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불교와 아라한

 

우리나라 불교는 이른바 대승불교로 분류되고 있으며, 그 중에서도 선불교를 중심으로 발전해 왔다. 그래서 우리는 보살을 이상적 모델로 삼거나 뛰어난 선사를 본보기로 삼아 수행의 전통을 이어 오고 있다. 그래서 인지 아라한은 소승의 성자라 하여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며, 더욱이 아라한을 자신의 해탈만을 생각하는 이기적 존재로 그리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아라한은 석가모니 부처님에 의해 불교가 창시된 이래 부처님의 또 다른 호칭으로 사용되기도 하였으며, 불멸후에는 깨달은 수행승을 지칭하는 대표적인 말로 사용되었다. 그래서 모든 불교 수행승들의 이상적 모델이자 목표였으며, 재가신자들의 귀의처로 인식되었다.
초기 경전에서부터 부파불교의 논서에 이르는 문헌군에 나타난 내용들 중, 수행론과 번뇌론, 그리고 해탈론과 관련된 부분을 살펴보면, 대부분 그 중심에 아라한이 놓여져 있거나, 아라한을 전제로 이야기 되고 있음을 본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아라한을 단순히 소승의 성자로 치부해 버릴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인도 초기불교 및 부파불교를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키워드 가운데 하나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왜 대승불교에서는 이렇듯 중요하고 정통성 있는 아라한을 버리고 ‘보살’이라고 하는 새로운 모델을 제시한 것일까.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는 이전 호에서 잠시 언급하였지만, 아라한에 대한 교단 내외의 인식의 변화가 가장 큰 요인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부처님 재세시부터 아라한은 수행승에게 뿐만 아니라 재가자에 이르기까지 모든 불교인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존재였다. 즉 수행의 면에서도 그렇고 법을 설하는 모습에서도 그렇고, 일상생활의 면에서도 존경심을 불러일으킬 만한 존재로 인식되어 왔다. 그리고 아라한은 그래야만 했다.
부처님이 초전 법륜을 굴리신 후, 아라한이 된 제자들에게 이른바 전도선언을 통해 당부하신 말씀을 보면, 아라한이 대외적으로 갖추어야 할 기본적 자세를 볼 수 있다. 이는 비단 아라한이 아닌 일반 수행자에게도 해당이 되며, 좀 더 범위를 넓히면 불제자가 염두에 두어야할 자세이기도 하다. 그 내용을 간단히 살펴보자.
“비구들이여! 법을 설하되 의미와 표현을 갖추어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마지막도 좋게 설하라. 그리고 완전하고 순수한 범행을 보여라.”

위 내용은 율장 대품에 나오는 전도선언의 마지막 부분이다. 이 내용을 보면, 전도를 하는 자는 마땅히 논리에 맞게 모든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게 법을 설하는 것은 물론이요, 거기에 반드시 도덕적으로 흠 잡을 데 없는 행위, 즉 범행을 갖추어야 함을 부처님께서 당부하신 것을 볼 수 있다.
물론 이 전도 선언은 아라한이 갖추어야 할 조건을 설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전도선언을 하신 당시의 제자들은 모두 아라한이 된 비구들이었다. 모든 번뇌로부터 완전한 자유를 획득한 아라한들에게 전도를 당부하면서 ‘도덕적으로 완벽한 모습’을 보이라고 하신 것은 그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아라한에 대한 교단 내외의 인식의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대천이라고 하는 장로가 제시한 오사(五事)를 이전 호에서 고찰해 보았는데, 그 내용 중 첫 번째 항목이 바로 ‘누정’에 관련된 것이었다. 이는 성적 욕망을 완전히 극복했다고 하는 아라한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주장이 제기된 것은 그 당시 교단내에서 아라한으로 추앙받고 있었던 일부 수행승들 가운데, 아라한에게 어울리지 않는 행위나 모습을 보인 것을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실제 『밀린다팡하』라고 하는 문헌에는 아라한들 가운데 마을 사람들과 교제하며 아낙네들과 희롱하는 아라한이 있었음을 기록하고 있다. 이는 앞서 본 전도선언에서 부처님께서 그토록 신신당부하신 말씀과 정면으로 어긋나는 것임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바로 이러한 도덕적인 결함이 아라한을 더 이상 존경의 대상이 아닌, 비난의 대상으로 바꾼 것임은 당연하다. 그 결과, 아라한을 대체할 새로운 이상적 모델이 필요하게 되었던 것이고, 대승불교인들은 ‘보살’이란 관념을 고안해 내게 된 것이다.
물론 보살 관념이 아라한을 대체했다고 해서, 모든 불교 종파에서 그러했던 것은 아니다. 여전히 아라한을 이상적 모델로 해서 수행에 정진했던 부파도 여전히 건재했다. 그러나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수백 년간 모든 부파에서 존경을 받으며 중심적 역할을 했던 아라한이 비판의 대상이 되면서, 심지어 일부 부파에서는 조롱거리로 전락했다는 점이다.
현대 우리가 사는 사회는 다종교, 다문화 사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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