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삼청동 소재 (재)선학원 칠보사에 모셔진 남전스님 진영

(재)선학원(이사장 법진스님)은 5월 22일 11시 재단법인 선학원 설립조사인 남전한규(南泉翰圭)스님 73주년 추모 다례재를 중앙선원 대법당에서 봉행했다.

(재)선학원 이사장 법진스님를 비롯한 칠보사 신도들, 재단 관계자들이 동참해 스님의 가르침과 행적에 대해 추모의 뜻을 기렸다.

백악산인(白岳山人)이라고 불릴 만큼 민족정신이 강했던 남전스님은 당시 일본 경찰의 감시 대상이었던 만해(萬海)스님에게 선뜻 선학원의 방을 내주어 만해스님이 선학원에서 《님의 침묵》를 집필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스님은 또 일하면서 수행하는 것을 납자의 본분으로 삼았으며, 대표적 제자로는 근현대 한국불교의 큰 족적을 남긴 석주정일(昔珠正一)스님이 있다.

▲ (재)선학원 이사장 법진스님을 비롯한 사부대중이 동참해 남전스님 추모다례재를 봉행하고 있다.
김영석 기자

남전스님 행적
남전스님은 1968년 9월 6일 합천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안동 김씨 병용(炳鎔)공, 모친은 경주 김씨다. 16세 때인 1885년 최치원 유적을 보기위해 해인사를 찾았다 해인사 백련암에서 신해 스님을 은사로 득도, 사미계를 수지했다.
이어 해인사 주지 소임(1904년)을 맡고, 1908년 해인사에서 제산 스님으로부터 구족계와 보살계를 수지했다.
이후 범어사 동래포교소 포교사(1911년), 범어사 임제종 중앙포교소 포교사(1912년), 석왕사 경성포교당 포교사(1917년), 범어사 경성포교당 포교사(1918년)로 활동했다.
1921년에는 도봉스님, 석두 스님과 선학원을 설립한 후 선학원 선우공제회 평의원(1922년), 직지사 조실(1924년), 재단법인 조선불교중앙선리참구원 초대 이사(1934년)를 역임하며 승풍진작에 힘쓰다 1936년 4월 28일 선학원에서 세수 68세 법랍 51년으로 입적했다.

저작권자 © 불교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