 어떤 상(像)이 세워져 있었는지를 상상 및 복원하는 작업이었죠. 6세기 후반 중국이나 일본, 혹은 우리나라에 남겨져 있는 유물들을 통해서 그 상을 합리적으로 추정하는 것입니다. 또, 경주시 안에는 특별히 지정되지도 않고 이름도 알 수 없는 폐사지와 절터들이 많아요. 그러한 절터 스무 곳을 선정해서 조사, 분석하는 프로젝트를 경주시와 함께 해왔습니다. 2월 말까지 계속될 예정이에요.

△ 서역의 불교미술에 주목하신 계기 혹은 이유는 무엇인지요?

본래 저는 통일 신라의 조각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러다가 혜초의 이야기도 접하고 하면서, 서역과 신라의 불교미술이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다는 것을 입증해보고 싶어졌어요. 서역 양식이 통일 신라에 들어올 수 있었는지, 그게 가능한 상황이었는지 알아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실크로드 조각을 공부했는데, 막상 들여다봤더니, 서역과 신라 미술이 직접적으로 큰 연관은 없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그 둘 사이에 놓인 중국이라는 대국, 그 거대한 땅을 간과하지 않을 수 없는 거죠.

△ 결론이 약간은 엉뚱하게 흘러갔네요.

맞아요. 사실 이런 제 말이 별로 환영받지는 못하는 생각이지요. 아마 (실크로드를 통한 문화적 교류를 강조하는) 학자 분들은 제가 조금 마음에 안드실 거예요. (웃음) 하지만 당시에 고속도로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불교미술의 전래에서도 중국의 영향권을 배제할 수가 없습니다. 논스톱으로 올 수가 없는 거죠. 제가 매번 이렇게 말하니깐, 학회 같은 곳에 가면 가끔 선배 연구자님들이 웃으면서 제게 “임선생, 그냥 관계 있다고 해~”라고 농담하기도 한답니다. (웃음)

△ 간단히 말한다면 한국 불교조각에 서역의 영향이 많이 들어있다고 말하긴 힘든 건가요?

물론, 영향을 준 요소는 있지요. 하지만 서역의 불교미술이 한국으로 직접 왔다고 볼 수 없습니다. 그 요소 역시 중국을 통해 전래된 요소였으니까요.

△ 타클라마칸 사막의 호탄을 다녀와야 실크로드에 다녀온 것이고, 그곳이 죽기 전에 반드시 다녀와야 할 곳이라는 말씀도 하셨는데요. 왜 그런가요?

옛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이 사막의 길을 오고 갔다는 것, 그 자체가 후세의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주는 거라고 생각해요. 혜초 스님, 현장 스님, 법현 스님…. 그 분들의 험난한 여정을 생각한다면, 우리가 왜 타클라마칸 사막을 가야 하는지도 역시 자연스럽게 드러나지 않을까요?

△ 정부나 지역사회에서 불교미술 연구에 대한 지원은 많이 해 주고 있나요?

경주시에서는 특별히 지원을 많이 해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참 고맙기도 하지요. 정부의 문화재 관리는 여전히 아쉬운 부분도 있지만, 그래도 과거에 비해서는 많이 좋아졌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대학원 다닐 때만 해도 연구자들이 유물을 보는 것조차 쉽지 않았어요. 무척 폐쇄적이었던 거죠. 지금은 적어도 보고자 할 때 보지 못하는 경험은 없으니….

△ 청중들에게 서역 불교유적지에 꼭 직접 가보라고 강조하셨지요. 마지막으로 불자들에게 한 마디 해주시지요.

서역의 불교조각과 불교미술을 굳이 종교의 대상으로 보기보다는, 애정의 대상으로 보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작품을 대할 때에는 애정을 갖고 좀 더 잘 알아야 되겠다는 마음으로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서역의 불교미술을 더 잘 알고 감상한다면, 분명히 그것을 더욱 깊이 사랑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 임영애 교수는?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2004년부터 경주대학교 문화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서울시 문화재전문위원 ․ 경상북도 문화재전문위원 ․ 강원도 문화재전문위원 ․ 조계종 성보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교류로 본 한국 불교 조각>, <서역불교조각사> 등이 있다.  

- 박성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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